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게 과연 '표현의 자유'가 있을까?

[서평] 법원공무원이 본 김희수의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등록 2005.11.03 14:39수정 2005.11.0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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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우리는 정치 코미디 한 편을 보았다. 영원히 법전에만 잠들어 있을 것 같았던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장면은 너무나 슬픈 코미디였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1주일 후 성명서 하나가 세상에 나온다. '국민주권 찬탈행위를 규탄한다'라는 제목을 단 이 성명서는 탄핵소추안 가결을 "합법을 가장한 '의회쿠데타'로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단정했다. 또한 이 성명서는 "우리는 작금의 '탄핵폭거'를 민주주의와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이의 저지를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하고 있다.


공무원의 탄핵반대 성명, 정치적 중립 위반한 집단행동인가

a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악법과 싸워나갈 각오이다."<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책표지.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악법과 싸워나갈 각오이다."<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책표지. ⓒ 삼인

이 성명서는 당시 발표된 수많은 것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명의로 소속 공무원들이 연명하여 발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의문사위 상임위원(별정직 공무원)이었던 김희수씨이다.

그는 8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 특별검사 수사관, 의문사위 상임위원, 변호사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얼마 전 책으로 펴냈다. 그의 자서전격인 이 책의 제목은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이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대목이 탄핵반대 성명서 사건이다. 이 문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건드리고 있다. 당시 보수언론은 공무원이 저지른(?)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았을까. 이 책의 한 대목을 보자.

"시국성명 발표 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귀중한 1면을 할애해주는 은전(?)을 베풀었다. 다른 신문과 매스컴에서도 이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위원회가 집중포화를 맞게 되었다. 주요 논조는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성과 집단행동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법치주의가 흔들리는 상황을 빚고 말았으니 일벌백계 엄벌에 처하라는 요지였다."(37쪽)


조·중·동의 바람대로 그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성명서를 작성, 배포한 것이 국가공무원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검찰이 그를 기소하였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은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 "공무원법 어겼지만 처벌규정이 없어서 무죄"


이런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공무원 신분으로 '거사'를 결심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의문사위 소속 공무원으로서 역사적 소명과 책무를 다하겠다는 소신이 있었고, 법률가의 양심으로도 국민주권을 짓밟는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판 결과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판결을 보면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일반공무원(경력직)과 달리 별정직공무원(특수경력직)이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성명서 발표행위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반하는 집단적 행위에는 해당하나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 벌칙규정의 적용이 없어 처벌할 수 없을 뿐"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즉, 일반 공무원이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았을 사안이었다는 말이 된다.

헌법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제7조 2항)고 밝히고 있다. 이 조항은 공무원이 특정한 계층이나 정파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국민 전체를 위해 공정하게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 위한 조치이다. 다시 말해 부당한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말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 보장하고 있다

a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탄핵반대 성명 발표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반하는 집단적 행위에 해당하나 벌칙규정의 적용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탄핵반대 성명 발표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반하는 집단적 행위에 해당하나 벌칙규정의 적용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 김용국


그런데 현행 법률은 헌법의 방향과는 달리 공무원에게 정치에는 눈을 감아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을 비롯한 관련법은 ▲공무원의 정당, 정치단체 가입 ▲정당, 정치 단체에 대한 지지·반대 ▲정치적 의견을 발표하거나 신문 등 간행물에 게재하는 것을 정치적 행위로 보고 전면 금지하고 있다.

또한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집단행위의 개념이 너무 넓다는 데 있다. 집회를 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과시간 외에 업무에 지장 없는 활동들도 정치와 관련이 있다면 대부분 금지사항으로 본다. 의문사위의 탄핵반대 성명발표도 당연히 집단행위로 해석될 정도이다.

이러한 법조항은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공무원들이 정치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지 의문이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관심을 끊고 살아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면, 이제는 법률과 관련 규정도 바꿀 필요가있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민주화되었다고 본다면, 공무원의 정당가입과 같은 적극적인 정치행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자유는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모든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정신에도 부합할 듯싶다.

"3·15 부정선거, 광주항쟁 때 침묵 강요한 것이 옳았나"

김희수씨의 한결같은 생각은 "국가기관의 오류를 지적하는, 즉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표현의 자유라면 널리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첫 재판 기일에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헌정질서가 무너질 때도 공무원들은 항상 입에 재갈을 물고 침묵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3·15 부정선거가 있을 때도, 12·12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도,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힐 때도 우리는 모두 침묵으로 강요당하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무제한적으로 공무원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각오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다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표현의 자유에 관한 선험적인 판결을 만들고 싶을 뿐이며,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악법과 싸워나갈 각오이다."

군사정부가 민간정부로 바뀌었어도 공무원에게 표현의 자유는 아직도 먼 얘기인가.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김희수 지음,
삼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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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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