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그린 만화, 양말 속에 숨겨왔죠"

[인터뷰] 오마이뉴스에 <新북한기행> 연재하는 오영진 기자

등록 2005.11.11 10:54수정 2005.11.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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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新북한기행>을 연재하고 있는 오영진 기자.

<新북한기행>을 연재하고 있는 오영진 기자. ⓒ 조경국

"간단한 소지품 외에는 북한 밖으로 다른 것은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소재와 이야기가 될만한 것은 쪽지에 써서 양말 속에 넣고 몰래 숨겨 북한 검색대를 통과했죠."


무슨 첩보전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지만 <新북한기행>을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오영진 기자의 실제 경험담이다. 지금까지 <테러리스트> 등 세 권의 책을 낸 만화가 오영진 기자는 지난 2000년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에 파견되어 꼬박 548일 동안 북한에서 생활한 한국전력 직원이기도 하다.

a 함경남도 신포지구 경수로 공사 현장에서 548일 동안 체류하며 겪은 일들을 그린 <남쪽손님>. 2004년 6월 출간됐다.

함경남도 신포지구 경수로 공사 현장에서 548일 동안 체류하며 겪은 일들을 그린 <남쪽손님>. 2004년 6월 출간됐다. ⓒ 길찾기

오영진 기자는 함경남도 신포 경수로 건설 현장에 자원해서 근무했다. 당시 근무하기 꺼려했던 북한 경수로 건설 현장은 항상 소재를 찾아 헤매야하는 그에게는 색다른 기회였다. 하지만 뭔가 색다른 만화 소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접어야 했단다.

"처음에는 군대에 온 것 같았습니다. 숙소와 일터를 왔다갔다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6개월쯤 지나서야 주위도 눈에 들어오고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통제를 받는 생활이다 보니 그리지는 못하고 짬짬이 스토리 작업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같이 일하는 북한 사람들과도 친해지게 되자 조금씩 만화가의 본성이 살아난 것이다. 3개월에 한번씩 휴가를 받아 집으로 올 때마다 정리해 뒀던 이야기들을 쪽지에 적었다. 북한과 관련된 것은 모두 반출 금지였으니 양말 속에라도 숨겨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548일동안 북한체류 경험을 그린 책 <남쪽손님>과 <빗장열기>다.

체류기간 경험만으론 한계... 북남교류협력단 가상단체 만들어


"체험한 것만으로 그리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소재의 한계가 있었죠. 548일을 북한에서 체류했지만 테두리에 갇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북남교류협력단'이라는 가상의 단체를 만들고 오공식 기자를 파견해 북한을 자유롭게 취재한다는 상상을 해본 겁니다."

a 오영진 기자의 북한지식은 전문가 수준이다. <新북한기행>을 연재하기 위해 매일 수많은 북한 정보와 씨름하고 있다.

오영진 기자의 북한지식은 전문가 수준이다. <新북한기행>을 연재하기 위해 매일 수많은 북한 정보와 씨름하고 있다. ⓒ 조경국

자유롭게 북한에 대해 그려보고 싶었지만 역시 경수로 건설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북남교류협력단'이라는 가상의 단체를 만들어 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新북한기행>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블로그에만 올리다 오마이뉴스 독자인 친구의 권유로 지난 7월 기자회원으로 가입하고 연재를 시작하게 됐단다.


남한에서 파견된 덜렁이 오공식 기자와 무게있는(?) 조동만 지도원 동지, 강계미인 리순옥 동무, 그리고 항상 오공식 기자와 티격태격하는 현재까진 이름을 알 수 없는 김 동무가 엮어가는 북한 이야기는 꼭 현장에서 취재한 것처럼 생생하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남쪽에 파견된 서울물 먹고 있는(?) 북한 기자도 있단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리 동무와 김 동무가 결혼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지만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

<新북한기행>은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그린 '황색바람을 차단하라'부터 남북한 경제문제를 풍자한 '평양의 신흥부촌 딸라아빠트를 아십니까'까지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생활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풍부한 소재는 모두 어디서 나오는 걸까.

"1차 자료는 보도기사죠. 그리고 북한 관련 서적을 보며 공부합니다. 탈북자 수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 북한관련 서적만 40권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없습니다. 만화를 연재하려면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죠."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新북한기행>를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어 그는 일기 쓰듯이 매일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작업을 한단다. 3일에 한편 정도 그릴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연재된 기사를 헤아려보니 지난 7월 11일 '가재미'편을 처음으로 현재(11월8일)까지 4개월 동안 모두 36편이다. 정말 쉬지 않고 매일매일 그린 것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죠. 가끔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하고. 하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은 버릴 수가 없어요. 대학때도 전공(건축) 공부는 뒷전이었고, 동아리 활동에 더 열심이었죠. 다양한 만화를 그리고 싶지만 당장은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新북한기행>은 70회 정도에서 끝을 맺고 내년 초쯤 책으로 묶어낼 생각입니다. 틈틈이 그려둔 단편들도 정리를 하구요."

a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한 '리순옥 동무'편. 맨 왼쪽이 조동만 지도원 동지, 그 다음이 강계미인 리순옥 동무, 맨 오른쪽이 이름을 도저히 알수 없는 김 동무, 가운데 까불(?)거리는 캐릭터가 주인공 오공식 기자다.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한 '리순옥 동무'편. 맨 왼쪽이 조동만 지도원 동지, 그 다음이 강계미인 리순옥 동무, 맨 오른쪽이 이름을 도저히 알수 없는 김 동무, 가운데 까불(?)거리는 캐릭터가 주인공 오공식 기자다. ⓒ 조경국

"내 만화를 내가 먼저 검열하는 것은 커다란 죄..."

북한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강정구 교수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오영진 기자는 강정구 교수 구속수사에 대해 "학문에 대한 것은 학자들의 연구와 토론으로 평가를 내려야지 법의 잣대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잘라 말했다.

a <新북한기행>을 통해 북한에도 다양한 일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공감한다면 오영진 기자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新북한기행>을 통해 북한에도 다양한 일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공감한다면 오영진 기자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 조경국

"가끔 내 만화를 스스로 검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 지적하기 전에 작가 스스로 위축되어 자기 작품을 검열하는 것은 만화에 대해 큰 죄를 짓는 거죠. 그리고 <新북한기행>이 단지 북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계몽 만화로 인식되는 것은 싫습니다."

자신도 최대한 이념적인 문제는 걸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다 보니 민감한 부분에 대해선 가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新북한기행>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가끔 극과 극을 달리며 '색깔논쟁'이 벌어질 때도 있지만, 북한주민들의 일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대부분의 독자들 평이다.

북한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영진 기자가 <新북한기행>을 연재하고 있는 이유다. <新북한기행>을 통해 이념이라는 틀에 묶여 북한의 한쪽면만 보려하는 우리사회의 시선을 바뀔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람이다.

"처음 북한에 갔을 때는 정말 서로 서먹서먹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결국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더군요.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전 그들의 평범한 삶을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북한에도 주사위처럼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의 만화를 통해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으니 그의 바람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셈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오영진 기자 <新북한기행>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오영진 기자 <新북한기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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