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이 지키는 상처난 미물들의 쉼터

새들의 천국이 된 국내 최대 인공습지 시화호 갈대습지공원

등록 2005.04.14 19:04수정 2005.04.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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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막이 공사 중단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에 앞서 해안 갯벌 생태보존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촉발시켰던 시화호, 그곳에 국내 최초이자 최대인 인공습지공원이 있다. 시화호 갈대습지공원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해안로 옆의 시화호 내면에 자리잡은 31만4천여평의 드넓은 습지지역.

a 습지공원 입구를 지키는 시화호생명대장군, 갈대습지여장군

습지공원 입구를 지키는 시화호생명대장군, 갈대습지여장군 ⓒ 김성원

시화호 갈대습지공원은 시화호로 유입되는 지천(반월천, 동화천, 삼화천)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1차 침전지에서 거른 물을 2차로 갈대, 부들 등 정수식물과 부유식물을 이용해서 오염된 물을 정화하기 위해 만든 대규모 인공 습지이다. 일종의 자연하수종말처리장이지만 동시에 생태보전과 생태교육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다.


1930년대 심훈이 쓴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의 무대가 되는 지금의 안산 상록수역이 바로 인근에 있다. 예전에는 상록수역 인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서해안의 거대한 갯벌과 만이 펼쳐지는 해안마을이었다.

지금은 이승만 정권시절부터 역대 대통령들에 의해 진행된 간척사업과 물막이로, 바다는 상록수역에서 차로 이삼십여분 걸리는 시화호방조제 뒤로 물러나 있고 번화한 거리와 공단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갈대습지여장군, 시화호생명대장군

상록수역에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찾아 들어가 보니 '상전벽해'란 말을 여기에 써야 할지 망설여진다. 갯벌과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이 되레 광대한 갈대바다를 이루고 있다.

갈대습지공원의 입구에는 '시화호생명대장군'과 '갈대습지여장군'이라 쓰인 장승 두 기와 함께 철길에나 있을법한 차단봉이 길 옆에 서있다.


습지공원 바로 앞까지 철책을 두른 공사 현장이 곳곳에 있으니 더 이상 사람의 거친 손길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그러나 시화호 방파제로 이미 그대로의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이 이뤄지는 마당에 최소한의 면피일지도 모른다.

a 다양한 자료실, 영상관, 관측전망대가 있는 시화호 환경생태관

다양한 자료실, 영상관, 관측전망대가 있는 시화호 환경생태관 ⓒ 김성원


a 환경생태관 앞의 생태연못과 온실

환경생태관 앞의 생태연못과 온실 ⓒ 김성원


관측망원경이 마련되어 있는 환경생태관 전망대


'스스로 미물임을 인정하는 자 출입을 허 하노라'

어쩌면 장승의 통과허락을 받고 나서야 끝이 아물거리는 제방길을 지날 수 있을 듯하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우측의 거대한 갈대바다가 바람에 출렁이며 시화호로 밀려온다. 갈대 습지 넘어 해가 기우는 저편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멀찌감치 뒷걸음쳐 있다.

갈대 바다 사이로 바람결 따라 은빛으로 펄떡이며 흘러가는 수로의 물결이 황홀하다. 거대한 습지의 장관에 넋을 놓다 정신을 차려보니 흰색 대리석의 '환경생태관'이 습지와 어울리지 않게 버티고 서 있다.

환경생태관은 2층의 대리석 건물로 1층에는 '시화호 역사관'과 '생태자료실', 시화호의 생태관련 영상물을 볼 수 있는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다. 자료실에는 이곳 습지에 살고 있는 곤충과 식물 표본이 전시되어 있고, 안쪽 끝 자료실에는 시화호에서 죽은 너구리, 족제비, 고라니, 청설모 등 동물과 왜가리, 중대백로, 해오라기 등 이곳에서 상처받고 죽은 새들을 박제하여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생태학습판이 둘러 있고 원형 창이 사방으로 뚫려 있어 습지 전경을 볼 수가 있다. 발코니에는 관측망원경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영상관이 2층에 함께 마련되어 있어 주말마다 시화호의 생태를 소개하는 영화를 상영한다.

환경생태관 정문 주차장 옆에는 자그마한 정자와 생태연못이 있다. 이 생태연못 옆의 수문을 통해 갈대습지를 통과하여 깨끗해진 물이 최종적으로 걸러져 시화호로 흘러들어간다.

연못의 한쪽에는 온실이 있고 시화호로 들어오는 지천이 합류하여 흐르는 대형 수로 옆, 제방 위에는 상처 입은 동물을 치료하기 위한 새장같이 생긴 2층 높이의 동물구호대와 생태공원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류관찰대가 있다.

a 야생화꽃길과 습지 내부 마루다리로 이어지는 중앙 관람로

야생화꽃길과 습지 내부 마루다리로 이어지는 중앙 관람로 ⓒ 김성원


a 예전에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갈대바다로 변해있다

예전에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갈대바다로 변해있다 ⓒ 김성원


바람조차 늪과 호수에 깃드는 갈대 습지

생태관부터 시작하는 중앙관람로 곳곳에 연결된 나무마루 관람로와 마루다리를 따라 들어가면 크고 작은 늪과 호수, 인공섬을 품고 있는 갈대습지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나무관람로를 걷게 되면 사람은 물 위를 걷게 되는 꼴이다. 마루다리 아래로는 온 데가 물이고 눈을 옆으로 돌리면 온 데가 갈대 숲이다. 때로 키 높이 이상으로 자란 갈대 마른 대롱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중앙관람로는 연이어 또 다른 관람로를 잇고 야생화꽃길을 지난다. 갈대습지 주변 제방과 꽃길에는 애기부들, 줄, 큰고랭이, 칠면초, 갯개미취, 나문재, 퉁퉁마디, 벌로랑이, 붉은 토끼풀, 어저귀 마타리, 금계국, 원추리, 범부채 등 온갖 초화가 계절 따라 피어나는 걸 감상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꽃길을 지나면 다시 지천이 합류하는 수로의 제방을 돌아 생태관 옆의 생태연못으로 돌아온다.

습지에서는 낡은 수문장치 뒤로 좁은 수로가 갈대밭에 길을 만든다. 그러나 마치 평원 같이 드넓은 이곳에서 바람조차 어디서 벗어나야 할지 모른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에 물소리인 듯, 떼 지은 새들의 날개 짓인 듯, 물길을 헤치듯 소리의 군무가 펼쳐진다.

누가 놀란 것인지 퍼드득 놀란 물오리가 솟아오르고 사람은 커다랗게 놀란 눈으로 그 새를 바라본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은 바람소리처럼 흔하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을 놀래키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갑자기 튀어 오르는 물고기 펄떡임은 물새 날개 짓만큼이나 거세다.

a 시화호를 막은 후에 죽은 어패류 조개무덤

시화호를 막은 후에 죽은 어패류 조개무덤 ⓒ 김성원


갈대 습지의 창백한 조개무덤

습지 내부로 거닐다 보면 곳곳에 마치 버려진 봉분인 듯 회백색의 조개무덤들이 눈에 뜨인다. 시화호의 물길이 막힌 후로 죽은 어패류 껍데기들을 쌓아 모아 놓은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을 이룬 갈대습지가 생태보존을 위해 조성한 곳이라지만 무엇을 죽이고 난 결과인지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시화호는 농어촌진흥공사가 대단위 간척종합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994년 1월 시화방조제를 완공하면서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지목되던 인공호수이다. 원래는 바닷물을 빼낸 뒤 담수호(淡水湖)로 만들어 농업용수로 쓸 계획이었으나 공장폐수와 생활하수가 유입되면서 '죽음의 호수'로 바뀌게 되고 결국 바닷물을 유입하게 되면서 시화호는 해수호가 되었다.

시화호 갈대습지공원 역시 개발논리에 따라 무참히 파괴한 후의 부끄러운 면피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일까 공원 입구의 장승은 더 이상의 죽음을 불러들이지 않겠다는 듯이 엄한 꾸지람인 듯 그 표정이 사납다.

a 습지 호수의 물위에 앉아 쉬고 있는 물새들

습지 호수의 물위에 앉아 쉬고 있는 물새들 ⓒ 김성원


a 관람로의 나무 걸대에 앉아 있는 갈매기

관람로의 나무 걸대에 앉아 있는 갈매기 ⓒ 김성원


a 사열하듯 나무다리를 점령한 갈매기 군단

사열하듯 나무다리를 점령한 갈매기 군단 ⓒ 김성원


새들아 이곳은 너희들의 천국이다

이곳 습지에 날아드는 여름철새로는 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 황로, 물총새, 큰고니가 있고, 겨울에는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알락해오라기, 청머리오리, 민물가마우지 등 매년 3만 6천여 마리가 날아든다.

봄이 막 찾아온 사월 습지공원의 관람로에는 유난히 갈매기와 물오리들이 눈에 뜨인다. 관람로에는 사열하듯 갈매기 떼들이 길목을 지키고 앉아 있어 지나는 사람을 조심스럽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새들의 천국이 아닌가. 늪에는 물오리와 중대백로가 수초 사이를 숨나 들며 유영하고 있다.

커다란 날개로 갈대숲을 갑자기 회 치며 솟아오르다 맞바람에 잠시 날개를 띄우고 정지한 백로의 폼이 되레 사람들을 관측하는 듯하다. 어느새 유려한 자태로 사뿐히 횃대에 올라 그대로 풍경이 된다.

어느 곳이 둥지인지 알 길 없는 갈대 습지 저 안쪽에서는 꺼억꺼억 물오리가 소릴 낸다. 수중보에 물길을 거슬러 오는 물고기들을 위해 마련된 어로 옆에는 먹잇감을 기다리며 새들의 무리가 가득하다. 갈대가 숲을 이루니 바람이 머물고, 바람이 머무니 새들도 이곳에 머문다.

a 더 이상 출입이 금지된 조류보호지역 내부 흙길

더 이상 출입이 금지된 조류보호지역 내부 흙길 ⓒ 김성원


두어 시간 습지의 관람로를 시간을 잊고 따라가다 보니 서식조류보호를 위해 더 이상의 출입을 금지한 목책이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습지 공원보다 네다섯 배는 넓어 보이는 습지가 목책 너머에 펼쳐 있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대여섯 나무 아래 흙길이 멀리 어둑해지는 저편으로 가느다랗게 좁아지며 사라진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아쉬움에 저곳은 짐승과 새들의 땅으로 인정하고 그저 길 끝을 좇아 눈길을 달려본다. 그저 마음엔 자연이 주인이었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시심으로 돌아온다.

네가 내게 열어준 그 길을
나는 이제야 걷게 되었다.

그 길에는 바람이 깃들고
그리움이 산처럼 쌓여서
파랗게 멍든 하늘이 있다.

이미 먼저 간 이들도 나처럼
새들의 소리를 좇았을까
부스스 갈대바다에 잠겼을까

한 모금의 갈증도 기다릴 필요 없이
화들짝 놀라 날개를 펴고
저 산 너머로 날아갔을까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네가 가르쳐준 그리움을

덧붙이는 글 | *시화호 환경오염 관련 두산세계대백과 참조

시화호갈대습지공원(http://sihwa.kowaco.or.kr)

*입출입 시간 : 오전 10시~오후4시(매주 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교통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 하차, 52번 버스타고 정비단지 사거리 하차, 도보 15분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 하차, 택시 이용(요금 약 3600원)
-차량 : 안산분기점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진입 매송나들목에서 나와서 시화방조제 방향 해안도로 10분 농어촌연구원에서 좌회전

*주차 무료

*문의: 031-400-1400

덧붙이는 글 *시화호 환경오염 관련 두산세계대백과 참조

시화호갈대습지공원(http://sihwa.kowaco.or.kr)

*입출입 시간 : 오전 10시~오후4시(매주 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교통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 하차, 52번 버스타고 정비단지 사거리 하차, 도보 15분
-지하철 4호선 상록수역 하차, 택시 이용(요금 약 3600원)
-차량 : 안산분기점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진입 매송나들목에서 나와서 시화방조제 방향 해안도로 10분 농어촌연구원에서 좌회전

*주차 무료

*문의: 031-40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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