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허용'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감정이란 인간이 만들어놓은 어휘보다 훨씬 무궁무진하여, 그러한 섬세한 감정들을 드러내기 위해 일상 언어의 어법이나 문법을 벗어난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를 '시적 허용'이라고 한다. '시적 허용'을 통해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보다 더 감칠맛 나는 시를 들려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 KBS '장밋빛 인생'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적 허용'이란 것도 가능한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드라마적 허용'을 '시적 허용'에 빗대어 보자면 작가는 보다 감동적인 내용을 위하여 현실에서 극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실제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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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 후의 맹순이 ⓒ KBS
그렇다면 어제 '장밋빛 인생'의 내용을 잠깐 보자. 위암 수술을 받은 맹순이는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오게 된다. 그렇게 큰 수술을 받고 회복 기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드라마가 한정된 시간 안에 방영되어야 하므로 넘어가자. 의사가 어렵겠다고 말한 맹순이는 집으로 돌아오자 삶에 의욕을 불태우면서 계획표를 짠다.
물론 계획표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암이라는 큰병을 진단받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힘들어하다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삶이 축복이겠는가. 앞으로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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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순이의 계획표 ⓒ KBS
하지만 맹순이가 미용학원에 등록하여 미용기술을 배우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만 온다. 맹순이는 정말 자기가 맹장 수술이라도 받은 환자라고 생각하는가. 맹순이는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이다. 위 수술을 받은 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얼마간은 제한적이며 그 양도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든다. 몸에서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일반인과 다를 게 분명한데 맹순이는 아침에 산책도 하고 심지어는 미용학원까지 다니는 믿기 힘든 일을 해낸다. 맹순이의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혹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맹순이의 몸이 회복되었다고 하자. 일정 정도의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미용학원을 다닐 정도의 체력도 회복했다고 하자. 그런 게 가능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면, 맹순이를 의사가 어렵겠다고 말한 환자라고 볼 수 있는가.
물론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가려는 맹순이의 모습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리에 누워만 있는 모습보다는 훨씬 더 낫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데도 죽을 수밖에 없는 맹순이의 모습을, 단지 시청자들에게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현실의 환자들에게선 보기 힘든 억지 모습을 보여주어도 되는 것인가?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봐!'라는 '드라마적 허용'이 가능한 것인가?
감동을 위해 맹순이는 맹한 여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정말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병이 나아 그가 계획하는 20년 뒤의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서, 지금 현재 미용 기술을 배우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맹한 여자이여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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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기술을 배우는 맹순이 ⓒ KBS
암 환자들은 거의 죽는 천편일률적인 드라마들도 시청자들에게 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현실과 맞지 않는, 통증으로만 아파할 뿐 체력적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암환자가 나오는 드라마 역시 올바르지 않다. 역시 암이란 병을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쓰기 위해 작가는 암이란 병에 대해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혹시나 작가에게 묻고 싶다. 위암 수술을 마치고 무엇을 어떻게 먹고, 어떤 약을 먹기에 맹순이는 그렇게 체력이 넘치는지 말이다.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제발 좀 가르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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