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실제로 보니 동안이죠?"

[인터뷰] 꿈을 믿는 신인 개그맨 박휘순씨

등록 2005.09.15 12:31수정 2005.09.1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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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그콘서트 '애정의 조건'에 출연 모습 그대로. "어때요 동안이죠?"

개그콘서트 '애정의 조건'에 출연 모습 그대로. "어때요 동안이죠?" ⓒ 나영준

"형님, 주세요. 제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니 얼굴이나 수리하시지!"(KBS <개그콘서트> '애정의 조건' 중)


차가운 대답을 보면 전형적인 외모지상주의자의 발언 같다. 그런데 막상 그런 말을 하는 이 남자의 얼굴을 보니, 딱히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한 술 더 뜬다. '삼촌뻘' 되는 얼굴을 들이밀며 "동안이지?"라고 박박 우겨댄다.


TV건 현실이건 잘 생긴 미남미녀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잘 생긴 사람을 윽박지르며 웃음을 주는 이가 있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안어벙'이나 사회적 이슈를 일으켰던 '출산드라'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얼굴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으니 행복하기만 하다는 개그맨 박휘순(29)씨.

지난 10일 KBS 본관 앞 공원,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동안의 얼굴'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그를 만나 대한민국에서 개그맨으로 사는 느낌과, 아직 펼치지 못한 꿈에 대한 그만의 청춘일기를 훔쳐보았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정 취직이 어려우면 택시를 한 대 사주마"

우선 그는 웃겼다. 일부러 웃기려고 노력하지도 혹은 그의 외모가 웃음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툭툭 던지는 대답 속에 반짝이는 재치가 숨어 있었다. 특히 개그맨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차라리 개인택시를 뽑아주마…" 부분에서는 옆에 있던 기획사 매니저까지 뒤로 넘어가 버렸다.

a 다소 졸린 듯한 눈, 그러나 이야기 만큼은 똑 떨어지는 청년.

다소 졸린 듯한 눈, 그러나 이야기 만큼은 똑 떨어지는 청년. ⓒ 나영준

- 출연 중인 코너소개를 하자면.
"<개그콘서트> 내에서 '애정의 조건', '제 3세계', '아리아리' 등에 나오고 있습니다. '봉고'로 분하는 '애정의 조건'에서는 모든 상황이 바뀌어 있죠. 사실 제가 못 생겼죠(웃음). 그런데 오히려 잘 생긴 김인석 선배를 안 생겼다고 무시하니까요. 역설적인 풍자의 의미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 개그맨이 된 과정을 소개해 달라.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는지.
"2000년부터 마음을 먹고 인터넷 동호회에서 개그를 하는 이들과 만나다 전유성 선배님의 극단에서 연기를 했습니다. 4년 가까이 연습을 하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험을 봐 KBS 20기 개그맨이 됐습니다. 부모님은 지금은 좋아하시죠.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극단에 들어가겠다니까 아버님이 식사를 하시다 말고 제 손을 꼭 잡으면서 시름시름 앓는 표정으로 '취직이 어렵냐? 돈을 대줄테니 개인택시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군요. 진짜 심란했습니다(웃음)."

- 길을 다니면 얼굴은 많이 알아볼 것 같은데
"제가 서민이라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사실은 많이 알아봐주셨으면 해서 일부러 이 안경(분장용)도 쓰고 다닙니다(웃음). 알아봐주시기는 하는데, 아직 실감도 안 나고 어색하네요. 물론 고맙고 좋긴 하죠."


"개그맨이 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a 인터뷰 도중 많은 이들이 그를 알아보고 다가오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많은 이들이 그를 알아보고 다가오기도 했다. ⓒ 나영준

개그콘서트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들은 많다. 친근한 바보 연기의 '안어벙' 안상태나 살찐 이들의 희망 '출산드라' 김현숙 등. 소위 잘 나가는 신세대 개그맨들을 보면서 혹 조급증이 들지 않느냐고 묻자 "지금도 운이 따라 좋은 코너를 맡게 된 걸 행복하게 여긴다"며 두 팔을 휘휘 내 젓는다.

- 일주일의 생활은 어떤지.
"수요일 날 개그콘서트 녹화가 있거든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이디어 회의가 있고 월·화요일은 리허설이죠. 일주일이 정말 '규칙적'입니다. 아침에 나와서 집에 들어가면 한밤중이고요. 그동안 쉬는 날이 여름휴가 빼 놓곤 하루도 없었죠. 그래도 너무 행복합니다."

- 다른 연예인들과 개그맨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저희 개그맨들은 창조를 해야 하는 직업이죠. 항상 생각이 많습니다. 술을 먹다가도 이거 어떨까 고민을 하죠. 제가 6개월째인데 벌써 제 자신의 바닥이 보이는 것 같아요. 책을 읽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직업 같아요. 선배님들이 공부 많이 해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정말 와 닿더군요."

- 코미디가 저질이라고 폄하하거나 혹은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들에 대한 생각은.
"사실 웃기기가 힘듭니다. 그런데도 말 한마디를 집어내선 꼭 그렇게 웃겨야 되냐고 하시곤 하죠. 모든 분들의 마음에 들긴 힘들어도 보시는 분 중 절반만 만족시켜도 훌륭한 코미디가 아닐까 합니다. 또 저희 개그맨들도 풍자를 넣으려 하는 등 여러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코너가 사회적 고민만 담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보시는 프로그램이니만큼 여러 코너와 색깔이 어울리도록 해야겠지요."

"개그맨들 스스로 소재의 제약을 두기도 한답니다"

- 남을 웃긴다는 것이 힘들지 않은지.
"개그맨들이 웃음을 드리긴 하는데… 주위를 보면 외롭고 공허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개그 패턴도 빨라지고 해서 무척 힘듭니다. 제 자신만 봐도 이 자리를 지키고 싶은 소박한 마음과 좀 더 새로운 웃음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시간이 흘러도 웃을 수 있는 개그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전유성 선배님인데 뭐랄까, 생각의 발상이 다르신 것 같아요. 그런 점을 본받고 싶습니다."

a 무엇보다 KBS의 개그맨이 되어서 너무나 행복하다는 박휘순씨.

무엇보다 KBS의 개그맨이 되어서 너무나 행복하다는 박휘순씨. ⓒ 나영준

- 개그맨이 된 것을 아직 후회는 안 하는지.
"정말 개그맨이 되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했거든요. 개그맨이 되면 그 다음 소원은 없어도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앞으로도 개그맨으로 살다 죽는 게 제 바람입니다. 후회는 없죠. 지금 이 자체가 너무 행복합니다."

- 시청자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개그라는 게 친근하지만 그만큼 불만도 많이 사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가 내부적으로 비속어나 욕설 등만 아니라 소재 자체에서도 제제를 많이 받습니다. 이를테면 절대 여성을 비하해서는 안 된다 등이죠. 저희가 시사적인 내용으로 여러분을 계몽시키려는 게 아니거든요. 부담 없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개그맨일 뿐 입니다."

박휘순씨의 책상 앞에는 '안 돼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해서 안 되는 것이다'란 말이 붙어 있다고 한다. 물론 자신도 그 말을 보며 '과연 그럴까?'라고 고민하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꿈이 하나하나 현실이 되어가는 이 시점, 그는 그 말을 믿고 있단다.

1600여명의 경쟁자들을 뚫고 통과한 시험, 그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전 국민을 상대로 매주 웃음을 전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믿고 있단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하늘은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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