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94

끝나지 않은 싸움

등록 2005.06.20 17:05수정 2005.06.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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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병사 서우신의 진영에 다다른 장판수는 먼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서우신이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이 2만명이나 된다는 말을 익히 듣긴 했으나 실제로 보니 많은 병사들이 전란 중에도 한 번의 싸움도 겪지 않은 채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이 자는 난리 중에 뭘 했단 말이네?’


서우신의 병력은 삼도의 정예를 모아 놓은 데라 굳건해 보였고, 마침 밥 때라 이리저리 식사가 옮겨지는 것을 보니 물자또한 넉넉해 보였다. 장판수는 슬슬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장 초관! 한영장이 죽을 것 같소!”

차예랑이 말위에서 목을 떨어트리고 있는 한기영의 몸을 잡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진중의 한 병사가 한기영을 알아보고선 급히 사람들을 불렀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이 무슨 일인가!”

진중에 잠시 소란이 일어났고 병사들을 데리고 탈영한 줄로만 알았던 한기영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남병사 서우신이 직접 달려왔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리 된 것인가?”

그때쯤 한기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마치 새로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서우신에게 소리쳤다.


“나으리! 백성들이 몽고병에게 살육 당하고 있소이다! 내 죽어 귀신이 될지언정 이 원통함을 잊지 않으리다!”

한 치의 더듬거림도 없이 말을 토해놓은 한기영은 마지막 숨을 몰아 쉰 후 눈을 뜬 채 절명하고 말았다. 장판수는 서우신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보라우 잘 나신 병사 나으리! 이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상감께서 오랑캐 발아래 엎드려 절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던 기야? 부끄럽지도 않네?”
“무엄하다! 당장 손을 놓아라!”

주위에 있던 군관들이 칼집에 손을 대며 장판수에게 소리쳤지만 흉흉한 장판수의 눈빛에 모두들 섣불리 달려들지는 못했다. 서우신은 멱살이 잡힌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네. 허나 이미 조정은 항복을 하였고 오늘은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날이니 어쩔 수가 없네.”

병마절도사가 한낱 초관에게 하는 말치고는 너무나 궁색한 변명이었기에 장판수는 저도 모르게 멱살을 잡았던 손에 힘이 턱하니 풀려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장판수의 투지가 꺾여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랑캐들의 횡포가 극심한 판국에 계속 싸우겠다는 병사들이 있으면 어찌할 것이오이까?”

서우신의 곁에 있는 군관 하나가 조심스레 물어보았고 그 말에 다른 군관들도 동요하는 빛을 보였다. 장판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쏟아 내었다.

“조정이 항복했다고 어찌 백성들이 오랑캐에게 도륙당하는 걸 두고만 볼 것입네까! 가서 집안을 지켜야 할 자나 굳이 동참을 하지 않을 병사는 내보내시오!”
“겨우 초관 따위가 어찌 이리 무엄한가? 그런 일은 우리도 할 수 있으니 나서지 말아라!”

종사관 하나가 나서며 장판수를 꾸짖었으나 장판수는 핏줄이 서도록 꽉 잡은 손으로 끈을 풀러 칼자루를 쥐어 내보였다.

“당신네들이 여기서 군량미나 축내고 있을 때 내래 이 칼로 몇 명의 오랑캐를 베었는지 알기나 합네까?”

종사관은 그 말을 듣자 얼굴만 붉어질 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다른 무관이 나서서 장판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미관말직인 내가 과연 그 칼로 얼마나 많은 오랑캐를 베었다고 감히 그런 허튼소리를 하느냐?”

장판수가 채 말도 하기 전에 다른 병사들이 앞 다투어 그 공을 옹호했다.

“장 초관이 범 같이 뛰어다니며 숱한 오랑캐들을 벤 공을 몰라줄망정 왜 그러시오!”
“장 초관 말마따나 군량미나 축내고 앉아 있으니 전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턱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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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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