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된 이명원 "평론가는 잠수함 속 토끼"

[인터뷰] 새 책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내다

등록 2005.10.25 10:30수정 2005.10.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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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명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 그는 현재 한국문학에서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파묻혀버린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며 최근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이라는 책을 냈다.

이명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 그는 현재 한국문학에서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파묻혀버린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며 최근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이라는 책을 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에게 건네진 명함은 그를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학부장/ 문학박사·교수 이명원'라고 소개한다. 이명원(35).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문제를 제기했다가 파문당했던 바로 그 젊은 문학평론가 이명원이다. 명함을 건네는 그의 자세가 어색했던 만큼 기자에겐 '문학박사 교수'라는 소개가 낯설다.

기자가 낯설다 한 것은 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가 도저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을 것 같지도 않았고, 더더욱 대학교수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부를 못해 박사가 못되고 대학교수가 못 된다는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하다. '개가 사람을 물었던 소동'이었던 '학문적 비판'이 어찌어찌하여 '사람이 개를 문 것' 같은 사건이 되었던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그런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 뉴스일 터, '겹경사'라는 한 신문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그렇잖아도 안부가 궁금하던 차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새움 펴냄)이란 제목의 새 책도 내놓았기에 핑계 삼아 10월 20일 서울 강남에 있는 서울디지털대학 그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자기 욕망 위한 지적 자위행위는 이제 그만

"책상머리글이 무장된 지식을 풀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주는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기자들처럼 작가를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하기도 하는 등 새로운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 이명원은 새 책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에서 소설가 공선옥을 인터뷰하기 위해 춘천행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시인 김정란을 만나기 위해 원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그동안의 문학평론은 어렵고 추상적인 언어로 독자와의 소통을 차단하거나 때론 자기 세계를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지적 자위행위에 빠졌다고 봅니다. 이젠 그런 욕망을 거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유연한 언어로 독자와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이명원은 공선옥과 김정란의 경우에서처럼 저널적 작업에 기대면서도 공허한 감상주의로 흐르지 않고 개개인의 문제의식 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세계인식의 방법론까지도 보여준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가볍게 21명의 작가와 그들의 문학세계를 들여다 본 이 책의 제목을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으로 정한 것도 지옥과 천국의 사이에 있는 연옥처럼 혼란스러운 이 현실을 오랜 시간 축적된 마음의 고고학인 문학을 통해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다.

이 책에서 이명원은 현재의 한국문학에서 의도적으로 은폐되거나 파묻혀버린 작가와 작품에 주목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나다순으로 배열한 결과 우연히 맨 앞에 배치한 공선옥이 이 책의 이런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공선옥은 문학상이 의도적으로 피해가려 한 듯 단 한 번도 문학상을 받지 못한 작가이지만 '공선옥적인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문학정신은 평가받아 마땅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평론가 최일수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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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해방 직후 임화 등에 의해 제기된 진보적 민족문학론이 6·25를 거쳐 이데올로기적 박멸 상태에 떨어진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이 1970년대 이르러 백낙청, 염무웅 교수 등의 <창작과 비평> 그룹의 노력에 의해 돌출적으로 제기된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최일수의 비평적 문제의식의 지속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명원은 이 책에서 잊혀진 한 문학평론가를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 복귀시킨다. 최일수(1924~1955)가 그다.

이명원에 따르면 최일수는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현대문학의 민족의식'이 당선되면서 평론가가 되었으며, 민족사와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구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전통논쟁과 모더니즘, 실존주의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평론가였다.

이명원이 그를 만난 것은 자료 속에서였다고 한다. 당시의 자료를 읽으면서 여러 차례 그의 이름을 발견하곤 했는데, 그럼에도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더라는 것. 그래서 그는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보곤 했지만 한수영(동아대)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 부분으로 다룬 것 말고는 거의 묻혀진 상태로 있더라는 것. 해서 그는 본격적으로 최일수 연구에 매달렸고, 지난 8월에 받은 박사학위의 주제('최일수의 문학비평 연구')로 삼기도 했다.

"최일수는 1960년대 우리 문단에 횡행했던 문단정치학과 문단적 섹트주의의 아귀다툼 속에서 소외된 비운의 평론가입니다. 당시 <현대문학>으로 상징되는 구세대의 질서에도 편입하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4·19세대가 생성해낸 매체에 대한 접근 역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소망했던 '통일'은 오지 않았고, 그가 고통스러워했던 '분단'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김수영의 '풀'은 '민중'이 아니라 '여성의 성욕'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의 시 '풀'이다. 평론과 논문 170여 편, 석사논문 80여 편, 박사논문 11편에 이를 만큼 김수영 시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풀' 역시 이미 상당한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진 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풀'이 '민중'을 상징한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원의 생각은 다르다.

"김수영 '풀'을 '민중'의 이미지로 보면서 '동풍'과 '바람'을 외세의 압력이나 정치적 억압으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런데 이 시를 왜 이런 식으로만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꼼꼼히 다시 분석해본 결과 '풀'은 '여성의 성욕'을 상징하더군요."

'여성의 성욕'. 이 말에서 혹자들은 기존의 일반화된 해석을 뒤엎는 이명원의 전복성에 당혹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명원은 김수영이 말년에 '성'을 발표했던 점을 감안하면 '욕망의 김수영'도 있다고 했다.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마조히스트였고, 이육사가 비애의 시인이라는 재해석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시는 여성의 성욕이 리드미컬하게 확산되면서 동시에 절정에 이르는 희열의 상징적 표현에 바쳐지고 있습니다."

황지우는 이제 나른한 센티멘털리스트?

이명원은 이 책의 말미에서 요즘 활동하는 작가 중 시인 황지우에 대한 논쟁을 촉발한다.

"1980년대 시단의 '뜨거운 상징'이었던 황지우 시인은 언젠가부터, 아마도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으로 짐작이 되는데, 나른한 센티멘털리트가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이명원은 황지우 시인이 우리 시대의 '최전선/막장'에서 서서히 은퇴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시집 <게 눈 속의 연꽃>부터 시의 '무정부주의'를 폐기처분하고 체제에 자진 '투항' 혹은 '순응'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드러낸다.

물론 이 책에서 이명원은 황지우의 중기까지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어 다소 주장이 앞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후속 작업을 해봐야 알겠지만 그러나 그의 시가 가지는 긴장이 풀어지면서 그저 달콤하게 읽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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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명원은 또 최근 자신이 발굴한, 1963년에 나온 <비평작업>이란 잡지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의미부여를 했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와 지금은 작고한 임중빈 등이 대학생 신분으로 만든 이 잡지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맑스주의'를 주일섭의 번역으로 싣는 등 4·19 세대의 정신이 비로소 피어나기 시작한 조짐으로 평가했다(자세한 내용은 그가 주간으로 있는 반연간지 <비평과 전망>에서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

이렇듯 문학적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이명원의 촉수는 종횡무진이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의 작품이 지닌 의미망의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일깨워준다.

그는 작가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또 문학작품을 지적 자산으로 만드는 성찰적 자세를 가진 독자가 실종된 지금 다시 독자가 누구인지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평론가의 역할 또한 다시 모색할 때라며 이런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끝냈다.

"평론가는 한 사회의 표준문법을 회의하는 사람이죠. 담론을 스크린하고 텍스트를 넓혀보려는 시도를 해보는 사람, 그래서 잠수함의 토끼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식 중 순금부분에 해당하는 문학 안에서 밀도 있는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이명원은 누구인가

정치적으로 왜곡된 의미가 아니라면 스스로를 '리버럴리스트'라고 말하는 이명원은 편견 없는 세상과 스스럼없는 소통이 가능한 문학을 꿈꾼다.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고발한 발칙한 젊은이'라는 아우라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명원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논쟁들과 과감히 결별하기이다.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는 체 게바라의 말을 새기며 굽히지 않았던 학문적 소신을 담은 <타는 혀>를 시작으로 문학비평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해독>, 문학권력과 주례사 비평에 대한 비판, 등단제도와 문학상 논쟁 등을 정리한 <파문: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 그리고 산문집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등이 그가 쌓아놓은 저작 목록이다.

다니던 대학의 박사과정에서 스스로 자퇴했다가 학문적 망명처인 성균관대에서 지난 8월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명원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아 오히려 빨리 대학교수가 될 수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말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3년동안 원고료로만 살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 재앙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 서울디지털대학에서 글쓰는 기술자보다 사상적으로 유연하고 소신 있는 작가를 길러내고 싶다는 교수로서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 이명원의 한국문학 탐사

이명원 지음,
새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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