요즈음 시집이 팔리지 않는 답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한 편의 시가 힘이 됩니다

등록 2005.03.15 22:49수정 2005.03.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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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의 기사를 읽다가 요즈음 시집(詩集)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보도를 접하고 마음이 많이 착잡해졌습니다. 기사에는 그 이유 몇 가지를 꼽았는데,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오래전부터 문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기도 하고, 지속되어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왜 시가 읽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궁색하나마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구한 답은 어쩌면 보편타당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뒤로 미뤄두기로 합니다.

저는 삶에 있어 진정으로 귀감이 되는, 또한 시 쓰기에 크나큰 도움이 되는 스승들을 제 주위에서 보고 또 만나며 삽니다. 그리고 제 가슴 속에 그들의 마음을 깊이 새겨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저의 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체험을 통해서 삶에 대한 인간적 성찰을 하게 되고 그 체험이 글을 쓰게 하는 것입니다. 체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작품은 생생한 생동감이 넘칩니다. 물론, 비 체험적 작품이 그 질에 있어 체험적 작품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거나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비 체험적 작품을 쓰기도 합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간이 어전 1>이라는 제 졸시도 그 체험적 바탕에서 탄생한 시입니다. 시 속에 나오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가운데 느껴지는 감정이 이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간이 어전 1

붉은 담벼락 밑 리어카에 가득
은빛 자르르한 칼치며
물오른 게기들이 죄 퍼질러 누웠습니다.
오징어 한 마리만 사오라는
마누라 심부름이었는데
아따, 할매 굵게 주름진 손으로 날렵하게도
한 마리 더 금을 쓰윽 긋습니다.
인자 날도 옹차고 푸진데 아무 말 말고 그저
낫살깨나 묵은 할망구에게
선심이나 한 번 꾹 쓰라는 말인 듯합니다.
저 은빛 자르르한 것들이, 그 옆 등 푸른 것들이
또 한 폭 건너 얕은 좌판에
갓 나온 봄나물들까지도 까르르 웃는 통에 그만
나도 뾰족한 수 없이 봄이 됩니다.
문득 무시며 파로 자작자작하게 졸인
어머니의 갈치조림이 눈물지게 생각난 것은
까닭모를 일이었습니다.



이 시는 심부름을 갔다 오면서 찰나적으로 느꼈던 것을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시로 만든 것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뒷길에는 간이 시장이 매일 오후에 섭니다. 주위에 시장이 두 군데 있기는 하지만 버스나 그 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할 만큼, 걸어갔다 오기에는 꽤 먼 거리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간이시장이 서는 것입니다. 하기야 어디든 이런 자연현상적인 간이시장이 많습니다.

오징어 한 마리만 달라고 한 나는 괜히 계면쩍고, 마수걸이도 못한 할머니는 달랑 한 마리만 달랑 팔기도 무엇한 얄궂은 상황이었습니다.


“할매요, 오징어 있습니꺼?”
“있제, 얼매나?”

그러고는 앉았던 몸을 부려 한 쪽에 밀쳐놓은 오징어(냉동된 오징어를 말합니다)를 집어 도마에 눕히고 칼을 들이댑니다.

“한 마리만 더 하모 좋제”

느닷없이 그럽니다. 제 집사람이나 여느 여염집 아낙네라면 이런 말 하였겠습니까? 그저 살림 모르는 사내나 되니까(?) 그리 농 비슷하게 해본 말씀이겠지요.

“야, 한 마리 더 주소. 마.”

a 날씨가 추워 오늘따라 어물이 엉망입니다.

날씨가 추워 오늘따라 어물이 엉망입니다. ⓒ 김병기

이 시를 처음 구상하고 뼈대를 세워 살을 붙이기를 여러 날. 아차, 이렇게 기사를 올리려면 사진도 몇 장 있어야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사진기를 들고 나간 날은 밉살스럽게도 2한5온(요즈음 날씨가 이틀은 춥고 오일은 따뜻하답니다)의 2한에 해당하는 주말이었습니다.

저녁 장이 한창이어야 하는데 날씨 탓인지 길거리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그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저에게 오징어를 판 할머니는 어디가 편찮으신지 아직 나오질 않아 옆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또 다른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신 사진도 한 컷 찍으려했지만 한사코 싫다며 손을 가로젓습니다.

a 오징어를 판 할머니는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오징어를 판 할머니는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 김병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왕이면 우리 동네 길거리에 펼쳐진 간이 시장 모습을 담아보자 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저씨는 뭐 주까예?”

어묵을 만들어 파는 가게 아줌마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아, 이쪽이 집사람입니더. 그라고 <오마이뉴스>라 카는 컴퓨터신문(나이 드신 분들은 잘 모릅니다)이 있는데예, 지가 시민기자라 캅니다. 우리 동네 홍보 좀 할라꼬 요래 사진을 쪼매 찍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라모 우리 집 간판도 찍어야 지예” 합니다. 그래서 어묵을 삼천 원 어치나 사고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a 아주머니가 어묵 삼천 원 어치를 봉지에 담고 있네요

아주머니가 어묵 삼천 원 어치를 봉지에 담고 있네요 ⓒ 김병기

어물이며 채소를 파는 할머니, 만물장수 아저씨, 과일 파는 아줌마, 동네 슈퍼마켓, 미장원, 약국 등등 우리에겐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며 또한 없어서는 안 될 편의 시설(?)들입니다. 제가 취재를 하기 위해 보낸 시간은 채 한 시간도 안 되는데 벌써 귀가 시리고, 춥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하루벌이를 위해 추운 바깥에서 몇 시간을 더 견뎌야 할 저분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그렇습니다. 저렇게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진정한 우리네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본분에 불평 한 마디 없이 열심히 살아가시는 저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라고, 행복하시라고.

a 길거리 만물상

길거리 만물상 ⓒ 김병기


a 한산한 야채 좌판

한산한 야채 좌판 ⓒ 김병기

덧붙이는 글 | 김병기 58년 부산 산, 2001년 문예사조로 등단(시 부문), 부산문협,부산가톨릭문협 회원으로 활동 중임.

덧붙이는 글 김병기 58년 부산 산, 2001년 문예사조로 등단(시 부문), 부산문협,부산가톨릭문협 회원으로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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