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벨 때는 순천사위가 꼭 와야 쓰겄소"

곡성 연동마을 어머니 논에 탈곡 하던 날

등록 2005.10.17 11:01수정 2005.10.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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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곡성 연동 어머니 집 돌담 옆에 서 있는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호박. 호박 색깔도 가을 하늘을 닮고 있는 듯하다.

곡성 연동 어머니 집 돌담 옆에 서 있는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호박. 호박 색깔도 가을 하늘을 닮고 있는 듯하다. ⓒ 김도수

가을이다. 앉았다 일어서면 하늘이 머리에 닿을 것만 같은 청명한 가을 한복판에 서 있다. 들녘엔 황금빛으로 물든 노란 벼들이 어서 탈곡을 해서 창고로 나를 데리고 가라고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곡성 연동마을에도 벼 베기가 한창일 듯싶어 연동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이번 주 토요일 날 벤다고 한다. 지난해 모내기할 때나 추수할 때 논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앉아서 햅쌀을 덥석 받아먹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쁜 농사철에 얼굴이라도 한번 들이밀어 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벼 베는 날이 휴일이어서 모든 일 제치고 연동마을로 달려갔다.

아내는 평소 연동 어머니 소식을 한동안 전해 듣지 못하면 궁금해 하며 잘 계신지 내게 안부전화 걸어보라고 한다. 며칠 전 아내에게 이번 주 토요일 날 연동 어머니 집 벼 베는 날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꼭 함께 가자고 했다.

a 황금물결 출렁이는 논에 나와 논두렁을 걷고 있는 연동 어머니.

황금물결 출렁이는 논에 나와 논두렁을 걷고 있는 연동 어머니. ⓒ 김도수

아내와 나는 마을 슈퍼에 들러 음료수와 포도 한 상자를 사들고 연동마을로 향했다. 연동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승용차가 마을로 향하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꺾어 달리자 아내는 어디로 가냐고 어리둥절해 한다. "쬐께만 달려가보면 알게 될 것이여."

고속도로 지하터널을 통과하자마자 탈곡을 하고 있는 콤바인이 보인다.
"참말로, 당신은 진짜 사위요. 어치게 논이 여그 있는 줄 알아부렀데아. 내가 당신한테 두 손 다 드러부렀소."

수건을 두르고 논두렁을 걸어가고 계신 어머니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내는 "저기 연동어머니 아녀?" "맞아, 기고만." 아내는 차장 밖으로 손을 내밀며 연동 어머니를 크게 부른다.


"허허, 이게 누구데아. 어치게 논이 여기가 있는지 알고 쪼르륵 찾아와 부렀데아. 참말로 고마워서 어쩐데아. 바쁠턴디 뭐드로 여기까지 왔데아, 응."

a 아버지는 콤바인을 운전하고, 어머니는 탈곡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는 이웃집 부부.

아버지는 콤바인을 운전하고, 어머니는 탈곡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는 이웃집 부부. ⓒ 김도수

연동 어머니는 벼 베는 논에 갑자기 나타난 우리 부부를 보자 반가워 어쩔 줄 모르며 달려온다. 콤바인으로 벼를 베려고 논 가장자리의 벼를 베러 나온 이웃집 어머니와 사돈집 벼 베기 한다니 도와주러 나온 연동 어머니 큰따님의 시아버지이신 오씨 어른이 나와 계신다.


오씨 사돈어른은 우리 부부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근디 누구요?" 물어본다. 처음 본 사람에게 연동 어머니가 '우리 집 사위'라고 계속 불러대니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인사들 나눗쇼. 여그는 우리 큰딸 시아부지 되고, 여그는 순천 사위고, 저그는 요 사람 부인이고."

"아, 뭔 순천에 사위가 또 있데아. 사둔은 재주도 좋소 잉. 없는 딸도 맹글어서 사위가 하나 더 늘어불고. 참말로 인자 우리 큰아들은 벼 베러 안 왔응게 큰사위 대접도 못 받겄고만 잉." 마을 입구에 사는 오씨 사돈 어른은 덕담을 나누며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a 큰따님 시아버지(오른쪽)와 연동 어머니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큰따님 시아버지(오른쪽)와 연동 어머니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도수

연동 어머니 큰따님은 한 마을로 시집을 갔다. 그래서 사돈어른이 혼자 농사짓고 사는 연동 어머니를 평소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연동 어머니는 사돈 자랑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늙은 내가 혼자 농사짐선 산게 사돈 영감이 논에 나오먼 꼭 우리 논에 물꼬독도 봐주고 논을 한 바퀴 빙 돌아주제. 논두렁에 구멍나먼 다 막아주고 한 동네로 시집간 딸도 있응게 참말로 좋더라고."

오씨 사돈어른은 "바로 조 논이 우리 논이여. 긍게 질 건너먼 바로 사둔 논잉게 온 김에 한번씩 봐주제. 나도 인자는 나이가 들어서 나락가마니 뿔껑뿔껑 차에 못 들어 엉거. 작년까지만 히도 나락 훌투먼 내가 사돈네 껏 나락 가마니 다 들어메 날렸는디 올부터는 기운 없어서 도저히 못 날리겄더라고."

"그리서 올해는 내가 하씨 아저씨를 불러놨제. 놉을 구허다 구허다 못 구히서 마지막으로 큰 아들 친구인 하씨 아저씨한테 가서 부탁을 좀 히놨는디 쬐께 있으면 여그로 올 것이고만."

연동 어머니는 콤바인이 벼를 베며 탈곡을 할 수 있도록 가장자리의 벼 포기를 미리 두 줄씩 베어 놓았다. 사돈어른은 논을 한 바퀴 빙 둘러보더니 한쪽 모서리에는 콤바인이 돌 수 없게 좁게 베어져 있다며 낫을 들고 나서기에 나도 함께 따라 나선다.

낫을 들고 사돈어른과 함께 벼를 베러 가려 하자 연동 어머니는 "고로케 깨끗헌 옷을 입고 어치게 일을 헐라고 허요. 저그 가서 바지를 뒤집어 입고 옷쇼"한다.

a 콤바인이 모서리를 쉽게 돌 수 있도록 사돈 어른(오른쪽)과 함께 벼를 베고 있는 필자. 바지를 뒤 집어서 입어 뒤 호주머니 안쪽 두 개가 나와있다.

콤바인이 모서리를 쉽게 돌 수 있도록 사돈 어른(오른쪽)과 함께 벼를 베고 있는 필자. 바지를 뒤 집어서 입어 뒤 호주머니 안쪽 두 개가 나와있다. ⓒ 박은자

아내가 헌 옷을 챙긴다고 아침부터 옷장을 다 뒤지더니 "이 옷밖에는 없응게 걍 입고 갔쇼" 해서 면바지를 입고 왔는데 연동 어머니는 깨끗한 옷을 입고 벼를 베면 안 된다고 어서 뒤집어 입으라고 성화다. 옷을 뒤집어 입고 나니 앞뒤 호주머니 안쪽이 덜렁 튀어나와 볼 만하다.

사돈어른과 함께 콤바인이 모서리를 쉽게 돌며 벨 수 있도록 공간 확보를 위해 벼를 벤다.

"원래 순천 사람이요?"
"아니요, 저 우게 임실이 고향이고만이라우."

"근디 어쩌다 주암 사둔 사위가 되었소?"
"예, 미국에 사는 동순이 알제라우. 동순이랑 잘 알고 지내고만이라우."

"응, 동순이 그 사둔하고 친구고만. 나는 첨에 '순천 사위'라고 허길래 내가 알기로는 순천에는 사위가 없는디 먼 사위가 또 있다냐, 허고 겁나게 궁금해 힜제. 내가 주암 사둔 큰 딸의 시아부지 되고만."
"예, 그래요 잉. 아까 주암 사둔이 그러시데요. 부산 사는 큰딸내미한테 지난번 전화가 왔는디 우리 시아부지 인자 나락 가마니 못 들어 날리게 힜다고 허더만요. 친정어머니 도와주려다가 우리 시아부지 아프먼 큰일 난다고 힜다네요."
큰며느리 이야기를 듣고 난 사돈어른은 입가에 미소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다.

a 콤바인으로 벼를 베기 위해 미리 가장자리의 벼 포기를 베고 있는 이웃집 어머니.

콤바인으로 벼를 베기 위해 미리 가장자리의 벼 포기를 베고 있는 이웃집 어머니. ⓒ 김도수

콤바인은 800평 논을 빙빙 돌며 빠르게 벼를 벴다. 쓰러진 벼들을 일으켜 세우며 베는데 낫으로 벨 때를 생각하니 콤바인이 참으로 편한 농기구임을 실감한다. 영농 기계화가 많이 보급되었다고는 하지만 논바닥에 떨어뜨리고 가는 무거운 벼 가마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농로 길에 세워진 트럭 위에 올려야 하는 일만큼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1년 농사 중 가장 힘든 일이다.

연동마을 역시 젊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돈을 주고도 삯꾼을 살 수 없어서 연동 어머니에게는 벼 가마니를 옮기는 일이 1년 농사 중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돈어른이 도와주어서 벼를 탈곡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장이며 큰아들 친구인 하씨 아저씨께 사정사정해서 벼 가마니를 트럭에 옮겨 주고 정미소까지 따라가서 내려 주기로 했다며 한숨 돌리고 있었다.

사돈어른은 벼를 베고 지나가는 콤바인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혹시 벼 이삭을 하나라도 흘려버리지는 않았는지 주우러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벼 이삭을 몇 개 주워 든 사돈어른이 하씨 이장 서 있는 곳으로 다가오자 "에이, 나락 모갱이 주수로 따라 댕기지 맛쇼. 나락 훑어봤자 매상도 안 히간디 주수먼 뭐더겄소?"

"음마, 디지게 농사져가꼬 나락 모갱이를 논 바닥에 흘려부러? 정부서 아무리 매상을 안 히가도 쌀 맹그러 놓으먼 누가 묵어도 묵응게 나락 모갱이는 주서야제. 안 그런가?"

"지난 석곡장에 쌀 20kg를 가지고 갔는디 돈 3만원 받아왔소. 농사 져야꼬는 타산이 안 맞응게 다른 특산물을 지야쓰겄는디 시방은 마땅히 질 것도 없고 걱정이고만. 쌀을 외국서 몽땅 수입헝게 쌀끔이 똥값 되아부렀는디 그리도 봄되먼 또 신나락을 당구게 된단말여. 참말로 안 질 수도 없고 골치덩어리여."

a 무거운 벼 가마니를 나르는 선들댁 아드님(왼쪽)과 벼 가마니를 함께 어깨 위로 들어주는 필자, 그리고 연동 어머니.

무거운 벼 가마니를 나르는 선들댁 아드님(왼쪽)과 벼 가마니를 함께 어깨 위로 들어주는 필자, 그리고 연동 어머니. ⓒ 박은자

탈곡이 되어 콤바인에 실려 있던 벼 가마니들이 농로 길 가까운 곳에 서너 가마니씩 툭툭 떨어진다. 하씨 이장 아저씨는 "몸이 아프당게 나락 가마니에 붙어 있는 요 꺼끄락만 탈탈 털어놓고 기다렸다가 내 어깨에 들어 올려주기만 헛쇼." 이장님은 벼 가마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바쁘게 나른다. 그러자 방금 전에 탈곡이 끝난 연동 어머니 아랫집에 사는 '선들댁' 세 아들이 달려와 함께 벼 가마니를 들어 날라준다.

'선들댁' 세 아들이 정말 고마웠다. 누가 자기 일도 아닌데 어머니 도와주러 먼 객지에서 찾아와 이웃집 벼 가마니까지 메고 날려주겠는가? 홀로 농사짓고 사는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해서 주암 어머니도 도와드리려고 달려온 그 효도하는 맘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세 아들은 콤바인이 탈곡을 하면서 가마니에 날아든 벼 껍질과 먼지들을 온 몸에 둘러쓰고 무거운 벼 가마니들을 어깨에 메고 날랐다.

미안했다. 다른 사람들은 벼 가마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열심히 나르는데 나는 벼 가마니에 묻은 먼지나 탈탈 털며 어깨에 들어 올려주기나 하고 있으니 논에 서 있는 게 부끄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몸이 아파 무거운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걸.

a 논두렁에 놓여진 벼들을 콤바인에 나르는 모습. 빨간 옷을 입고 벼를 나르는 사람이 내 아내다.

논두렁에 놓여진 벼들을 콤바인에 나르는 모습. 빨간 옷을 입고 벼를 나르는 사람이 내 아내다. ⓒ 김도수

벼를 모두 벤 콤바인은 마지막으로 논 가장자리에 미리 베어 놓았던 벼들을 탈곡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벼 베는 콤바인만 바라보며 서 있던 아내가 논에 들어와 일할 차례다. 미리 베어서 논두렁에 놓여진 벼들을 콤바인에 집어넣어 탈곡을 할 수 있도록 나르는 일이다. 콤바인은 논을 한 바퀴 빙 돌며 서서히 탈곡을 마치고 있었다.

탈곡을 끝내고 연동 어머니가 가지고 온 간식과 소주, 그리고 내가 가지고 간 음료수와 포도를 먹었다. 연동 어머니 옆 논에서 콤바인이 벼를 벨 수 있도록 미리 가장자리를 베고 있던 이웃집 어머니도 부르고, 지나가던 아랫집 아버지도 불러서 소주 한잔씩 나눠 마시고 다시 연동마을로 올라가 어머니 집 옆에 있는 논으로 향했다.

간식을 먹고 있을 때 연동 어머니는 아내에게 "나랑 함께 집에 가서 얼릉 점심 준비헙시다. 반찬은 없지만 걍, 있는 반찬에 따순밥이나 함께 묵어야쓰것고만…." 아내는 "아니라우, 우리들이 석곡에 가서 어머니께 맛있는 점심 사 들릴라고 왔는디 시방 뭔 소리예요. 지난번 아프시단디 한번도 못 찾아뵈서 오늘은 맘묵고 점심 사 드릴라고 왔고만…."

콤바인으로 벼를 베며 동시에 탈곡을 하는 지금, 웬만한 논은 금방 끝나버려 낫으로 벼를 베며 새참 나르고 논두렁에 앉아 점심 먹던 모습은 들판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탈곡을 끝내고 연동 어머니 모시고 맛있는 점심 사드리려고 했는데 연동 어머니는 사돈어른과 하씨 이장님이랑 집에서 함께 따뜻한 점심을 지어 먹자고 한다.

a 연동 어머니(왼쪽)와 함께 점심을 짓고 있는 아내.

연동 어머니(왼쪽)와 함께 점심을 짓고 있는 아내. ⓒ 김도수

아내와 어머니는 집으로 들어가서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집 옆에 있는 논으로 가서 탈곡을 했는데 한 마지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금방 끝나버렸다. 점심을 먹으려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부엌에서 빨리 와보라며 손짓한다. "여보, 얼릉 된장국 하나 끓여봐. 자기가 된장국 하나는 끝내 주잖여."

아내는 밥상에 따뜻한 국물이 없다며 된장찌개라도 하나 끓여 먹자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평소 무슨 찌개든 자기보다 훨씬 맛있게 끓이니 내게 된장찌개 하나를 얼른 끓여달라고 했다.

된장을 풀고 감자와 호박 양파를 썰어 넣었다. 멸치를 넣고 국이 서서히 끓기 시작할 때 풋고추와 마늘을 다져 넣고 팔팔 끓였다.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 나를 본 하씨 이장님이 "아, 사위가 부엌에 시방 뭣 허요? 백년손님이 부엌에 들어가먼 되겄소? 그나저나 배고픈 게 어서 상이나 내옷쇼"라고 농담을 던진다.

앞 집 겸면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불러서 함께 먹는 점심 식사는 정말 꿀맛이었다. 특히 내가 끓인 된장찌개는 맛이 끝내준다며 일찌감치 동나고 말았다. 식사를 하면서 하씨 이장님께 술 한 잔 따라드렸더니 "순천 사위 온 게 참말로 좋소. 된장찌개까지 끓여서 우리들한테 대접을 헝게 얼매나 존지 모르겄소. 동순이 어머니는 복도 많소 잉. 쌩짜로 사위가 한 명 더 늘어불고. 그나저나 내년에도 벼 벨 때는 순천 사위가 꼭 와야 쓰겄고만…."

"아, 요런 사위가 또 어딨어. 생전 숫둑에 낫을 한번 못 갈아 썼는디 저번에 와서 낫도 갈아주고, 부엌칼도 갈아주고 바가치 깨졌다고 딸이 사 오고, 하여간 둘이서 나한테 무진장 잘 혀. 서로 안 잊어 불고 인연이 오래 갔으먼 참 좋것는디, 글씨 그렇게 될랑가 모르겄고만."

a 집 바로 옆에 있는 논에는 찰벼를 심었는데 벼들이 한쪽으로 쓰러져 있다.

집 바로 옆에 있는 논에는 찰벼를 심었는데 벼들이 한쪽으로 쓰러져 있다. ⓒ 김도수

벼 베고 난 일주일 뒤 연동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벼 베는 날 와줘서 얼매나 고맙고 미안했는지 몰라. 언제 또 연동에 올라요? 그라니도 내가 쌀을 줄라고 맘 묵고 있는디 부산 사는 큰아들에게 집이가 나락 벨 때 왔다 갔다고 힜더니 어치게나 고마워라고 험선 순천 사위한테 꼭 쌀을 두 개 주라고 헙디다."

피땀 흘려 지은 농사, 작년에 갖다 먹어 1년 내내 미안했다. 그래서 올해는 농번기 때 어떡하든 얼굴이라도 한번 들이밀려고 갔었는데 또 쌀을 준다니, 그러면 다시는 연동마을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여기서 우리 인연을 끓어 불라고 허요?" 힘없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왔다. 하는 수 없이 휴일 날 연동마을에 다녀왔다.

40kg 쌀 한 가마니와 찹쌀 한 말. 우리 집 식구들은 연동 어머니가 지은 햅쌀을 먹게 됐다. 윤기 번지르르 흐르는 물기, 어머니 땀방울이리라. 구수하게 풍기는 밥 냄새, 어머니 옷에 배어 있는 쉰내이리라. 입 안에 찰싹 달라붙는 부드러운 촉감, 어머니 얼굴 위로 흘러내리던 눈물방울이리라.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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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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