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비리, '개구멍'을 막아라

[取중眞담] 한나라당-사학법인의 박약한 사학법 반대 논리

등록 2005.12.27 17:00수정 2005.12.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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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학법 개정안 반대"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며 지난 13일 장외투쟁에 나서 서울 명동과 서울역에서 집회를 가졌다. 연사로 방송차에 올라간 전여옥(가운데) 의원과 송영선(오른쪽) 의원이 구호를 외치며 절규하고 있다.

"사학법 개정안 반대"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며 지난 13일 장외투쟁에 나서 서울 명동과 서울역에서 집회를 가졌다. 연사로 방송차에 올라간 전여옥(가운데) 의원과 송영선(오른쪽) 의원이 구호를 외치며 절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a "사학법 개정안 찬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를 비롯한 4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지난 14일 오전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사학법 개정안과 전교조에 대한 색깔공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학법 개정안 찬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를 비롯한 4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지난 14일 오전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사학법 개정안과 전교조에 대한 색깔공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공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찬반이 엇갈리면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새로 도입된 '개방형 이사제'다. 개방형 이사제 논란은 사립학교 내지 사학법인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사학을 사유재산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공공재산으로 볼 것이냐'는 게 핵심 요지다.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에 대해 법률로 강제하면 안된다는 것이 한나라당과 사학법인의 주장이다. 반면, 사학은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개방형 이사제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게 열린우리당과 정부의 주장이다.

<사립학교법> 제1장 제1조 '목적'에 따르면, "이 법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한다"고 돼 있다. 묘하게도 '자주성'과 '공공성'이 함께 명시돼 있다.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자주성'에, 찬성하는 이들은 '공공성'에 더 눈길이 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이다. 자주성 확보나 공공성 앙양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공립학교이건 사립학교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공통 분모다. 학교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한 공간이자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학교 안에는 정부와 사학재단은 물론, 교사와 학생·학부모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대표 "2077개 사학 중 비리 사학은 35개 뿐"

지난 13일 거리투쟁에 나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사학비리를 척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2077개 사학 중 비리 사학은 35개 뿐"이라며 "비리 해결을 빌미로 나머지 사학을 도둑과 죄인 취급해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사학법인쪽에서 주장하는 사학법 개정안 반대의 핵심 논리다.

'35개뿐인 비리사학'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학법 개정안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제1야당의 대표가 밝힌 만큼 최소 35개 이상의 비리사학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확인된' 비리사학이 35개라는 사실이 '확인 안된' 나머지 사학들이 깨끗하다는 점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


논점을 흐리지 않기 위해, 비리사학의 숫자는 논외로 하자. 사학비리의 '양'뿐만이 아니라 '질' 또한 중요한 논점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형량이 '죄목'보다는 '죄질'에 더 큰 영향을 받듯이. 이와 더불어 밖으로 알려진 사학비리의 유형이 아주 이례적인 경우인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거론된 한 사립학교의 전횡은 보는 이의 말문을 닫게 만든다. 충남의 사립학교인 H고교가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이동수업 명목으로 중국을 오가게 하면서 전교생을 불법 밀수에 동원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학생 한 명당 참깨·고추가루 등 중국산 농산물을 5kg씩 밀반입했다는 것이다.


H고교쪽에 따르면, 이사장의 동창인 김아무개 목사의 부탁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한다. 영문도 모르는 학생들을 졸지에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관세법 위반인 불법 밀수범으로 만드는 게 이처럼 쉽게 이뤄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같은 사실이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깜쪽같이 묻혀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달 초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드러난 전남의 사학인 D대학교의 비리도 말문이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D대학교의 총장과 부총장을 나눠 맡으며 학교 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 141억원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D대학교의 재단법인인 O학원의 임원 승인을 취소하는 한편, 이 학교 총장과 부총장이 영리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그러나 개정 전 사학법 규정에 따르면 O학원의 임원들은 손쉽게 복귀할 수 있다. 2개월 안에 부당 사용한 돈을 갚으면 교육부의 임원 승인취소 사유를 해소할 수 있고, 그 회계를 보전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개정 전 사학법은, 이같은 사학비리를 저질러도 안 들키면 그만이고, 들키면 원위치 하면 아무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개구멍'이 존재한다.

a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서울특별시회장단은 15일 오후 국회에서 이규택 한나라당 사학법무효화투쟁본부장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지원을 일체 거부한다"며 "동시에 사립학교의 수업료 통제를 풀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서울특별시회장단은 15일 오후 국회에서 이규택 한나라당 사학법무효화투쟁본부장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지원을 일체 거부한다"며 "동시에 사립학교의 수업료 통제를 풀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재단전입금 2% 내놓고 사유재산을 주장할 수 있나

H고교처럼 '전교생 밀수범 만들기'는 이례적이라고 하더라도, D대학교의 비리는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숱하게 접했던 내용이다. 학교와 재단 이름, 액수만 감추면 어느 사학의 경우인지 헷갈릴 정도다. D대학교는 3부자가 같은 건설회사의 이사들이자, O학원의 임원들인 '족벌 체제'다.

통계에 따르면, O학원처럼 사립대의 이사 또는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친·인척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설립자의 배우자이거나 자녀다. 또한 사학학교의 76%가 학교 운영권을 친·인척에게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족벌 체제라고 해서 곧장 비리가 발생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도, 족벌 체제가 아닌 곳보다 훨씬 부정의 개연성이 높은 것만은 엄연한 현실이다.

문제는 이같은 사학비리가 타의에 의해 '공개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면 아래, 빙산의 본체는 그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비리가 밖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개정 전 사학법으로는 이리저리 빠져나갈 수 있는 '개구멍'이 많다. 공적 감시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사학의 재정 상황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히다. 대부분 무늬만 '사립'일뿐 실질적으로는 '공립'임을 알 수 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조사에 따르면, 사립 초·중·고 법인의 재단전입금이 대부분 2%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전적으로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8%는 등록금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단전입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곳도 93.1%에 달한다. 심지어 교직원들의 연금, 건강보험료 등 법정의무부담금조차 내지 않고 교육청의 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사학법인쪽의 주장대로 사학이 민간기업과 같은 사유재산이라고 한다면, 절대다수의 사학은 법정관리 상태에 놓인 셈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과 사학법인이 사학의 자율을 주장하며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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