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잘러! 자르면 그 빚 어디서 받게?"

등록 2005.10.21 14:59수정 2005.10.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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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을 할 때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있었다. 뭐 대충 김동팔씨라 해두자.

김동팔씨는 일견 '참 고생 많이 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주름투성이인 새까만 얼굴에 뼈만 앙상한 손등하며 꾸부정한 어깨, 목소리는 또 어찌나 탁한지 천식에 시달리는 노인네의 그것 같았다. 하여튼 첨엔 쉰 살도 훨씬 넘은 사람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마흔세 살이었다.


김동팔씨는 '종일반'이었다. 종일반이란, 법으로 규정된 12시간 교대근무를 하지 않고 온종일 혼자서 택시를 운행하는 걸 말한다. 대신 사납금이 비쌌다. 교대근무를 하는 기사들 사납금이 6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종일반 사납금은 8만 5천 원이었다. 그렇지만 높은 사납금이 부담이 되는 반면, 교대에 따른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고 근무시간을 자기 멋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젊은 축들은 종일반을 선호했다. 봉급도 교대근무자들보다 조금 후했다(그래 봤자 60만 원도 채 안 됐지만). 나 역시 종일반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의 택시기사들끼리는 '종일반 1년 버티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처음 1년은 종일반을 했다가 교대근무로 1년을 뛰고, 조금 쉬다가 다시 종일반으로 운행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살인적이었다. 물론 어디에나 괴물들은 있다. 2년, 3년을 종일반으로만 운행하는 사람들. 그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대개의 경우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장거리도 아니고 시내주행만 하루 평균 400여 킬로를 운전해 보라(그것도 수동으로). 그런데 김동팔씨는 그 종일반을 5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김동팔씨와 친해지고 나서 나는 그의 전력을 알게 되었다.
"나 고아여. 어렸을 적부터 안 해본 거 없었지. 그러다가 나이 들면서 '기름밥(운전이나 정비계통에 종사하는 것을 말함)'을 먹다 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마누라와 대학 새내기인 딸내미, 중학생 아들 하나를 두었단다. 아니, 택시운전으로 어떻게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냐고 했더니 히쭉 웃었다.
"왜 못 먹여 살려. 매일 돈을 벌잖어."
"그 돈이 형님 돈이에요? 사납금이 태반이지."
그는 껄껄거렸다.
"미쳤다고 다 갖다 바치냐? 당장 먹고살 게 없는데!"

원래 한 달 평균 25일 운행하고 사납금 전액을 에누리 없이 갖다 바쳐야 쥐꼬리만한 월급이나마 손에 쥐는 것이 당시 택시기사의 봉급체계였다. 물론 사납금을 초과한 수입은 자신의 부수입이 되긴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 빌어먹을 'IMF'는 초과수입은커녕 사납금 맞추기에도 허덕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만약 하루 사납금 8만5천 원을 못 맞추었을 때는 자질구레하게 붙는 각종 수당이 떨어져나간다. 따라서 60만 원도 채 못 되는 월급이 그나마 10만 원가량 깎이는 것이다. 또한 깎인 월급에서도 사납금 부족분이 또 제외된다. 그것뿐이면 괜찮게? 사납금이 한 푼이라도 미납된 날은 근속일수에서 제외된다(요거 아주 중요한 사항이다. 나중에 근속일수 일주일 차이로 개인택시 면허를 받네 못 받네 하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은 자신의 '쌩돈'으로 부족한 사납금을 채워서 내는 것이다. 불확실하나마 미래를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의 김동팔씨 경우는 어떤가.


그는 하루에 벌어들인 수입금 중에서 자기 집에 갖다 줘야 할 돈을 미리 떼어놓고 나머지만 회사에 입금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9만 원이 하루 총수입금이라 치자. 보통 기사들 같으면 8만5천 원을 회사에 우선 입금하고 5천 원을 부수입으로 잡는다. 그러나 김동팔씨는 거꾸로 집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돈이 5만 원이면 그걸 먼저 제하고 나서 나머지 4만 원만 회사에 납입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다가는 "어이구, 어제는 참 손님도 없데!" 해버린다는 것이었다(요즘처럼 택시에 '타코미터기'가 설치되어 있다면 씨알도 안 먹힐 말이지만). 당연히 사납금 부족분이 월 급여를 초과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그리하여 그러한 마이너스 누적분이 무려 3백만 원이 넘는단다.

"그러고도 안 잘려요?"
김동팔씨는 또 캴캴거렸다.
"누가 잘러! 자르면 지들이 그 빚을 어디서 받게? 아, 갚는다는데 지들도 어쩔 거여!"
세상에 그런 똥배짱도 처음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운전사들에게 들은 얘기론 회사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눈감아 준다는 것이었다. 김동팔씨가 노름(택시기사들이 쉽사리 빠지는 함정이다)에 미쳐 지내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기론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니 언제이건 갚지 않겠느냐 하며,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의 근무시간은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나는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였다(대개 자기가 편한 시간대를 택한다). 그와는 그러니까 여덟 시간 남짓 거리를 함께 누비는 셈이었다. 그는 물총을 갖고 다니면서, 내가 모는 택시를 발견하게 되면 자기 택시를 옆에다 바짝 붙이고선 물세례를 퍼붓는 걸 즐겼다. 정지선에 있는 내 택시 꽁무니에 범퍼를 들이대고 흠집이 나지 않게 살짝 박치기를 하는 것도 그의 주특기였다. 나도 몇 번인가 복수를 해주었다. 그렇게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그는 늘 히쭉히쭉 잘 웃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 그는 그렇게 웃었다.

김동팔씨는 하루 일과를 모 아파트단지에 있던 택시정류장에서 끝마쳤는데(그의 집도 그 근방이었다) 그곳은 내가 주로 차를 대놓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밤 12시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근처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 행동은 그가 하루 일과를 마감했다는 징표였다. 소주 반 병. 그는 늘 그것만 주문했다. 그러면 인정 많은 주인 할매가 어묵이 실하게 떠 있는 국물 그릇과 함께 손님들이 먹다 남기고 간 깨끗한 안주를 모아서 내놓곤 했다. 할매는 가끔 술이 좀 됐다 싶은 손님들이 안주를 주문하면 아예 김동팔씨 몫으로 얼마쯤 덜어놓기도 했다. 6·25 때 죽은 아들하고 김동팔씨가 닮아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가 포장마차에 출근도장을 찍지 않는 걸 딱 한번 보았다.
"어째 오늘은 쏘주 한잔 안 하시고?"
"바로 들어가 봐야 돼. 오늘 새벽에 마누라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놨거든."
"아니 왜요?"
놀랄 수밖에. 몰골은 흉악해도 그가 여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친구 만나러 저녁 때 나갔다는 사람이, 씨X, 새벽에 들어오잖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참, 형님도!"
"아녀, 그런 게 아녀. 난 알어. 척 보면 안다니께!"
단추 구멍보다 조금 큰 그의 눈이 슬퍼 보였다.

그 다음날 비슷한 시각, 김동팔씨가 목발(?)을 짚은 웬 젊은 여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나는 한눈에 그 여인이 그의 부인인 걸 알아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히쭉 웃더니 포장마차로 부인을 데리고 들어갔다. 화햇술을 나누려는가. 최진실을 쏙 빼닮은 그의 부인. 언젠가 그는, 자신의 어렸을 때처럼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 처녀를 데려다 마누라로 삼았다는 얘기를 했었다. 6살 차이가 난다고, 아주 예쁘다고 하면서.

그해를 넘기자마자 나는 택시운전을 그만두었고, 김동팔씨하고도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가 작년에 시내에서 택시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운전사가 예전 회사 동료였다. 김동팔씨 안부를 물었다.

"어, 그 양반 지금 관광버스 운전해. 잘 나가지 뭐."
"관광버스? 그거 아무나 몰 수 있는 게 아닌데. 참, 그 형님 빚은 다 갚았대?"
"무슨 빚? 아, 그거?"하더니 킬킬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거의 다 갚았지."
"거의라니?"
"그 양반 빚이 한때는 오백 가까이까지 됐었대. 그래도 어찌어찌 갚아나갔고 한 백만 원 남았었나봐. 근데 회사에서 그랬다더군. 백만 원 안 받을 테니 그냥 퇴사하는 게 어떠냐구 말이야."

뭔가 의아스러웠다.
"그 형님이 돈 떼먹을 사람은 아닌데 회사에선 왜 그랬지?"
옛 동료는 또 킬킬거렸다.
"생각해봐. 그렇게 갚아나가다가 집에 또 무슨 일 생기면 일단 수입금부터 갖다 쓸 거 아니야! 회사에선 그게 무서웠던 거야. 아주 지겨운 놈이라 이거지 뭐."
나도 덩달아 킬킬댔다.

"그래도 그 형님이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일 사람이 아닌데?"
"맞어. 그 양반은 택시운전 아니면 먹고살 수 없다고 절대로 못 나가겠다고 버텼다는 거라. 앞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입금 꼬박꼬박 할 테니까 걱정 말라구 하면서 말이야."

내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회사에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거지. 옌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가족들 생계가 우선인 사람인데 약속을 지킨다고 보겠어?"
"그래서!"
"그 왜 영업부장 있잖어, 뚱땡이. 그 영업부장 친구 중에 관광버스를 몇 대 갖고 있는 사람이 있나 봐. 그래 자기 친구한테 그 양반 좀 써 달라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업부장이 누구던가. 인정머리 없기론 팥쥐엄마 뺨치는 사람 아닌가.

"관광버스라…. 월급이 꽤 될 걸?"
"꽤 되구말구. 더구나 그 동넨 월급 플러스알파가 있어."
"어쨌든 그 형님 잘 풀렸다, 정말 잘 풀렸어."
"그러게 말이야. 근데 그 양반은 잘 풀렸는데 씨X 난 뭐냐 이거야! 어이구, 이놈의 택시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

나는 옛 동료의 이어지는 푸념을 대책 없이 들으면서도 조금도 짜증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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