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주부·노인은 막 부려먹어도 된다?

[월급 '반쪽', 엄마·아빠도 힘내고 싶다 ⑤] 최저임금의 사각지대

등록 2005.05.09 05:49수정 2005.05.0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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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반쪽', 엄마·아빠도 힘내고 싶다
오마이뉴스 - 비정규직 공대위 공동기획

비정규직 800만 시대. 이들은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항상 해고의 위험 앞에 서있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거나 더 힘들게 일하지만 월급은 '반쪽'입니다. 그러나 불만도 이의제기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언제든 고용계약이 파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workfair.or.kr)와 함께 '월급 '반쪽', 엄마·아빠도 힘내고 싶다'는 제목으로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 1. 어려서 막 부려먹기 좋다

a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휴일, 연장수당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휴일, 연장수당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여환(20·경희대 2학년)씨는 지난 겨울방학에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한푼도 받지 못했다. 밤잠을 설치며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는 이 일로 인해 세상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어른들을 불신하게 됐다.

그는 시간당 2500원을 받기로 하고 PC방에서 보름 동안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임금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던 주인은 PC방을 닫고 달아났으며 지금은 연락조차 끊긴 상태다.

그는 "일을 시키고도 임금을 떼어먹으려는 고용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어른들과 사회를 믿을 수 없게 됐다"며 "피해를 입었지만 호소할 곳이 별로 없었다"고 원망을 털어놨다.

서상혁(20·대학 휴학)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 2002년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6개월 동안 일했다. 당시에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몰랐으며 8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토·일요일과 야간에도 일했지만 평상시처럼 보통 시급을 받는데 그쳤다고 서씨는 밝혔다.

그는 "대다수 아르바이트생들은 근로기준법을 모르고 있으며 알고 있더라도 근로자의 권리를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단체의 고소·고발로 인해 패스트푸드업체들이 아르바이트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추세인 반면 편의점, PC방, 음식점 등은 여전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라며 노동부의 단속을 당부했다.


서씨는 또한 "편의점과 PC방의 경우 2300원∼2500원의 시급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데 이는 최저임금법(시급 2840원) 위반"이라며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 준수에 대한 사회인식이 시급하다. 노동부가 공익광고 등을 통해 아르바이트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만들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한편 지난해 7월 참여연대는 롯데리아, 버거킹, 맥도날드 등 5개 패스트푸드업체가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연장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근로기준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서씨도 이 일에 동참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임정혁 부장검사)는 지난 3월 "대표이사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혐의없음'과 '각하' 결정을 내렸다. 참여연대는 "근로계약의 주체와 임금채무의 채무자는 법인이기 때문에 대표이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지난달 7일 항고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 "부당한 일 당해도 참고 일한다"
대기업 패스트푸드점 알바생 법정수당 21억7천만원 미지급 들통

아르바이트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 노동이며 아르바이트생(단시간 근로자)들은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대다수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모른 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면서 피해를 참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인호 인천문학정보고 교사가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4개 고등학교 2학년 378명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경험에 대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51%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생이 38.5%로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45.4%는 일을 하는 게 자랑스럽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또 36.0%의 학생은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또 노동부가 아르바이트생을 주로 고용하는 패스트푸드점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부가 방학기간인 지난 1월 1일∼2월 28일까지 아르바이트생을 주로 고용한 사업장 374개소에 대해 근로관계법 준수여부를 지도·점검한 결과 233개 사업장에서 494건의 법 위반사실이 적발됐다. 휴일 수당과 연장·야간수당,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업소는 53곳으로 조사됐고 피해 청소년은 95명(805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월 롯데리아와 KFC 등 6개 패스트푸드업체 직영점을 대상으로 노동부가 청소년노동자 고용실태를 점검한 결과, 2003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1만4053명의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이 휴일·연장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 21억7천만원을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2. 주부라서 막 부려먹기 좋다

a 경기일반노조 이마트 용인수지분회장 최옥화씨.

경기일반노조 이마트 용인수지분회장 최옥화씨. ⓒ 오마이뉴스 조호진

"회사측은 파트타임을 하면 가정도 돌보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말했지만 비정규직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연장근무와 청소강요…. 자존심이 짓밟히고 인간적인 모멸감이 들어도 1년 짜리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참아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조를 만들자 이번에는 노조탄압을 일삼고 있다."

'신세계이마트 용인수지점'에서 파트타임 노동자(단시간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주부 최옥화(여·43·민주노총 경기일반노조 신세계 이마트 수지분회장)씨는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은 없어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최씨를 비롯해 이마트 용인수지점 계산원(캐셔) 23명은 지난해 12월 21일 노조를 만든 뒤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하지만 노조 결성 일주일만에 18명이 노조를 탈퇴했고 현재는 분회장 최씨를 비롯해 4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정규직 보장 ▲일방적 연장근로 제한 ▲유급 생리휴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최옥화 분회장 등 노조원 3명이 신청한 '부당 노동행위 및 부당정직 구제신청사건'에 대해 신세계 이마트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노위는 회사측의 ▲단체교섭 거부 ▲노조활동 방해 ▲노조간부에 대한 정직처분 등이 부당노동행위라고 밝혔다.

하지만 신세계이마트는 지노위의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측은 3개월 정직기간이 끝나 복귀한 분회장 최씨 등 노조간부 3명에게 자택대기명령을 내렸으며 지난 2일 개최한 인사위원회에서도 천막농성 등을 이유로 징계를 해제하지 않아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씨의 꿈은 노동운동가가 아니라 정규직이라고 한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조를 만든 비정규 주부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3개월 정직'과 '자택대기명령'. 최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비정규직의 권리찾기를 다짐했다.

"주부 캐셔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노조를 탈퇴해야 했고 회사측은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노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노조결성도 투쟁경험도 처음이지만 상식적인 요구와 대화조차 거부하는 이마트의 비상식적인 행위를 보면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월요일(9일)부터 본사 앞 1인 시위를 시작할 계획이다."

# 3. 노인이라서 막 부려먹기 좋다

a 경비원 김씨는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쉬는 게 아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경비원 김씨는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쉬는 게 아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서울 강남의 J아파트 경비원 김영호(64·가명)씨는 다단계 파견 노동자다. 이 아파트 자치관리위원회가 아파트 전체에 대한 관리용역을 B업체에 맡겼고 B업체는 다시 경비와 청소 등의 분야를 C업체에게 하청을 줬다.

김씨는 일년 내내 하루 일하고 하루 쉰다. 명절이나 공휴일도 예외가 아니며 휴가는 아예 없다. 특별한 애경사(哀慶史)가 생겨 어쩔 수 없이 결근해야 할 경우에는 동료 경비원을 대신 근무시키고 비용은 자신이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80만원 가량. 이 임금에는 퇴직금과 수당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김씨 같은 경비원들은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해도 근로기준법상의 가산수당을 받지 못한다. 휴식시간 및 대기시간이 많은 경비 노동자와 일반 노동자를 동일하게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경비원들을 '감시·단속적 근로자'라고 부르며 가산수당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다.

김씨는 "본연의 업무인 감시와 함께 주차관리, 잡초뽑기, 정원수관리, 열쇠보관, 우편물 전달 등의 온갖 잡일이 경비의 몫"이라며 "화장실을 가기 위해 경비실을 잠깐 비웠다가 근무를 게을리 했다고 시말서를 요구받기도 한다.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쉬는 게 아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대명사인 경비원은 김씨 같은 노인들의 몫이다. 중앙고용정보원의 산업별·직업별 고용구조 조사(2002년)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고령 노동자가 감시·단속적 근로자 전체의 36.7%(12만2665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경비원은 법적으로도 최하의 인간으로 대우받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며 "한 평도 안 되는 비좁은 경비실에서 날밤을 새우며 24시간을 근무하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늙었다고 권리마저 박탈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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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명이나 늘어난 '감단 근로자'...경총의 놀라운 셈법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되면 경비원들도 2007년부터 최저임금 적용대상

지난달 20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감시·단속적 근로자(이하 감단 근로자)들의 실태와 노동권 보호방안'이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과 김정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는 중앙고용정보원이 조사한 산업별·직업별 고용구조 결과를 각각 발표했다. 김 소장은 2002년 조사 결과를, 김 상무는 2003년 조사 결과를 각각 인용했지만 20만명 이상의 차이를 나타내 참석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김 소장은 2002년 조사결과를 인용하면서 감단 근로자가 33만4846명이라고 밝혔다. 반면 2003년 조사결과를 인용한 김 상무는 감단 근로자가 56만4294명이라고 밝혔다. 자그마치 20만명 이상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김 소장의 발표 자료에 없는 전기설비 조작원(7만3858명), 창고관리인(2만9723명), 기타 서비스 관련직(3만8582명) 등이 김 상무의 감단 근로자 현황에 포함된 게 그 이유였다. 김 상무가 이들을 감단 근로자에 포함시킨 배경에는 가산수당과 최저임금에서 배제해 기업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노동계는 분석했다.

김 상무는 감단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노동계와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임금상승에 의한 기업의 막대한 추가부담 ▲60세 이상의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기회 상실 ▲경비원 인건비 상승분이 입주민에게 전가돼 사회분쟁 야기 등의 이유를 꼽았다.

국회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달 25일 최저임금 사각지대인 아파트경비원 등의 감단 근로자, 수습 근로자, 취업 6개월 미만의 미성년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해 전체 회의로 넘겼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는 2007년부터 경비원들도 최저임금을 보장받게 된다.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2840원이었다.

덧붙이는 글 | 비정규직 공대위는 차별철폐 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좌번호는 308-04-993301(조흥은행/예금주 김성희)

덧붙이는 글 비정규직 공대위는 차별철폐 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계좌번호는 308-04-993301(조흥은행/예금주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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