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친구를 도와주면 안되나요?"

[서평] 정문학교 천사들의 합창 <그래, 조금 느려도 괜찮아>

등록 2005.12.29 12:02수정 2005.12.29 14:35
0
원고료로 응원
a

<조금 느려도 괜찮아> 표지 ⓒ 도서출판 이레

장애인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이렇게 정의 내려져 있더라.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조차 장애인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분류되어진다.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끝이 난다면 좋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여 정상인과 장애인으로 나누어 신분표시로 전락하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은 그나마 시선들이 많이 나아졌고, 반짝이든 아니든 공인이라 불리는 이들, 국회의원, 연예인 등이 소외된 이들을 돌봐주고 응원을 하고 있어 이미지가 전보다 개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들을 길에서 마주치면 한참 시선을 옮기지 않는다.

설사 그들을 동정의 눈빛으로 쳐다본다고 해도 그들은 그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우리는 소리없이 상처를 주고 있는 셈이다.

갑작스레 장애인 변론인처럼 구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조금 느려도 괜찮아>라는 책을 여러분께 소개해볼까 해서이다.

이 책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특수학교인 정문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곳은 얼마 전 톱스타 최수종과 김태희가 방문해, 갑작스레 화제가 된 곳으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에 자리한 특수학교로 다운증후군과 자폐 등 정신지체 학생 250명이 장애 재활교육을 받고 있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는 에세이집으로 학교에 근무하는 여섯 명의 선생님의 교단일기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생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도서출판 이레에서 출간된 이 책은 '함께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여섯 명의 주인공 김길옥, 박로사, 백진희, 이수정, 이화정, 조성연 등 특수교사 여섯 명이 사진동호회+교육연구+식도락+수다방 모임을 만들었고, 모임 이름은 '아이빛그림'이다. 이 뜻은 '아이들의 빛을 그려낸다'는 것으로 2003년 정문학교에서 만난 이들 특수교사들은 아이와 사진이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금세 친해져 하나가 되었다.

지난 3년간 특수학교의 일상과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주 특별한 교단일기를 써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메라 렌즈와 온 마음을 '자식 같은 제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는 이들은 언젠가 볕 좋고 공기 좋은 산자락에 재미나고 신나는 학교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고 있다.

'아이빛그림'은 처음에 학습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단어의 뜻을 가르쳐주고, 아이들 사진을 사물함에 붙여놓고 누구의 것인지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역시 어설프게 그린 그림보다는 그럴 듯한 사진을 훨씬 좋아했고, 자신과 친구들의 얼굴이 나온 학습 자료를 보며 공부에서 재미를 느꼈다. '아이빛그림'은 먼 곳에라도 가면 아이들을 위해 시원한 바다의 파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달팽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면서 말과 행동이 아닌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아이들과 세상의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학교든, 거리든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한 곳의 흔적을 담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과 선생님은 마음을 나누게 된 것이다. 결국 사진은 아이들과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추억들을 모아놓는 보물 상자가 되었다.

처음엔 학습자료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사진촬영이었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기 전에 순수한 여느 아이와 다름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어느새 자꾸만 아이들의 빛깔에 사로잡혔다. 아이들의 몸짓, 손짓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사랑스러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능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왠지 모르게 눈빛도 흐릿할 것 같고, 할 줄 아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이 아니라, 더없는 호기심을 담아 반짝이는 눈으로 생기 있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일상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그리고 이 아이들도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우리와 함께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 세상에 책을 내놓게 된 것이란다.

선생들은 책을 출간하면서 그렇게 큰 소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서툰 솜씨로 촬영을 했지만 셔터를 누르면서 자신들이 발견한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다른 사람도 '이 아이들도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졌구나'하고 한번쯤 생각해주길, 느린 걸음을 걷는 아이들에게 '조금 느려도 괜찮아'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뿐이다.

이뿐만 아니라 책에는 특수학교 교사들의 고민과 장애 아이들의 일상이 솔직담백하게 담겨 있어 때론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선생님에게만 보여주는 저 표정. 이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사가 된다." 정신지체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선생님들이 카메라로 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찍었다. 비록 아마추어의 서투른 솜씨이지만, 교실에서 또 거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붙잡은 표정들이 재미있다. 장난스럽거나 애교 섞인 '살인미소', 교실에서 투닥투닥 하다가 삐친 순간, 바닷가로 들판으로 놀러간 날의 즐거운 추억, 친구의 휠체어를 서로 밀어주려는 기특한 다툼, 공부에 몰두하는 심각한 표정…."<본문 중>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왜 친구를 도와주면 안 되나요?"라고 되묻는 승호. 예쁜 승은이가 혼자서 걷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자꾸 도와주려 하자, 선생님들은 "혼자 걷게 놔둬라!"고 하기 일쑤. 친구 사이에 서로 돕는 일이 당연하겠지만 이곳 선생님들은 "도와주지 마라!"라고 승호에게 당부하니 어린 아이는 아리송하다.

어느 날, 야외 학습을 나간 아이들. 선생님 앞에 한 아이가 꽃 한 송이를 내밀며 '선물!'이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난감하다. 자연보호를 가르쳐야 할 본분을 생각하면 당장 꾸지람을 해야 할 터이지만, 이곳 선생님들의 생각은 다르다. '꽃 한 송이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이 꽃 한 송이를 보호할 줄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느림보 달팽이지만 선생님들은 늘 아이들에게 속삭인다. "그래, 조금 느려도 괜찮아"라고.

너무 빠르게 돌아가 바삐, 바삐 움직이는 것이 좋은 건 줄만 아는 우리에게 여섯 명의 선생님들과 눈동자가 반짝이는 아이들은 "아니야. 조금 느려도 괜찮을 걸"이라고 말을 건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아이빛그림 사진.글,
이레,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제 개인적인 소견을 올리기 위해 가입을 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