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義鄕)' 광주에서 의병 기려야

호남지역 의병사적지 순례 (2)

등록 2005.10.14 16:32수정 2005.10.15 08:45
0
원고료로 응원
a 고광순 의병장 무덤에 헌화하는 의병정신선양회원들

고광순 의병장 무덤에 헌화하는 의병정신선양회원들 ⓒ 박도

광주는 의(義)의 뿌리이다

의병선양회 호남지역 의병사적지 순례단원들이 순천대학교에서 전해산 의병장의 유품들을 둘러본 뒤, 이곳에서 합류한 김태원 의병장 손자 김갑제씨의 안내로 늦은 점심을 들기 위하여 승주 선암사에 있는 밥집으로 갔다.

호남지방에서는 어느 밥집에 가든지 그 맛깔스러움과 정성은 다른 지방보다 월등하다. 한창 시장하던 김에 선운사 앞 밥집에서 맛있는 남도 비빔밥을 야무지게 먹고는 다음 행선지 광주로 차머리를 돌렸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어등산 전적지에서 순국한 조경환 의병장 손자 조세현씨와 김태원 의병장 후손 김갑제씨가 번갈아가며 어등산 전적지 유래와 현안을 들려주었다.

a 의병선양회 윤우 회장(왼쪽)이 어등산 의병기념공간 조성을 정남준 광주부시장에게 촉구하고 있다.

의병선양회 윤우 회장(왼쪽)이 어등산 의병기념공간 조성을 정남준 광주부시장에게 촉구하고 있다. ⓒ 박도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리에 위치한 어등산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구한말 호남의 모든 의병들이 집결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운 전적지였다. 해방 후에는 이곳이 미군 포사격장으로 쓰이다가 반환받은 후 광주광역시에서는 1997년도에 전남대학교에 용역을 주어 '어등산 한말의병활동 조사 및 기념지구 조성계획'을 수립하여 의병기념공원과 의병기념관을 세우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 뒤 시장이 바뀌면서 이곳을 민간단체로 하여금 개발케 함으로써 애초에 세운 의병기념공원과 의병기념관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여 그동안 광복회, 의병정신선양회, 의병 후손들이 진정하였으나 그때마다 민간업자와 상의하라는 답변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 참(의병사적지 순례길)에 광주시장을 만나 직접 진정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하였다.

9월 30일 오후 5시 20분. 우리 의병선양회 호남지역 의병사적지 순례단원들이 광주광역시청에 도착하자 마침 박광태 광주시장은 국정감사로 부재 중이라며 정남준 행정부시장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의병선양회 윤우 회장은 "광주는 예향(藝鄕) 이전에 의향(義鄕)으로 광주는 의(義)의 뿌리이다. 광주를 위하여 의병기념공간은 반드시 만들어야 하며, 이로써 광주학생운동 5.18 민주화운동의 원류를 살려야 하지 않는가. 어등산 개발예정지에 의병 기념공간을 꼭 마련해 달라"는 간곡한 당부를 드렸다.

이에 대해 정 부시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바 없는, 의견 수렴과정으로 광복회, 의병선양회, 의병 후손들의 뜻을 전하겠다"는 답변했고, 우리 일행은 "어등산 개발 예정지에 반드시 의병 기념 공간을 넣어달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는 물러났다.


a 의병선양회원들의 광주시청 방문 기념

의병선양회원들의 광주시청 방문 기념 ⓒ 박도


창평의 밤

그새 땅거미가 지고 어둑하였다. 우리 일행은 곧장 어등산 전적지로 갔으나 무심한 바위덩어리만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머문 뒤 농성광장 소공원에 서 있는 김태원 의병장 동상에 가서 헌화한 뒤, 숙소인 창평으로 달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공원 언저리에 그 흔한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어둠 속에서 동상의 전모는 살피지 못하고 참배한 점이었다.

a 광주농성광장 김태원 의병장 동상에 헌화하다.  조명등이 아쉽다.

광주농성광장 김태원 의병장 동상에 헌화하다. 조명등이 아쉽다. ⓒ 박도

내가 그동안 교단에서 송강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수십년 가르치고도 정작 그 본고장 창평을 둘러보지 못하였거니와, 이번 호남지역 의병사적지 순례 길에 하룻밤 묵을 줄이야. 이는 이 고장 출신의 의병장 고광순 선생 후손 고영준 선생의 배려였다. 고영준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의 고경명 의병장 15대손으로, 한말 의병장 고광순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다. 의병의 핏줄은 300여 년을 이어와서 의병가문에서 다시 의병이 태어난 것이다.

고영준 선생과 필자는 생면부지였지만 고 선생께서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졸저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를 벌써 읽었다고 하였다. 동행 이항증 선생이 '구한말 의인 기산도 선생이 바로 고광순 선생의 사위'라고 하여, 필자는 '기산도'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진 바 있기에 뒷날 다시 이곳을 찾기로 기약 없는 약속을 하였다.

a 송강 정철 가사 터 기념비

송강 정철 가사 터 기념비 ⓒ 박도

의병 후손들끼리는 조상들이 혈맹동지였던 탓인지 인정이 다사롭기 그지없었다. 점심은 김태원 의병장 후손이, 저녁은 고광순 의병장 후손이 멀리서 찾아온 빈객을 접대하였다.

저녁밥상 앞에서 그동안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아픔을 얘기하기에 나는 '자랑스러운 조상을 둔 게 얼마나 자손만대에 떳떳하냐고, 친일파 후손들이 비록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을지언정 제 조상 무덤의 비석을 쫓아내고 남 몰래 이장하는 그 작태가 얼마나 비참하느냐'고, 인생을 길게 보면 '사필귀정'이라는 말로 격려해 드렸다.

술잔이 오가는 새 창평의 밤은 깊어갔다. 문득 송강의 <속미인곡> 한 구절이 맴돌았다.

"차라리 물가에 가서 뱃길이나 보려고 하니 바람과 물결로 어수선하게 되었구나. 뱃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고?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보니 임 계신 곳의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 (원문을 현대어로 풀이)

덧붙이는 글 | 다음 회로 이 기사는 끝납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회로 이 기사는 끝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