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산 지식인의 표상 '리영희'

등록 2005.04.17 04:30수정 2005.04.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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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5일 늦은 7시 세종문화회관 컨벤션 홀. 여느 강연회답지 않게 숙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청중들 사이로 정장 차림의 반백의 노인이 불편한 걸음을 떼며 몇 사람의 부축을 받은 채 들어서서 앞 자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크게 박수도 나오고 반가운 소리들도 던질 법한데 처음 숙연했던 분위기가 쉽게 고조되지 않았다.

시대의 허상을 깨트렸던 산 지식인의 표상 리영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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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에서 ⓒ 김지영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선생의 출현을 조심스럽게 맞이하고 있었다. 선생이 자리에 앉자 조용히 사람들이 책을 들고 선생에게 사인을 부탁한다. 엄혹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의 허상을 깨뜨렸던 우리 시대 산 지식인의 표상인 리영희 선생은 그렇게 이미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 자리는 2000년 당시 71세의 연세에 뇌출혈로 쓰러진 후 뇌 중추 신경 손상으로 오른 손과 발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선생이 민족문제연구소장인 임헌영 선생과 2년 반 동안 대담한 내용을 <대화>란 책으로 출간하고 직접 마련한 '독자와의 대화' 자리였다.

나는 이 자리를 찾아가면서 내가 선생의 사상을 접하던 당시를 회상해보았다.

80년 광주 학살을 증언하는, 머리가 절반은 총상으로 날아가 버린 한 젊은이의 주검이 조악한 컬러 사진으로 박혀 있는 대자보를 보고 나는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비밀모임이 있는 날 독립군들의 비장한 회동처럼 낯선 풍경에 콩당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배가 던져준 학습일정 목록에 인쇄된 책 이름을 훑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한 달 동안 우리가 읽고 토론해야 할 책들의 제목이었다. 물론 유신시절 박정희 정권이 공안 사범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금서들이었다. 읽어선 안 될 책들을 한 달 동안 읽어 나가면서 우리는 엄청난 가치관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 주입받았던 역사적 사실들이 한꺼번에 뒤집혀 버리던 그 때의 충격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경험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그 엄혹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접하고 겪었던 똑같은 혼란이었을 게다.

우리나라보다 더 사랑하고 싶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벌였던 추악한 패권주의의 실체와 일제 강점기에 목숨을 건 대일투쟁을 전개한 줄로만 안 이승만의 소아병적인 권력욕과 그런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재편한 친일파들의 대한민국이 그 때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진실임을 분노하며 가슴 깊이 이해하는 데 그 책들이 더 없는 도움을 준 게 사실이었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직접 경험하게 해준 장본인

그 중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의 저자가 리영희 선생이었고 그것이 20년 전 내가 선생의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이유들이었다.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란, 말로만 들어 왔던 그 유명한 가치관의 뒤집기를 직접 경험하게 해준 장본인이 바로 리영희 선생이었던 것이다.

1942년에서 1945년까지 3년 2개월 동안의 나치 치하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이 느낀 자유에 대해 쓴 장 풀 사르트르의 '겨울 공화국'을 낭독하면서 시작된 선생의 강연은 억압된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지성인들이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갈로 시작되었다.

"자유인은 형벌이다. 억압과 비인간화에 대해 '노'하고 일어나는 자유인이길 원하다면…."
"한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은 형벌을 각오하지 않고 자유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일제 식민지는 나치와 같은 비인간적 존재여야 했다."
"해방 후에는 친일파들에 의해 나라의 모든 부문이 유린당했고, 군부독재는 히틀러와 다름없었다."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허위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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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윤영자 여사 ⓒ 김지영

선생의 삶이 그러했다. 선생은 방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논문이나 책을 써내려 갔는데도 권력의 입맛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행 아홉 번, 구치소행 다섯 번, 재판 세 번, 언론사 해직 두 번, 교수직 박탈 두 번, 수감생활 1012시간이라는 형벌을 감수하고 스스로 내면의 자유를 얻은 것이다.

"지식인의 삶은 가면을 벗기는 것이다."
"40~50년 동안 한 저술활동의 철학은 허위의 가면을 벗기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자유인임을 입증하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1977년 박정희의 포악함이 절정에 달하고 있을 때, 미소 간 냉전이 그 시대의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을 때, 베트남 전쟁과 중국의 혁명을 재해석해 허위의 가면을 벗겨버린 <우상과 이성>을 출간하여 지식인과 대학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선생의 말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허위의 가면을 벗겨낸 선생의 책은 시대를 고뇌하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이 확신을 갖고 거리로 나서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선생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노정에 길을 밝히는 큰 횃불이었던 것이다.

우상을 타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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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함께 ⓒ 김지영

"나는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타 민족에 대한 입장과 자민족에 대한 입장을 골고루 비판한다"는 선생의 말씀은 선생이 그 동안 세상에 내놓았던 역작들이 치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심정적으로 '손이 안으로 굽으면서' 범할 수 있는 편향성을 배제하고 오직 사실에 기초한 글쓰기들은 현실을 적확하게 짚어내 이성으로 우상을 타파하는 선생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상과 벌인 싸움 한복판에서 한 시대 지식인의 표상으로 존재해야 했기에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선생의 안타까운 마음들이 책의 본문에는 배어 있다.

운동권 딸을 위해 말하지 못했던 사랑, 광주교도소에서 아들에게 그 동안 깊은 정을 느끼게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한의 심정, 아내 면회를 마치고 와서 아내에게 썼던 편지, 어머니의 죽음을 감옥에서 맞아야 했던 심정들을 책의 본문과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에 간간이 내비쳤지만 감히 그 무게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강연 일정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원래 계획에는 없던 사인행사가 이어졌다. 선생의 흔적을 받아내려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선생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야 했지만 입술에 굳은 힘을 주며 애써 좋고 선명한 흔적을 남기려 했다.

지적 활동과 글 쓰는 일을 완전히 포기했다던 선생

1970~80년대가 지나고 1990년대 이후 리영희 선생은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두었다며 "내가 할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지적 활동과 글 쓰는 일을 완전히 포기했다'던 선생이 초인적인 힘으로 쓴 이번 '대화'는 참된 지식인으로서 자유를 추구하고 허위의 가면을 벗겨내는 데 매진한 선생의 인생이 그대로 한국 근현대사 민주화의 지난했던 과정이었음을 밝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올해 나이 76세. 고희를 훨씬 넘긴 지금도 올곧은 참 지식인으로서 살아가는 선생의 모습을 보며 같은 시대를 살았던 표리부동했던 지식인들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한국과 중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양 국민들의 울분의 근원은 제국주의 시절 학살과 만행을 자행했던 데 대한 진정어린 참회가 없기 때문이다.

거짓 지식인과 위정자들의 참회 어린 속죄

불행하게도 포악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과 독재의 시대를 바꾸어가며 권력에 협착하고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했던 거짓 지식인과 위정자들의 참회 어린 속죄를 들은 기억이 나는 없다.

단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린, 잊어줄 수 있는 과거사들을 이제 와서 끄집어내는 불손한(?) 의도만을 탓할 뿐이다. 결국 별로 지은 죄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참회하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사를 왜곡하려는 일본 정부와 우익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검소하게 살아야 정신의 고양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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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과 사인하시는 모습 ⓒ 김지영

선생이 나이와 신체적인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세상에 내보낸 <대화>의 책장을 덮으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이다.

강연도 끝났고 사인도 끝났고 선생은 이제는 시대의 질곡을 벗어나 만년의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산본 수리산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Simple Life high thinking.'

검소하게 살아야 정신의 고양이 이루어진다는 선생의 마지막 말이었다.

무언가를 쓸 수 있는 만년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선생의 말년은 부디 그동안 자유를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들을 잊고 선생의 뒤를 이은 참된 지식인들의 출현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일만 있기를 염원해본다.

부디 만수무강 하시기를….

리영희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념퇴임한 후 1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저서에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및 일본어로 번역된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으며 편역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 / 한길사의 저자소개에서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지음,
창비, 1990

이 책의 다른 기사

책이름 되짚기 (5) 대화

리영희 저작집 2 - 우상과 이성

리영희 지음,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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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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