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연일 나오는 광고 "네가 독일이야"

통일 15주년 독일... 불안감 해소 위한 대대적 캠페인

등록 2005.10.04 08:04수정 2005.10.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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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행사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독일팬 클럽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판 사진. 통일 독일 15년을 맞이해 침체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행사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독일팬 클럽 회원을 모집하는 광고판 사진. 통일 독일 15년을 맞이해 침체되어 있는 사회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 강구섭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공식 행사가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서 지난 3일 열렸다. 베를린 브란덴브르그 문 앞을 중심으로 3일간 축제가 열렸는데, 현 독일의 상황을 반영하는 듯 예년에는 보이지 않던 부스 하나가 행사장 중앙 무대 맞은편에 자리잡았다.

풍선을 나눠주는 진행요원 옆에 몇몇 사람이 옹기 종기 머리를 맞대고 작은 용지를 기입하고 있는 그 부스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팬클럽'(Fanclub Deutschlan
d) 회원을 모으고 있는 홍보장이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온 국민의 아이디어를 모아 독일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이 행사의 목적. 하지만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독일인들에게 자긍심을 형성, 나라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목적이 더 커 보인다.

또 지난 9월 하순부터 독일 TV에서는 '네가 독일이야(Du bist Deutschland!)'
라는 제목의 공익 광고가 방영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은 어려운 난관에 직면해 있지만 힘과 생각을 모아 상황을 헤쳐갈 수 있다"는 이 광고는 1997년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상록수'라는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방영됐던 한 공익 광고를 떠올리게 한다.

통일 독일 15주년, 경제·사회적 위기감만 팽배

통일 독일 15년을 맞이한 독일 사회가 가시적으로 직면한 문제는 470만에 달하는 대량 실업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위기. 특히 구동독 지역의 경우 실제 실업률이 20%를 육박, 20~40대의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아 대거 구서독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지역이 활기를 잃게되어 또다시 지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좀처럼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동독 경제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통일 이후 작년까지 1조2500억 유로(1500조원)의 재정이 서독으로부터 이전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동독 지역은 계속적인 지원이 없으면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것이 바로 지난 15년 동안 이뤄진 동독 재건 사업의 현주소다.


a 통일 축제 행사장 한켠에 서 있는 '독일팬 클럽' 회원을 모집하는 부스.

통일 축제 행사장 한켠에 서 있는 '독일팬 클럽' 회원을 모집하는 부스. ⓒ 강구섭

a 축제 행사장에 설치된 콘서트 무대와 조명을 한 놀이기구. 대량 실업 등으로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15번째 독일 통일을 맞이했다.

축제 행사장에 설치된 콘서트 무대와 조명을 한 놀이기구. 대량 실업 등으로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15번째 독일 통일을 맞이했다. ⓒ 강구섭

통일 독일을 살아가는 독일인이 겪고 있는, 경제적 상황과 맞물린 또다른 문제는 정부의 개혁 정책('어젠더 2010')이 본격 추진되면서 개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고 개인의 책임·역할이 점차 커지는 변화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 국가 역할의 축소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독일인들의 인식 전환은 더디다.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구동독 지역에서 더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다. 과거 동독 사회주의 시절 완전 고용, 개인의 삶을 보장하는 각종 사회주의 정책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던 구동독인에게는 국가가 개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8일 독일연방의회 총선에서 정부의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신좌파 정당이 구동독 지역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던 것도 이때문이다. 사회 보장 축소를 지향하는 집권 사민당의 개혁 정책에 대한 구동독 주민의 총제적 불만이 표심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네가 독일이야"

이러한 대량 실업, 동서독 격차 등 독일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회, 경제적 위기감이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이쯤 되자 독일 각계는 이런 분위기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판단, '분위기 대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인식만이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독일의 경제, 언론계 등의 주도로 사상 최대 규모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

a "네가 독일이야(Du bist Deutschland!)" 캠페인 사이트 (www.du-bist-deutschland.de).

"네가 독일이야(Du bist Deutschland!)" 캠페인 사이트 (www.du-bist-deutschland.de).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영화음악을 배경으로 한 '네가 독일이야'라는 TV 공익광고는 '힘들지만 힘을 모아 밝은 내일을 만들어 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자극한다.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실으려는 듯, 통일 독일의 날을 전후로 동서독 출신 정치인들은 "여전히 산적한 문제를 간과할 수 없지만 그 때문에 통일 자체의 성과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앞다퉈 제시했다.

기민기사당의 대표 앙겔라 메르켈은 "지난 15년간 사회적 인프라가 상당 부분 구축되는 등 동독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사회로 변모했다"며 동독 사회가 이룬 사회·경제적 성과를 적극 강조했다. 또 슈뢰더 총리는 "인내와 끈기를 갖고 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역설하며 "구동독 지역에 대한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통일 독일이 여전히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15년 전의 통일은 여전히 옳은 결정이었다"는 여론조사 결과 또한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는 독일 사회에 작은 위안을 주고 있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 10월 2일자에 따르면 84%의 독일인(서독 82%, 동독 91%)이 통일에 대해 옳은 판단이었다는 견해를 보였으며 14%(서독 15%, 동독 8%)만이 통일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지만 동서독 모두가 15년 전 이룬 통일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분투하는 독일

a 베를린 브란덴브르그 문 앞에서 열린 통일 독일 축제 광고 현수막.

베를린 브란덴브르그 문 앞에서 열린 통일 독일 축제 광고 현수막. ⓒ 강구섭

한편 쾰러 연방대통령은 통일의 날을 즈음해 구동독 지역신문 <슈베리너 폴크짜이퉁> 10월 1일자 기고글에서 "전 독일에서 동등한 생활 수준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현실적 상황을 냉정하게 인정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15년 전 콜 전 총리가 통일 직전 동서독이 함께 치른 연방의회 선거에서 "수년 내에 동독이 서독 수준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선거 공약을 내걸며 지지를 호소, 대승을 거뒀을 때와는 대조적인 것이다.

주요 방송사를 통해 연일 흘러나오는 '네가 독일이야' 공익 광고에서는 15년 전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 장벽을 무너뜨렸던 경험을 상기 시키며 8200만 독일인, 외국인 모두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통일 독일 15년을 맞이한 독일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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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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