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할 거 아이가?"

[2005 나만의 특종] 좌충우돌 아내, 남편을 간병하다

등록 2005.12.29 11:45수정 2006.01.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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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에겐 해마다 힘든 날들이 많았습니다. 운이 좋은지 몰라도 지난해부터는 남편이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는 남편이 감옥 대신 더욱 고달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지난 여름 목 디스크 수술을 한 것입니다. 남편은 수술 후 앉지도, 엎드리지도 못한 채 침상에서 일주일간 누워 있었지요. 간병이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차라리 감옥에 있을 때가 오히려 마음 편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 컵라면으로 때운 날이 많았습니다. 식사시간에 금식하는 남편을 피해 휴게실에 갈 때도 총총걸음으로 걷거나 뛸 정도로 시간을 아꼈습니다.

원무과에 가서 주사나 약재들을 구입하고, 4개나 달린 링거를 자주 확인하고, 소변 양 체크 등 제가 할 일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의사가 회진 시에 목의 수술 부위를 치료하고 실밥을 빼는 장면을 직접 보니 제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남편도 몸을 자유스럽게 움직이지 못하고 목이 붓고 호흡곤란까지 겪은 탓인지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평소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바쁘게 뛰어다닌 남편인데, 일주일을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으니 많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남편은 목이 아파 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자주 되묻곤 했지요. 남편은 두 세 번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제가 못 알아들으니 결국 화를 내더군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될 거 아이가?"
"나 원래 눈치 없잖아! 입안에서 옹알거리는데 어떻게 알아 듣냐."

오죽 답답하면 화를 낼까 한편으론 이해가 됐지만, 속 좁은 저 또한 남편에게 톡 쏘아버렸습니다. 화가 나서 간병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분을 삭이려고 복도를 서성이다가도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남편이 걱정돼 얼른 병실로 달려가곤 했지요.

저는 평소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고, 잠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제가 간병을 하면서는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남편이 한숨쉬듯 말을 합니다.

"무슨 잠귀가 그마이 어둡노. 내가 자다가 니를 얼마나 불렀는지 아나?"
"안 들리던데. 발로 차지 그랬어요?"
"몇 번을 불러도 모르길래 손으로도 치고 발로도 차봤다. 세상 모르고 자데."
"미안…."

남편은 침상에서, 저는 바닥에 가까운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자는데, 피로가 누적된 제가 잠에 곯아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간호사가 마침 병실에 들어와서 남편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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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경

젖은 수건으로 남편 얼굴과 몸을 닦아주고 팔, 다리를 주무르는데 제가 워낙 힘이 없다보니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발바닥에 모여 있는 신경을 자극하려고 아이스크림 막대기로 콕콕 찌르기도 하고 무좀이 있는 남편 발을 마사지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평소엔 남편에게 "무좀 옮을지 모르니 내 슬리퍼 신지 말라"고 싫어하는 제가 이상하게 남편 발이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갑자기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혈압과 체온은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잘못이더군요. 소변 양을 체크한 뒤 소변 줄을 잠가놓고 꽤 오랜 시간을 깜박 잊고 열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차분하지 못한 성격 탓에 늘 남편이 고생입니다.

남편이 걷기 이틀 전부터 미음을 시작으로 죽을 조금씩 먹었습니다. 그러자 뱃속이 요동친다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하지만 목 보호대 없이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어서 기저귀를 준비했습니다. 여러 환자와 보호자가 있는 병실에 피해를 줄 수 없어 오물처리장에 가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미리 봐둔 조용한 장소에 가기 위해 급하다는 남편의 침상을 밀며 복도를 뛰다시피했습니다. 남편은 놀란 듯 제게 당부합니다.

"미경아, 살살 밀어라. 어지럽다."

남편을 간병하면서 실수도 많이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다른 때보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12년을 살아오면서 24시간, 그것도 좁은 공간에서 함께 마주보고 있던 시간이 가장 많았기 때문일까요?

남편이 목 보호대를 하고 침상에서 일어나던 날, 저는 생계를 위해 병실을 나서야 했습니다. 남편 혼자 두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요. 부부는 영원한 동지입니다. 어느 한쪽이 아프면 지켜보는 한쪽도 덩달아 아프지요. 남편 건강이 빨리 회복되어, 앞으로는 마음 편할 날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만의 특종'기사

덧붙이는 글 '나만의 특종'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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