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엔 훌륭한 이유도, 저속한 이유도 없다

<서평> 나는 아프리카로 간다

등록 2005.08.10 14:18수정 2005.08.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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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뿌연 안개. 대지는 넓고 하늘은 드높은 전형적인 초원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어 태양을 향해 기지개를 펼치는 뒷모습이 클로즈업 되고, 잠시 후 장작불을 지펴 쇠 컵에 따른 모닝커피 한잔을 그윽하게 마시는 모습.

a 저자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이다.

저자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이다. ⓒ 나영준

혹 해외 봉사활동을 꿈꾸는 이들의 상상 속에 이런 장면이 숨어 있지는 않았을까. 밤늦은 시간 TV를 켜면 지구촌 오지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봉사활동을 펼치는 동포들의 이야기가 보여 지곤 한다.


대개는 그들이 그 땅에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가를 보여주지만 때론 연출을 위한 목가적 풍경이 펼쳐진다. 고개 숙여 한 없이 감사해 하는 현지 원주민들이 등장하고, 잠시의 휴식시간에 둘러보는 드넓은 대지의 광경은 지켜보는 시청자에게 때때로 알지 못할 막연한 부러움마저 일으킨다.

봉사란 그렇게 낭만적인 것일까. 혹은 그 반대의 도저히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연속일까. 과연 남들 안 가는 곳에서, 남과 다른 상황을 겪어내는 그들은 일상은 어떨까. 다소 '뻔한' 것 같은 질문에 '뻔하게' 대답하지 않는 이가 있다.

봉사의 기록은 엄숙해야만 할까?

a 맑은 표정의 현지 소녀

맑은 표정의 현지 소녀 ⓒ 달과 소

저자인 야마모토 토시하루는 일본의 의사이자 사진가이다. 국경없는 의사회(Medicins Sans Frontieres : MSF)의 일원으로 시에라리온에서의 봉사활동 6개월의 경험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이 책은 '숭고하고 너무 힘든' 식의 자화자찬을 늘어놓지 않는다.

온 몸이 가려운 '옴'에 결렸을 때의 경험을 기록한 부분에서는 책장을 덮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홀딱 벗은 채 일명 BB로션(벤질 벤조이드)를 중요한(?) 곳을 제외한 몸 전체에 바르고, 그것이 마를 때까지 '모닝구 무스메(일본의 여성 댄스그룹)'의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은 마치 하루키 단편소설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 아!"하는 노래와 함께, 맨주먹을 앞으로 쭉 내지르는 액션을 취해야 하는 것이 경쾌한데, 이것이 잘못 되었다. 기합을 넣으며 주먹을 앞으로 내지른 순간 나의 물건도 옆으로 심하게 흔들려 버린 것이다.(중략) 그리고는 곧바로 몸에서 격렬한 '열기'가 솟구쳤다.
"으악!" (본문 39쪽, BB 로션 中)


또 설사를 해결하러 위해 찾은 화장실에서 손바닥만큼 큰 나방 떼의 습격(?)에 혼비백산해 결국 푸른 하늘이 보이는 초록빛 논 한가운데에 쭈그려 앉아 고국의 프로야구를 떠올리는 모습에선 유쾌하고도 평범한 한 인간의 일상사를 보여주고 있다.


최악의 상황, 인간에 관한 비망록

a 저자 야마모토 토시하루와 현지 동료들

저자 야마모토 토시하루와 현지 동료들 ⓒ 달과 소

물론 그 안에 가벼운 웃음만 있진 않다. 수많은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 돼 30살이면 환갑에 해당하는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세상에서 가장 짧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안에 위치한 인구 약 450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이며 동시에 세계 최악의 의료 통계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 그 곳.

아이들 3분의 1이 채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죽어가며 그 배경에는 내전으로 인한 식량 부족과 열악한 위생 환경이 있다. 그리고 저자는 다섯 살 안팎의 어린이들을 유괴하여 마약을 주사한 뒤, 총을 쥐어주고 전장에 내보내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정부군의 만행 역시 담담히 기록한다. 물론 그가 그런 현실로 뛰어들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그에 대해서도 솔직히 밝히고 있다.

'국제자원봉사라는 것은 어차피 자기만족이 아닐까?'
이렇게 자신의 꿈과 삶의 방식에 대하여 고민하면서도 국제자원봉사라는 말은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틀림없이 국제자원봉사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며 무의미하게 끝나 버리기 쉬운 것이다. 그렇지만 어딘가에는 자기만족이 아닌 의미 있는 국제자원봉사의 길이 있을 것이다.'(본문 50쪽)


a 단백질 결핍 영양실조로 인한 전신부종에 걸린 아이

단백질 결핍 영양실조로 인한 전신부종에 걸린 아이 ⓒ 달과 소

그 후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후, 그는 일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지속성'이라고 말한다. 단기간 의료 봉사활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이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미래에 정말로 도움이 되기 위해선, 자신이 떠난 뒤에도 같은 수준의 의료 활동이 유지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현지의 의료요원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으려고 하기보단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료 활동에 매진한다. 책은 그런 기록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 비망록에 가깝다.

봉사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다

사실 해외자원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의 시각은 어떤가. 근엄하고 순결한 의식을 행하는 이들로 보아오진 않았을까. 그들의 몸 어딘가 종교적 신념이라던가, 고귀한 희생정신 그 자체가 배어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진 않았던가.

그래서 혹 그들과 봉사활동에 대해 알 수 없는 경외심을 품어왔던 이들이라면 책이 보여주는 경박하지 않은 유쾌함에, 삶에 대한 자상한 시선에 주목해보자.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a 서아프리카 구석에 자리 잡은 시에라리온은 내전으로 궁핍한 현실을 겪고 있다.

서아프리카 구석에 자리 잡은 시에라리온은 내전으로 궁핍한 현실을 겪고 있다. ⓒ 달과 소

해외 자원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참가 이유는 정말 다양합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것이 좋다던가, 영어 회화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또는 왠지 좋은 일을 좀 해 보고 싶어서 참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요.(중략) 심지어는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훌륭한 이유도 저속한 이유도 없습니다. 해외 자원봉사에 참가하면서, 겉만 번드르르한 말을 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사실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든가,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든가 하는 가벼운 이유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현지에서의 적응력도 뛰어나, 이상은 정열에 불타고 있지만 적응력이 없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소중하죠.(야마모토 토시히루)

나는 아프리카로 간다

야마모토 토시하루 지음, 문종현 옮김,
달과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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