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표 콩나물밥 나갑니다!"

불볕더위에 입에 단내가 나도록 고생했을 남편을 콩나물밥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등록 2005.07.20 11:45수정 2005.07.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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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여름태양에 하늘마저 맥없이 녹아내릴 것 같은 요즘, 더워도 너무 덥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지붕을 뚫고 있기 때문인지 집안에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찬물을 끼얹게 한다.


물을 틀기만 하면 수도꼭지에 금세 방울방울 이슬이 맺히는 지하수. 그 지하수가 요즘엔 효자노릇을 한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뚱이에 몇 번 물을 끼얹고 나면 ‘어 추워 어 추워’를 내뱉는 내 입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경망스런 변덕을 부린다. 간사한 게 사람이라더니.

어제 저녁(19일) 해거름. 땀범벅이 되어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말하기도 귀찮은지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욕실 앞에 벗어 놓은 땀에 전 남편의 옷들이 마치 뱀이 허물을 벗어 놓은 것 같다. 비틀어 짜면 금방이라도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남편의 옷가지들을 챙겨 세탁기에 넣으면서, ‘뭐 좀 입맛 당기는 거 없을까. 땀을 이렇게 흘렸으니 또 이만큼 채워줘야 할 텐데. 뭐 쌈빡한 없나.’

음식엔 젬병인 내가 이럴 땐 참 야속하다. 음식 솜씨 좋은 사람들은 그저 뚝딱뚝딱 맛난 것들을 잘도 만들던데. 음식은 손끝에서 나온다고, 내 손끝엔 그 재주는 눈을 씻고 봐도 영 찾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잘 먹어주는 남편의 식성 덕에 젬병인 내 음식솜씨가 지금까지는 그래도 잘 버티어 오고 있다.

콩나물밥. 어제 저녁 메뉴로 난 콩나물밥을 결정했었다. 워낙에 비벼 먹는 것을 즐기는 남편이라 아마도 좋아할 것 같았다.


콩나물밥은 원래 우리 고모의 오래된 특별 메뉴다. 학창시절 여름방학을 하면 나는 늘 고모네에 갔다. 원주에서 서점을 하시는 고모부 탓에 방학 내내 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겐 큰 행운이기도 했거니와 고모가 해주시는 지극히 환상적인 콩나물밥을 질리게 먹을 수 있다는 그 두 가지가 나를 늘 고모네로 향하게 했었다.

고모는 요즘도 접대용 별미로 콩나물밥을 고집한다. 일 년에 한두 번 고모네를 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고모네 밥상엔 콩나물밥이 오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근 30여 년 간 한해에 한두 번 내가 고모네 콩나물밥을 먹어 왔건만 먹을 때마다 그 감칠맛에 감탄 아닌 감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 몇 번 나도 콩나물밥을 해보았다. 하지만 영 밋밋한 것이 도대체 고모네서 먹었던 그 콩나물 밥맛이 나지가 않았었다. 도대체 비결이 뭐기에….

남편이 목욕을 하는 사이. 나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고모네 콩나물밥에 관해 몇 가지 비법을 전수 받았다. 타는 듯한 불볕더위 아래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고생한 남편에게 입에 짝짝 달라붙는 콩나물밥 한 그릇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보상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먼저 싱싱하고 통통한 콩나물을 깨끗이 씻어 물기가 빠지게 바구니에 건져 놓았다. 쌀을 씻어 밥솥에 담고 밥물을 맞추며 평소 밥물의 한 6부쯤으로 맞추었다. 콩나물에서 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들기름을 한 숟가락 정도 콩나물 위에 두르고 약간의 소금도 솔솔 뿌렸다. 들기름을 두르는 것은 들기름의 고소한 맛과 향이 밥과 콩나물에 고루 배게 하기 위함이고 약간의 소금은 콩나물의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소금은 아주 약간만 뿌려 주어야 한다. 그 이유는 콩나물밥의 압권은 바로 나중에 넣는 양념장이기 때문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게 되면 콩나물밥이 짜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하는 사이 양념장을 만들었다. 밭에서 금방 뽑아온 쪽파를 깨끗이 씻어 종종종 썰고 거기다 진간장을 섞었다. 다음으로 마늘 다진 것, 참기름, 고춧가루, 깨소금 등을 넣어 걸쭉하게 양념장을 만들었다. 쪽파를 뽑으면서 노란 호박꽃 사이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던 호박도 하나 따왔기에 호박도 기름에 볶았다.

그세 밥솥에서 ‘삐이 삐이’ 하는 신호음이 들렸다. 얼른 밥솥 뚜껑을 열었다. 평소 밥할 때처럼 오래 뜸을 들이게 되면 콩나물이 질겨지기 때문이다.

a 들기름이 고루고루 베어 있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콩나물밥

들기름이 고루고루 베어 있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콩나물밥 ⓒ 김정혜

밥솥뚜껑을 여는 순간 내 눈과 코가 황홀해 졌다. 들기름이 고루고루 배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밥 위로 자르르 흐르는 윤기와 고소한 향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맛을 보지는 않았기에 감히 고모네 콩나물밥이라 칭할 수 없었지만 나는 배짱 좋은 호기를 부려 보았다.

“자, 고모 표 콩나물밥 나갑니다.”
“어? 콩나물밥이네.”
“고모네 콩나물밥 자기도 맛있다고 했잖아. 내가 한번 흉내 내 봤는데.”
“글쎄. 무늬만 자기 고모네 콩나물밥 아니야?”
“그러게. 한번 먹어봐. 그리고 점수 좀 매겨줘 봐.”


a 밭에서 금방 뽑아 온 쪽파로 만든 양념장

밭에서 금방 뽑아 온 쪽파로 만든 양념장 ⓒ 김정혜


남편은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콩나물밥에 양념장 한 스푼을 끼얹고 호박 볶은 것과 평소 밥 비빌 때 빠지지 않는 청양고추 다진 것도 약방에 감초처럼 함께 넣어 쓱쓱 비볐다. 입이 터져라 한 숟가락 입으로 밀어 넣었다.

a 콩나물밥과 양념장이 만났다.

콩나물밥과 양념장이 만났다. ⓒ 김정혜


“어때?”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대로는 고모가 일러주신 비법대로 정성껏 만든 콩나물밥에 이왕이면 남편이 100점이라는 빨간 동그라미 다섯 개를 그려 주기를 내심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a 콩나물밥과 양념장과 호박이 다시 만났다.

콩나물밥과 양념장과 호박이 다시 만났다. ⓒ 김정혜

“90점.”

뜻밖이었다.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에 이렇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혹시 고소한 향에 미리부터 허기지 배를 잔뜩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처음으로 내개 후하게 쳐준 그 90점이라는 점수가 거짓이 아니란 걸 나는 아침에야 알 수 있었다. 한 그릇이나 됨직한 콩나물밥이 밥통에 남겨져 있었는데 아침에 밥통을 열어보니 밥솥이 깨끗했다.

그렇다면 어제 저녁 내가 만든 콩나물밥은 결코 무늬만 고모 표 콩나물밥이 아닌 완벽한 고모 표 콩나물밥이었던 것 같다. 이참에 나도 고모처럼 우리 집 별미 메뉴로 김정혜 표 콩나물밥을 탄생시켜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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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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