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삼수생 아들의 깜짝 변신?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잖아요"

등록 2005.11.08 15:33수정 2005.11.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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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험생 부모가 하소연을 합니다.

"우리 애는 지금 텔레비전 보고 있어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렇게 천하태평이니 걱정이네요."
"말도 말아요. 우리 애는 PC방 갔어요. 못 가게 하면 스트레스 받을까봐 그냥 뒀는데…."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노파심 섞인 하소연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삼수를 하는 아들이 있다보니 이야기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알만한데, 삼수생 아들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정도겠지요. 아마,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아쉬움과 후련함을 느낄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어떤 작전이 필요한지 골몰하고 난무하는 전략에 안절부절 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이런저런 작전을 주문했지만 늘 허사였습니다. 이쯤 되면 오히려 유능한 전략보다는 전략 없는 무능한 감독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 같아선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잘 해주길 바라면서 갖은 주문을 하고 싶지만 맘과 뜻대로 안 되는 아이들에겐 원망 섞인 투정뿐입니다.

이러다가 "엄마, 아빠는 학교 다닐 때 잘했어?" 자칫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날아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작전 없는 무능한 감독이 훨씬 빛을 발할 수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스파링 상대도 없는 무명의 권투선수가 샌드백 앞에서 맹훈련을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샌드백 앞에서 마냥 땀만 흘리며 두들기지만 샌드백은 끄떡없습니다. 샌드백을 보고 자신이 샌드백보다 못하다는 자포자기만 하지 않아도 다행입니다.

차라리 실전이라면 '케이오'도 있고 '티케이오'도 있는데 지금 아이들의 마음은 초조함과 긴장으로 불안감이 점령하고 있을 즈음입니다. 아무래도 이럴 때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가끔은 휴대전화로 격려 메시지를 보냅니다.

'아들! 힘들지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할 만큼만 해.'

더듬거리며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바로 엄지 족 아들에게서 총알 같은 응답이 옵니다.

'감사합니다. 아빠.'

이렇게 해서 답답한 숨통을 틉니다.

얼마 전 삼수생 아들이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해 고시에 합격한 어느 청년이 공부가 가장 쉬웠다며 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습니다.

철부지 아들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사실 공부하는 것 쉽지 않은데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잖아요."

서점에 책을 사러 갔는데 눈에 띄더라는 것입니다. 철부지의 변화를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삼수생 아들의 진심 어린 답변으로 위안을 받으면서 작년에 이어 아들은 올해도 공군사관학교를 목표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까지 부모로서 인내심도 필요하고요.

실수 없으면 심심한 아들?

공군사관학교 2차 시험 볼 때의 일입니다. 9월 25일 밤 전주에서 아들을 태우고 청주로 갔습니다. 26일 아침 7시까지 신체검사를 보러 가야하기 때문에 전날 도착해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공군사관학교버스에 태워 보냈습니다. 아들은 첫 날 신체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다음날 시험을 위해 그곳에서 잤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날라 왔습니다.

'아빠, 연필을 준비 못했는데 클 났어. 어떠케?'
'가방 바깥쪽 주머니에 넣어놓았어. 못 찾으면 빌려서 해.'

어이구! 자식아, 소리가 절로 납니다. 준비 잘 하라고 몇 번이고 말하면서도 챙기는 것이 시원찮아 아들가방에 볼펜 두 개를 일부러 넣어 놓았기에 망정이지 쇠귀에 경 읽기일 때가 많습니다.

조금 있으니 아들의 문자메시지가 또 날라 왔습니다.

'아빠, 진짜 클 났어. 자필 소개서를 한 장씩 더 쓰래. 글씨체가 달라서 걱정.'
'복사본 보고 비슷하게 써봐. 글씨는 각지게 써.'

아들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서울에 있다 보니 자기소개서를 대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접을 위해 복사본을 하나 가지고 갔습니다. 하지만 자필로 한 장을 더 쓰라고 하니까 글씨체가 다른 순진한 아들은 난감했던 모양입니다.

아들의 연이은 문자메시지에 초조한 마음도 달래고 격려도 할 겸 면접 볼 때 요령을 문자로 보냈습니다. 무능한 감독으로 있기가 부담이었던 것입니다.

'걸음걸이는 절도 있게, 눈은 면접관을 응시하고, 목소리는 크게, 답변은 간단명료하게 해.'
'나라를 위해 사명을 다하겠다는 굳은 신념을 보여야 한다.'

논술, 면접, 체력검사, 적성검사를 치르면서 2차 시험은 이렇게 끝이 나고 운명의 주사위는 아들의 손을 떠났습니다. 시험은 쉽든 어렵든 늘 초조함을 부릅니다. 거기에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차 합격을 축하합니다.'

10월 7일이 공군사관학교 2차 합격자 발표날이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전화벨 소리가 울립니다. 삼수생 아들이 인터넷으로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야아, 떨리는디. 떨어지면 어떡하니?"

거실에서 아내와 아들의 대화 소리가 들립니다. 조금은 긴장된 듯 조심스럽게 컴퓨터 자판을 더듬거리면서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직 나는 잠에 취해있을 즈음인데 전화벨 때문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더듬거리는 자판 소리가 멈추더니 "야, 합격했네. 아들, 축하한다" 전화로 모자 간 축하인사가 전해집니다. 컴퓨터모니터에 '2차 합격을 축하합니다'란 메시지가 떴습니다. 여러 관문 중에 또 한 관문을 통과하면서 안도하는 순간입니다. 작년에 이은 2차 합격이기에 특별한 감회보다는 수능시험을 위해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작년에 일반대학을 합격해놓고도 공군사관학교 도전을 위해 삼수를 하겠다고 했던 아들이 걱정스러웠는데 수능시험이 가까워지니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아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신뢰감을 상실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이기심만으로 윽박지르기도 했던 기억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지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부모들이 초조해 하면 아이들은 더 초조해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잘 추스르도록 따뜻한 응원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수능시험이 다가옵니다. 전국의 수험생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기간 준비 할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를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수능시험이 다가옵니다. 전국의 수험생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기간 준비 할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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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서 8년, 예술작업공간을 만들고, 버려진폐기물로 작업을하는 철조각가.별것아닌것에서 별것을 찾아보려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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