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만찬

검토 완료

김동원(backnine)등록 2005.05.05 12:24
온통 초록이 지천이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넘긴 나무들이 뿜어내듯 초록으로 산과 들을 뒤덮고 있다.
시인 황인숙은 나무를 가리켜 「조용한 이웃」이라고 했다.
그는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며
자신의 부엌 창밖으로 보이는
"잔가지들이 무수히 많고 본줄기도 가"는 나무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오늘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
그리고 봄기운을 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씹는 것이다.
-황인숙, 「조용한 이웃」 중에서

오늘 들과 강, 산으로 나가 그 나무의 초록 만찬에 함께 했다.
이제 사람들을 그 초록의 만찬에 초대한다.

<사진 1>
아직도 이파리가 작아
겨울나무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줄기만 앙상한 겨울 나무는 나무의 들숨이다.
겨우내내 가지의 사이사이로 하늘을 가득채운채 푸른빛을 길게 호흡한다.
이제 그 가지끝에서 내뿜는 초록빛 이파리는 나무의 날숨이다.
가을까지 길게 내쉰다.

<사진 2>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초록도 나무 두 그루가 맞들면 훨씬 낫다.

<사진 3>
멀리 아파트의 사람들은
나무를 보며 피로를 풀겠지만
나무는 아파트를 볼 때마다 피로하다.

<사진 4>
초록이 둘러싸면
강줄기도 초록으로 물든다.


<사진 5>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강줄기를 따라 질주한다.
초록은 지천이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면
속도가 초록을 삼킨다.
그러면 넘치는 초록도 전혀 눈을 채우지 못한다.
초록의 만찬을 즐기고 싶다면 조용히 그 곁을 걸어다닐 일이다.

<사진 6>
초록이 제자리에 붙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초록은 뻗어나간다.
세상을 온통 물들일 듯이.

<사진 7>
갈색의 마른 잎으로 겨울을 나는 동안
가랑잎과 바람의 대화는 항상 서걱거렸다.
다시 연두빛으로 물든 요즘
가랑잎과 바람의 대화는 예전처럼 살랑대고 있다.

<사진 8>
소나무가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고 있었다.
계절에 무임승차하려면
엄지를 아래로 내렸어야 했으리라.
그러나 이 땅의 계절은 소나무의 손가락이 어디로 향하든
그에 개의치 않고 신록의 열차에 무임승차시켜 주었다.

<사진 9>
비닐이 모아준 따뜻한 온기 속에서
벼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황금빛이다.

<사진 10>
낙엽송의 가는 이파리는
대지의 실핏줄이다.
초록을 하늘로 실어나른다.
그 싱싱함이 하늘을 더욱 푸르게 물들인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