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의 봄, '알라와이 물길'을 산책하며

등록 2005.05.11 18:08수정 2005.05.12 20:4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성탄절부터 여름을 맞은 하와이 맨발의 산타

성탄절부터 여름을 맞은 하와이 맨발의 산타 ⓒ 이풍호

하와이의 날씨는 늘 여름(常夏)이라지만 이곳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머나먼 태평양 너머 이국땅에서 몸으로 느끼는 계절이라 달력을 보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기 애매한 것도 사실입니다.


매년 성탄절 장식에는 으레 바지를 걷어올린 맨발의 산타가 등장하니 호놀룰루에 살면서 마음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의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기자가 쉬는 휴일입니다. 수요일 아침 산책 시간은 갓 깎은 잔디밭에서 상긋한 냄새까지 풍겨 기분이 '짱'이었습니다.

산책길에서 하와이 봄 표정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제 집에서 걸으면 불과 한 골목,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 와이키키 해변 동네 건너편에 있는 코코넛트리가 무성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지난 해에 개교 50주년을 맞은 학교입니다.

a 물길가에 제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물길가에 제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 이풍호

2년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호놀룰루로 이사와서 새 삶의 자리를 잡은 곳. 처음 알라와이 운하(Ala Wai Canal)를 따라 이어지는 전혀 도시의 때가 묻지 않고도 조용한 산책길을 보았습니다. 환경이 아주 낙원 같아서 제 나머지 인생의 평화를 여기서 찾으리라 마음먹으며 집을 사고, 딸의 학교를 정했었지요.

그리고 학교 옆으로 난 좁은 산책길을 ‘알라와이 물길’이라고 저 혼자 명명까지 해놓았습니다. 수요일 아침 학교에 딸을 데려다 놓고 이 물길을 걸었습니다. 혼자 걸으며 생각하며 노래를 흥얼대며 신록을 감상하는 일은 평소 바쁜 일과를 보내는 저 같은 직장인들에게 아주 필요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a 가로등마저 잠든 '알라와이 물길' 산책길

가로등마저 잠든 '알라와이 물길' 산책길 ⓒ 이풍호

얼마를 걷다가 문득 시야를 끄는 것들이 있어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물길가에 피어 미소짓는 갖가지 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것은 이름을 알 수 있는 꽃들이고, 다른 것들은 이름도 모르는 열대의 꽃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a

ⓒ 이풍호

그 중에는 어느 한인 동포가 씨를 여기에 심어놓았는지 아니면 씨들이 먼 고국땅에서 태평양의 파도를 타고 여기까지 안착하였는지 고향집 안뜰 마당에 어머니께서 해마다 빠짐없이 심어놓으시던 분꽃과 나팔꽃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분꽃이 피고 진 자리에 남은 새까만 씨를 깨뜨려 생긴 하얀 가루를 여동생들의 얼굴에 발라주면서 장난하던 그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a 내 고향집 안뜰, 어머님의 꽃밭에 피던 분꽃(위)과 나팔꽃(아래)

내 고향집 안뜰, 어머님의 꽃밭에 피던 분꽃(위)과 나팔꽃(아래) ⓒ 이풍호

알라와이 물길에 바닷물이 넉넉히 차오르면 물가에 밤새 잠자던 카누를 타고 물 위를 가르며 미끄러져 나가는 검은 피부색의 이 동네 사람들이 더욱 생기있고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제나 살갗을 살랑살랑 건드리는 무역풍을 타고 마치 제 몸의 세네 배쯤이나 될 덩치 큰 하와이 원주민들의 미성이 섞인 노래소리가 들려옵니다. 온몸이 넘실대는 하와이 춤과 더불어 하와이언 송을 들으면 어느새 상냥하고 인심좋은 알로하 정신(Aloha spirit)이 뚝뚝 묻어납니다.

a 밤새 잠에 취한 채 물길가에 누워서 항해를 꿈꾸는 카누들

밤새 잠에 취한 채 물길가에 누워서 항해를 꿈꾸는 카누들 ⓒ 이풍호

상념에 젖어 한참 물길을 걷다 아침 이슬에 촉촉히 젖은 푸른 잔디를 밟고 물가에 다가서면, 전날까지 물길 언덕 한 구석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던 어미 물오리가 어느새 알에서 깨어나온 새끼 오리 한 마리에게 수영과 자맥질 훈련을 시키는 모습이 물안개 속에서 아련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a 이른 아침 수영을 즐기는 어미 물오리와 새끼 오리

이른 아침 수영을 즐기는 어미 물오리와 새끼 오리 ⓒ 이풍호

새 아침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는 봄날의 그 시간은 여느 아침과는 달리 활기를 넣어주는 일들만이 내 눈에 즐겁게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상쾌한 아침을 ‘알라와이 물길’에서 맞이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인하공대 전기공학과와 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s Angeles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0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캘리포니아주정부 교통국(Caltrans) 전기엔지니어로 근무한 후, 2003년부터 호놀룰루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문학, 월간문학, 시문학, 시조문학, 죽순 등을 통해 문학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풍호 문학서재는 http://paullee.kll.co.kr 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인하공대 전기공학과와 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s Angeles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0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캘리포니아주정부 교통국(Caltrans) 전기엔지니어로 근무한 후, 2003년부터 호놀룰루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문학, 월간문학, 시문학, 시조문학, 죽순 등을 통해 문학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풍호 문학서재는 http://paullee.kll.co.kr 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80.12.20 LA로 이주 .1986 미국시민.1981-2000 Caltrans 전기기사 .인하공대 전기과 졸업 CSULA 영문과 졸업 .2003.9.27- 호놀룰루거주 .전 미주중앙일보 기자 .시인(월간문학 시조문학 1989,시문학 1992,현대문학 1995) .현 하와이 토목기사공무원 .my YouTube: http://bit.ly/2SQY7sY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5. 5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