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사가 한 가정을 지킬 수 있다면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25) 더위란 게 별 건가요?

등록 2005.07.14 19:12수정 2005.07.1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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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가 끝났나 보다


마침내 긴 장마가 끝났나 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뙤약볕 속에 서울에서 안흥 산골마을로 내려왔다. 오늘 아침 아내는 서울로, 나는 안흥으로 내려왔기에 집이 비었다. 그래서 시외버스에서 내린 뒤 점심 요기를 하고 집에까지 걸어가려니까 짜증이 났다. 그래서 버스 정류소 옆 택시 주차장에 갔으나 여느 때는 마냥 대기하고 있던 두 대가 모두 손님을 모시고 떠나고 없었다.

아마도 나란 사람은 편케 사는 팔자가 아닌 모양이라고 뙤약볕 아래 터덜터덜 20여 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난 월말부터 어제까지 보름 넘게 무척 바쁘게 지내면서 여기저기 쏘다녔다. 집안 일로, 광복절 전후로 펴낼 신간 준비로, 장마도 의식치 못할 만큼 정신을 한 곳에 쏟았다.

a LA 한 PC방에서 본사로 송고했던 필자

LA 한 PC방에서 본사로 송고했던 필자 ⓒ 진천규,LA한국일보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후 이번 기간이 가장 기사 송고가 뜸했던 것 같다. 미국에 가서 머물 때도 일주일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인터넷 보급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미친 미국 LA에서는 그곳 PC 방까지 찾아가서 푸른 눈의 젊은이들 틈에 끼어 한복 입은 한국의 시골뜨기가 자판을 두들겨서 서울 본사로 송고한 적도 있었다.

그새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찬물로 온몸을 뒤집어쓰고 새 옷으로 갈아입자 갑자기 행복했다.


우편함과 책상 위에는 멀리 미국에서부터 부산, 천안 가까이는 서울에서 보낸 정다운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서 맺은 분들로 그동안 기사를 자주 못 보았다고 하면서 나의 안부와 건강을 기원하는 사연들이었다. 어떤 이는 우체국 택배로 마음의 선물까지 담아 보냈다. 여태 한 번 만나 뵙지 못한 분들이지만 반가운 마음에 울컥했다.

사실은 다른 글 쓸 일도 잔뜩 밀려 있지만 나는 지금 컴퓨터를 켜고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부터 먼저 쓰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내 글을 기다려주는 독자 분에게 안부인사와 내 메시지를 올린다.


현대사회의 한 특징인 익명성, 다량성, 일회성 이런 메커니즘이 가득 찬 현실이지만 그동안 나는 메마른 자판의 글자에, 문장 속 행간에 내 감정을 불어넣고는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해지기를 기원하면서 밤잠을 설쳤다. 숱한 독자 가운데는 이심전심 통한 바가 있었는지 댓글로, 메일로, 우편이나 전화로, 심지어는 성금까지 보내주셔서 내가 감히 생각지도 못하였던 워싱턴 근교 칼리지파크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까지 다녀왔다.

무더위에 건강하십시오

며칠 전, 집안모임이 멀리 경북 김천에서 있었다. 외사촌 형수 칠순 잔치로 초대받고는 많이 망설이다가 지난날 신세진 것을 생각하여 잠깐 다녀왔다. 시골잔치도 요즘은 현대화되어 집에서 차린 집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할 사람도 없고 시골은 교통이 불편하기에 교통이 편리하고 시설이 좋은 가까운 도시 호텔을 이용한다고 한다. 막상 참석해 보니까 먼 길을 달려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한 마당에서 같이 놀며 자랐던 사촌 형제자매들을 수십 년만에 다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무척 오랜만에 만난 경북 영주에 사는 외사촌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이웃에 사는 친구가 남편과 갈등으로 곧 이혼할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얼굴 표정도 달라지고 생각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연을 물은즉,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어느 작가의 글을 읽고 가정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 작가가 누구냐고 했더니 천만 뜻밖에도 요즘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글을 연재하는 '박도'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 고종사촌오빠라고 하자 그 친구도 무척 놀랬다. 그래서 내가 마침 책꽂이에 있는 오빠의 처녀작 <비어 있는 자리>를 빌려줬더니 사실로 믿으면서 무척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은 친구의 가정을 오빠가 살려줬다고 대신 감사인사를 했다.

관련
기사
- 내 가정을 지키는 비결

불우한 청소년을 위한 잡지 가운데 <주변인의 길>이란 게 있었다. 원고청탁이 와서 몇 차례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고료 대신 내 글을 읽은 청소년들이 선생님의 글을 통해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편지와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험한 인생을 사노라면 삶의 고비를 만나게 마련이다. 그때 그는 누구의 말에 따라 그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나 떠오르는 말은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내 글이 그동안 몇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았다는데 무거운 책임감과 보람을 느낀다.

a 휴스턴에 사시는 허도성 선생

휴스턴에 사시는 허도성 선생 ⓒ 박도

메일함을 열자 미국 휴스턴에 사시는 왕산 후손 허도성(71) 선생으로부터 간곡한 사연이 담겼다.

"박 선생이 제 조부(왕산 허위 선생) 발자취를 여러 차례 보도해 주시고 여러 책에도 써주셔서 EBS에서 특집방송도 하게 하고, 왕산 기념사업회가 열리는 계기도, 키르키즈스탄에 사는 사촌 아우 허블라디슬라브(54)가 3년간 귀국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일조도 해주셔서 가까이 있다면 찾아가서 두 손을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이지만 아무튼 내 기사(글)가 한 가정을 지키고, 방황하는 한 청소년에게 꿈을 심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 버린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자랑스러운 조상과 조국을 되찾았다면 얼마나 분외의 영광된 일인가.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더욱 진실한 글로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무더위에 지지 마시고 건강하십시오. 더위란 게 별 건가요. 한 달만 참으면 슬그머니 물러갈 놈 아닙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오는 7월 20일부터 엿새간 아주 가깝고도 그동안 엄청 멀었던 곳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다녀온 뒤에 자세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오는 7월 20일부터 엿새간 아주 가깝고도 그동안 엄청 멀었던 곳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다녀온 뒤에 자세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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