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섬이 되고, 내가 섬이 되는 '일출여행'

제주 형제섬 일출과 대장금에 묻혀버린 슬픈 역사의 '진지동굴'

등록 2005.12.29 12:09수정 2005.12.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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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직전 형제섬 앞으로 고기배가 지나고 있다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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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섬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 ⓒ 김정수

제주의 대표적인 일출하면 형제섬의 일출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 황홀한 일출을 두 번이나 보았다. 형제섬은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서 500m 가 채 안되는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바위섬으로 무인도다. 섬을 꼭 두 개로 잘라놓은 듯한 형상으로 서 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개수가 달라지는 것이 신비롭다. 작게는 2개에서 많게는 10개로 보인다고 한다.

이 곳은 갯바위낚시터로도 인기 있는데, 갈라진 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 또한 유명하다. 검은 섬 주변의 바다와 하늘을 한번에 물들이는 일출 풍경이 비경을 만들어낸다. 섬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면 하나의 섬이 더 생기는 듯하다. 해가 섬이 되고, 그 일출을 맞이하는 나 역시 섬이 되어버린다. 형제섬에서는 감성돔과 뱅어돔이 잘 잡힌다. 특히 5~7월 사이가 낚시하기에 좋다.

형제섬 앞의 해안가는 현무암 지대라 이 일대도 아름답다. 이곳에서도 삼방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삼방산 전경사진을 촬영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 해안에서 삼방산과 형제섬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형제섬이 있는 바다의 앞쪽에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함께 떠 있는데, 이로 인해 형제 사이에는 돈을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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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동굴에서 연인들이 형제섬을 바라보고 있다. 생일 하루전에 촬영한 사진.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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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동굴 앞에서 부자가 형제섬을 바라보는 가운데 마라도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생일도 못챙겨먹고 찍은 필자가 아끼는 사진이다. ⓒ 김정수

형제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송악산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드라마 <대장금>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진지동굴이다. 장금(이영애분)이가 의녀수련을 하던 동굴로 나왔던 곳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산모를 발견하고 제왕절개수술을 하던 동굴이 바로 송악산의 진지동굴이다. 진지동굴은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의 송악산(104m)아래 모슬포 해안에 자리한 인공동굴이다.

진지동굴은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각종 무기와 잠수선 등을 숨겨두기 위해 제주도의 대정지역 주민들을 강제 징용해서 만든 인공동굴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슬픈 역사는 온데 간데 없고, 동굴 입구에는 '대장금 촬영지'라는 표지판만이 진지동굴을 대변해주고 있어 더 슬프게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아픈 역사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진지동굴의 동굴은 모두 15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성인 4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동굴이 15개라서 '일오동굴'로도 불린다.

진지동굴은 송악산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마라도행 유람선이 출발하는 송악산포구의 선착장에서는 잘 보인다. 마라도행 유람선을 타면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배에서 바라보는 진지동굴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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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의 해안절벽(2003년 촬영, 나머지 사진은 2004년 촬영임)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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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해안절벽에서 해식동굴이 사람의 눈과 코를 닮았다 ⓒ 김정수

진지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바다쪽을 바라보면 동굴 사이로 형제섬의 모습이 보인다. 형제섬이 진지동굴 안에 제대로 들어오게 잡으려면 4번째, 또는 5번째 동굴에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

실제 <대장금>이 촬영된 동굴은 4번째 동굴이라고 한다. 광각렌즈를 이용해서 촬영해야 형제섬이 크게 잡힌다. 나는 이 사진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 2004년 2월 함께 여행했던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하루를 더 묵었다. 선배들과 함께 왔었는데 비행기 시간 때문에 촬영에 여유가 없다보니 원하는 사진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날이 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역국 대신 사진을 택하기로 마음먹었고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만큼 그 사진은 내가 아끼는 사진 중 하나다.

일오동굴 안에 형제섬을 걸고, 백사장을 거니는 부자를 모델로 삼아, 마라도로 향하는 유람선이 들어오자 멋진 구도의 사진이 나왔다. 좋은 사진은 때로는 철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평소에는 연출이 아닌 자연스러운 사진을 더 많이 촬영하지만, 최고의 포인트가 되는 사진은 약간의 연출이 필요하다.

2002년 이후 3년째 미역국을 못 먹으면서 촬영한 사진이라 나에겐 특별하다. 다시 봐도 제주도로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와 닿는 사진으로 생일을 못 챙겨먹은 것이 결코 후회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제주는 필자의 발목을 잡은 적이 많은데, 2003년에는 3박4일 일정으로 왔다가 1주일동안 머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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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에서 바라본 형제섬과 산방산 전경이 시원스럽다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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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지아 레스토랑이 자리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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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테마를 가진 재즈마을펜션의 '노래하는 산호' 전경 ⓒ 김정수

섭지코지 일출 촬영을 위해 3박을 투자하고도 허사로 끝나버렸지만, 제주에만 가면 독특한 색깔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사진에 대한 욕심이 더욱 강렬해진다.

형제섬과 진지동굴을 돌아보았다면 송악산도 빼놓을 수 없다.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의 모슬포 해안에 자리하고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이루어진 산으로 일명 99봉이라고도 한다.

영화 <연풍연가>를 보고 저기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이후에 SBS드라마 <올인>, MBC드라마 <아일랜드> 등이 촬영된 곳이다. 송악산은 해발 104m의 나지막한 언덕배기 산으로 제주도의 오름 중 하나이다.

송악산 해안 절벽의 파도 울음이 인상적이어서, '절울이오름'이라고도 불린다. 이 일대의 파도가 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진지동굴이 슬퍼서 가슴앓이를 하며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송악산 정상에 서면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는 물론이고 멀리 산방산(395m)과 한라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시원스럽다. 시간이 남는다면 유람선을 타고 마라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유람선이 선착장을 벗어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형제섬과 진지동굴, 송악산의 풍경 또한 잊지 못할 비경이다.

제주만의 다양한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형제섬과 진지동굴, 송악산이다.

추천! 맛집과 숙소

델리지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3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으로,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였던 곳이다. 314평의 넓은 레스토랑으로 세계 각국의 메뉴와 제주도의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제주 갈치왕소금구이 반상, 제주 옥돔구이반상, 성게알 해물뚝배기가 추천할 만한 메뉴다.
문의 : 064-738-6407
홈페이지 : 제주국제컨벤션센터 http://www.iccjeju.co.kr

재즈마을펜션
중문관광단지 입구의 서귀포시 상예동에 자리한 펜션공동체마을이다. 음악, 문학, 영화, 미술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된 펜션을 4명의 주인장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특한 곳이다. 음악이 있는 풍경 '더 왈츠', 문학이 있는 풍경 '노래하는 산호', 영화가 있는 풍경 '시네마천국', 미술이 있는 풍경 '푸른지붕'이 함께 하고 있어 각자 취향에 맞는 객실을 선택할 수 있다. 문의 : 064-738-9300
홈페이지 : http://www.jazzvillage.co.kr

교통정보

자가운전
제주시내에서 서부산업도로(95번 국도)를 타고 대정방면으로 간다. 안덕면에 이르면 산방산 이정표가 보인다. 산방산을 지나 송악산 방면으로 2분 정도 달리면 중간에 형제섬을 만날 수 있다. 마라도 선착장 바로 옆에 진지동굴이 있으며, 바로 위쪽이 산방산이다.

대중교통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회선 일주도로(모슬포) 방면 버스를 타고 종점인 모슬포에 내린다. 순환버스를 타서 산이수동에서 하차하여 10분 정도 걸으면 송악산과 형제섬 앞의 해안으로 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며, CJ케이블넷 경남방송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

덧붙이는 글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며, CJ케이블넷 경남방송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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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금오산 자락에서 하동사랑초펜션(www.sarangcho.kr)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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