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떠안은 헌재, 이번엔 어떤 판결을?

[과거판결 분석] 교원노조 금지는 "합헌", 학운위도 "합헌"

등록 2005.12.29 18:09수정 2005.12.2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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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벌이고 반발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출됨으로써 이에 대한 판단은 헌재의 손으로 넘어갔다. ⓒ 연합뉴스 한상균

"우리 헌법은 사회주의적 발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 즉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청구를 내겠다."

지난 해 10월 19일 서울 영등포 열린우리당사 앞.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등 9개 사학 단체의 대표들은 이같은 성명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1년2개월이 흐른 올해 12월 28일. 사학법인 이사장 등 15명이 공언한 대로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헌재 판관들에게 위헌여부에 대해 심판해달라고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서다.

지난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가 다시 총대를 멨다. 이날 청구인단을 대리한 이 변호사는 "사학법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질서 등의 기본이념을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1988년 9월 탄생한 헌재. 이 때로부터 16년이 흐른 지난해 2월 현재까지 이곳에 접수된 교육 관련 사건은 모두 209건이었다. 지난해 초 <헌법재판소교육판례집>을 낸 교육부의 당시 서범석 차관은 서문에 다음처럼 적었다.

"국민의 권리 의식의 신장과 사회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유례없이 소송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우리는 이제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교육제도의 근간이 수정되는 일을 적지 않게 경험하고 있다."

사립학교법 위헌 청구 소송장을 가슴에 품은 헌재. 그들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려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들게 할 것인가. 헌재의 과거 판결은 이를 가늠하는 반사경은 아닐까.

임용고시를 만든 헌재 판결

헌법재판소의 주요 교육판결 내용과 반론

 

시기

사안

판결

판결근거

시민단체 반론

90년 10월 8일

국공립 사범대 졸업자 우선 임용

위헌

합리적 근거 없이 출신 학교에 따라 차별하는 내용

임용고시로 인해 교사 사교육 만연. 교사 인성보다는 지식 위주 선발

91년 7월 22일

사립학교 교사의 노동운동참여 금지조항

합헌

교육제도의 본질을 지키기 위함임. 교원직무의 전문성, 공공성을 고려함

교원노조 인정한 OECD 가입국과 배치된 판결

92년 4월 28일

공무원 노동운동 금지 조항

합헌

공공성,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은 일반근로자와 구별돼야 함

헌법 11조의 평등원칙 위배. 외국사례 비춰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판결

00년 4월 27일

과외금지 규정

위헌

국민의 자녀교육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임

과외 전면 허용 등 부작용 발생

01년 12월 29일

사립학교 학운위 설치 의무화

합헌

사학 역시 국공립학교와 유사한 공공성이 요구됨

판결문에서 '재산권 침해' 명시는 문제

04년 3월 25일

사범대생 가산점제

위헌

헌법에 의한 법률 근거 없는 가산점제는 위헌

목적형 교사양성대학의 존립 기반 무시한 판결

 

ⓒ 오마이뉴스

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시를 봐야 한다. 고교생이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해 사교육을 받듯, 예비교사들은 교사가 되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다. "교사를 만드는 곳은 교대나 사대가 아니라 노량진 학원"이라는 말을 만든 게 바로 이 시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헌재의 역사와 비슷하다. 헌재 출범 2년 뒤인 90년, 이들의 판결이 이 임용고시를 만들어 놓았다.

헌재는 이 해 10월 8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국공립 사범대 졸업자들을 사립사범대 출신자나 일반대학 교직과정 이수자에 우선해 국공립학교 교사로 임용토록 규정한 교육공무원법 제11조 1항은 헌법의 평등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헌재가 밝힌 결정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육공무원법 제11조 1항의 국공립사대생 우선 채용은 사립사대 졸업생들이 교육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기회를 반사적으로 제한 또는 박탈하게 되어 합리적 근거 없이 출신 학교의 설립 주체 등에 따라 차별하는 결과가 된다."

또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공립사대출신자의 우선임용제도는 졸업 후 안정된 취업 기회를 보장해 줌으로써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는 입법목적상의 타당성은 있지만, 이 제도는 교원 자격의 본질적 요소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 사립사대 출신자의 교사 자격을 차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판결 이후 교육부(당시 문교부) 장관을 맡고 있던 정원식은 곧바로 임용고시 시행을 전격 발표했다. 판결이 난 같은 해 같은 달인 10월에 임용고시 계획을 마련하고, 세 달 후인 91년 1월에 임용고시를 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전교조 사태 등을 대비해 교원종합대책안을 마련해놓고 대기하던 교육당국에겐 저절로 굴러들어온 일대 호재였다.

어떤 호재였을까. 전국 국립사범대학학생연합과 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가 발표한 다음과 같은 성명 내용은 그 호재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교원임용국가고시제는 사범대를 입시학원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학생에 대한 무한한 사랑, 뚜렷한 가치관, 역사의식, 교육적 신념, 헌신성 등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자질인데 단순한 지식축적 여부를 가리는 시험제도로는 이런 요건을 갖춘 교사를 선발할 수 없다."

교원임용체제를 뒤흔든 헌재의 판결은 지난 해에도 있었다. 헌재가 2004년 3월 25일, 중·고교 교사를 뽑을 때 사범대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현행 제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공직 취임 제한은 헌법(제37조 2항)에 의해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가산점 항목에 대해 대통령령에 대한 불분명한 위임만 있을 뿐 명시적 규정이 없다"며 "사범대 출신이 비사범대 출신에 비해 교직에 대한 사명감, 품성, 전문성이 앞선다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대와 교대 학생들은 물론, 전국 사범대학장들은 헌재의 결정을 강력히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사범대 등 목적형 교사양성대학의 존립 기반을 완전히 무시한 판결이라는 것이었다.

헌재에서는 아직도 교원노조가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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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립학교 교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결도 있었다. 91년 7월 22일에 내린 결정이었다.

헌재는 이날 사립학교법 제55조(사립학교 교원의 노동운동 금지조항)와 제58조 1항 4호(사립학교 교원의 노동운동참여를 면직 사유로 규정한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적정한 규정이라고 결정했다. 그 결정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관련 법률조항들이 사립학교 교원의 근로3권 행사를 제한·금지하더라도 근로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은 아니며 공공의 이익인 교육제도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적정하게 규정된 것이다. 사립학교 교원의 근로3권을 제한·금지하는 것은 교원지위의 특수성, 교원직무의 전문성·공공성, 교육제도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교원들은 노동조합이 아닌 교직단체인 교육회를 통해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교원은 근로자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고도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갖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노동관계법의 원리를 교원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넓은 의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근로기본권이라도 '공공의 이익'이란 명목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모든 나라들이 교원노조를 인정하던 때에도 헌재의 판단수준은 이 정도였다.

당시 이 내용을 소개한 <동아일보> 사설은 교원노조 반대 세력의 생각을 고스란히 엿보게 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헌재가 무척 소중한 결정을 내린 것이 분명했던 모양이다.

"28일 헌법재판소가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제한한 국가공무원법 제66조의 규정에 대하여 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교원의 노조활동이 법적으로는 불가능함을 명시한 중대한 결정이다. 적어도 교원들의 노조활동은 앞으로 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으며, 현재 진행중에 있는 전교조의 활동도 법외의 불법단체로서만 존재할 뿐 법이 뒷받침하는 활동의 정당성을 갖기 어렵게 됐다."

헌재의 이같은 판결은 92년 4월 28일 '전교조 불법 규정'에 대한 합헌 결정으로 이어진다. 국가공무원법 66조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한 이 법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가공무원법 66조가 근로3권을 제한하는 것은 공무원이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지위에 있기 때문에 타당하다"면서 "공공성·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은 일반근로자와 구별돼야 한다"고 합헌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해 '상위법인 헌법 11조의 평등원칙은 안중에도 없는 판결'이란 비판도 쏟아졌다.

교원노조가 합법화된 99년 7월. 이같은 판결을 내렸던 헌재 재판관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헌재의 결정에 박수를 치던 일부 교육계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은 또 어땠을까. 이 당시 교원노조특별법에 대한 위헌소송은 없었다.

'과외금지 위헌 결정' 내린 헌재

헌재는 2000년 4월, '과외 금지'를 규정한 관련 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교육기본권을 막을 수 없다'는 게 그 결정의 뼈대였다. 이에 따라 과외교육을 금하고 있는 '학원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이날 판결 직후 용도 폐기됐다.

헌재가 같은 해 4월 27일 발표한 결정문이다.

"현행 법 조항은 모든 과외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 결과 '고액과외의 방지'라는 입법 목적의 달성과 무관하게 사회적 해악이 없는 교습 행위까지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는 '비례성 원칙'에 반해 국민의 자녀교육권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이 판결은 과외 전면 허용으로 나타났다. 당시엔 교육부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단체의 반발이 빗발치자 '개인과외 등록 또는 신고제 도입' 등의 대체입법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 또한 고액과외 근절을 위한 근본 대책이라고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지난 해 1월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사교육 망국론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정책이었다.

사립 학운위는 합헌, 그러면 사립학교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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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대하는 사학법인, 종교계 관계자들은 개정 사학법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28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청구인단 대리인 이석연 변호사(가운데)가 헌법소원을 낸 뒤 접수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학재단은 학교운영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헌재에 제소한 바 있다. "학교 운영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한 개정 초·중등교육법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에 반하고 학교재단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현행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에 빗대 생각해 볼 여지가 큰 대목이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2001년 12월 29일 헌재는 '노'라고 답했다. 합헌이라는 얘기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미성년자인 학생의 교육과정에 학부모가 참여할 당위성을 부정할 수 없고 학부모의 집단적인 교육 참여권을 법률로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 당연하다"면서 "자문기관인 학교운영위가 사학의 재산권 행사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결정문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효화하기 위해선 사학 역시 국공립학교와 유사한 공공성이 요구된다"고 적은 내용. 교육의 공공성인가, 아니면 사학 운영의 자율성인가란 질문 앞에서 교육의 공공성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이 헌재 결정문에서도 나와 있듯 "사학의 재산권 행사를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판단할 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사립학교법 제1조는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립학교의 특수성을 중심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교육의 자주성과 공공성에 힘을 실을 것인가. 헌재의 판단을 속단하긴 무척 어렵다.

하지만 참여연대, 참교육학부모회, 흥사단, 전교조 등 44개 교육시민단체가 모인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가 28일 낸 다음과 같은 성명서 내용도 음미할 필요는 있겠다.

"개정 사학법이 위헌이라면 '그린벨트도 위헌이고, 건물 고도 높이 제한도 위헌이고, 토지용도 제한도 위헌이고, 버스 전용차선제도 위헌이고…' 사립학교법을 포함하여 모든 법률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하여 공공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이 부차적인 것이냐, 본질적인 것이냐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면 된다. 이번 사학법 개정은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법으로는 오히려 부족하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새로운 사조가 하나 생겨났다. 이른바 '헌재 만능주의 사조'다. 헌재공화국이란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법 위에 군림하던 독재정권을 찬양해 온 일부 족벌언론들이 이젠 여론이란 이름으로 이런 헌재공화국을 찬양하고 나섰다.

헌재는 서민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인가, 아니면 기득권층이 최후에 빼들 수 있는 무기인가. 헌재는 과연 누구를 위해 '방망이'를 두드릴 것인가. 지난 날 이들이 내린 교육 관련 판결은 많은 서민들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헌재를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우리교육> 2005년 1월호에 쓴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우리교육> 2005년 1월호에 쓴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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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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