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을 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

제수씨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고

등록 2005.12.29 12:17수정 2005.12.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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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우리 집에서 두 형제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즐거운 식사 자리와는 잘 어울리지 않게 장기 기증과 시신 기증에 관한 얘기가 꽃을 피웠다.

우리 부부는 1995년 각막 기증과 장기 기증에 이어 시신 기증까지 해놓았다. 안구는 대전성모병원 '안은행'에, 장기(전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시신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을 했다. 그리고 카드로 만들어진 '헌안등록증'과 '장기기증서', '시신기증등록증'을 받아서 잘 간직하고 있다.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화제를 주도하면서 지갑에 넣어 늘 휴대하고 있는 그 등록증들을 꺼내어 가족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보여 주기도 했다.

안구와 장기는 기증 절차가 어렵지 않다. 배우자의 동의만 있으면 등록이 된다. 하지만 시신 기증은 부모와 형제들의 동의까지 받아야 한다. 그래서 시신 기증을 할 때는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로 어려움이 컸다.

우리 부부가 1995년 각막과 장기에 이어 시신 기증까지 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고 났을 때였다. 동생은 별 반응이 없는데 제수씨가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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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전주 전동 성당에서... ⓒ 지요하

"저도 장기 기증이나 시신 기증을 의미 있는 일로 생각해요. 저도 할 수만 있으면 하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니, 좀 이상한 말인데…?"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 기증이나 시신 기증을 하고 싶어도, 그건 죽은 사람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산 사람들의 뜻에 달린 일일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표명을 해야 해요. 죽음 자리에 이르렀을 때 확실하게 유언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죽을지, 유언 한마디라도 하고 죽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나처럼 미리미리 의사 표명의 증거를 확보해놓는 것이 좋아요."

"그렇겠네요."

제수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그 화제는 끝이 났던 것 같다. 거기까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제수씨의 죽음 자리에서 장기 기증 문제가 현실적인 사안으로 떠올랐을 때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2>

수술 다음날인 12일 저녁 때까지도 제수씨에게는 소생 가능성이 있었다. 낮에 신부님이 면회를 하며 '병자성사'를 주실 때는 신부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두 손을 움직이기도 했다. 저녁 때 태안 성당 최 스텔라 수녀님이 면회를 하고 기도를 할 때는 두 눈꺼풀을 움직이기도 했고, 한쪽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 날 저녁 의료진은 기형 혈관의 잔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재검사 계획을 세우고 보호자(내 동생)에게서 동의서까지 받았다. 그 날 오후 집에 내려온 나는 그 사실을 늦은 밤에 동생에게서 전화로 들을 수 있었다.

'재검사 동의서'라는 말에 나는 잠시 난감하고도 아득한 기분을 맛보았다. 뇌혈관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허벅지 혈관을 통해 조영제를 투입해야 하는데, 제수씨의 신장이 조영제를 견뎌낼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차 검사 때 인턴에게서 조영술에 대한 얘기를 들었었다. 일종의 염색약인 조영제는 모두 콩팥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콩팥이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의료진이 보호자에게서 조영술에 대한 동의서를 받는 것은 조영제 투입으로 인해 환자의 콩팥이 망가질 경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할 터였다.

조영제를 한번 투입하는 것도 적이 부담스러운 일인데, 뇌혈관 촬영을 위해 또 다시 조영술을 실시하겠다니, 정말 두렵고도 난감한 일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영제 시술로 말미암아 제수씨의 콩팥이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제수씨가 소생을 할 경우 중증 장애를 지니고 사는 것만도 한없이 슬프고 힘든 삶일 텐데, 거기다가 혈액 투석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될 터이니 그 노릇은 또 어찌 감당할 것인가!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울면서라도 겨자를 먹어야 하고, 콩팥 걱정은 나중 문제로 돌려야 하고, 우선은 제수씨를 살리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했다. 의료진의 재검사 계획을 다행스러운 일로 여기자는 말을 동생에게 하며, 다시 한번 제수씨의 소생만을 하느님께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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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동 성당 성모상 앞에서... ⓒ 지요하

그런데 13일 아침부터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 방법으로 며칠 동안 환자의 뇌를 재우기로 했다는 의료진의 말을 전하며 동생은 울먹였다. 왜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일까? 최 스텔라 수녀님이 돌아가신 후 저녁 면회 시간에 기도를 하지 않는 남편만 면회를 하고, 기도를 하는 시아주버니는 들어오지 않는 것을 제수씨가 느낀 나머지 혹 실망을 한 탓은 아닐까? 갑자기 그런 이상한 생각까지 들어서 나는 더욱 한숨을 쉬어야 했다.

14일 오전에 동생은 진료비 중간 계산 청구서를 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서산의 증권회사에 맡겨놓은 돈 1천만원을 찾아 전국 어디서나 카드로 인출할 수 있는 내 농협 통장에 입금을 해놓고는 동생은 저녁때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15일 아침에 환자의 상태가 좋아져서 희망이 보인다는 주치의의 말을 전하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즉시 인천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12시 30분 면회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여 동생 다음에 중환자실에 들어가 환자를 본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수씨는 이미 참혹한 모습이었다. 뇌부종이 얼굴 한쪽까지 붓게 만들어서 벌써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부기가 시작되고 있는 제수씨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묵주를 쥐고 제수씨의 이마와 양 어깨와 가슴으로 옮겨 대주며 성호를 그어준 다음 그 묵주를 제수씨의 가슴에 올려놓은 채로 한 손은 제수씨의 손을 잡고 묵주기도를 했다. '고통의 신비' 5단을 바치며 내내 눈물을 흘렸다.

내 기도는 이미 '기적'을 소망하는 기도였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이 아니고서는 제수씨를 소생시킬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가슴 가득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께 눈물로 기적의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를 바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부터는 제수씨의 영혼을 돕는 기도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장기 기증'이라는 단어를 뇌리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면회를 마치고 나와서 동생에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장기 기증 문제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가는 사람의 장기를 나누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돕는 것은 참으로 뜻 있는 일이니 꼭 장기 기증을 실행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3>

16일(금요일) 낮 12시 30분 중환자실 면회를 마치고 우리 형제는 주치의 박현선 교수의 방을 찾았다. 주치의 박현선 교수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뇌부종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어제 오전에는 잠깐 희망이 보였었는데, 그 뒤로 이쪽 저쪽을 왔다갔다 하더니, 이제는 저쪽으로 거의 기우는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부터 제 육안으로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부터 우리 형제는 장기 기증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보호자가 장기 기증을 하고 싶어하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장기 기증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선은 가족들이 모두 동의를 해야 해요.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반대를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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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동 성당 성모상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부부 ⓒ 지요하

주치의 면담을 마치고 나왔을 때 동생의 작은 처남에게서 내게로 전화가 왔다. 환자 상태를 궁금해 하는 그에게 주치의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고 나서 장기 기증에 관한 말을 했다. 동생의 작은 처남은 즉각 장기 기증을 반대했고, "장기 기증 얘기가 너무 일찍 나온 것 아니냐"며 섭섭함을 표했다.

나는 동생의 작은 처남이 30대 젊은이라서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것 같았고, 또 장기 기증을 실행하려면 전체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리리라는 것을 생각한 나머지 일찌감치 말을 꺼낸 것인데 무안만 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의지를 발휘하기로 했다. 다음날 17일 병원으로 온 동생의 처남들과 처남의 댁, 처형과 처제, 손위 동서에게 장기 기증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어차피 땅 속에 묻히면 다 썩을 몸이 아닌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나누어 다른 이들의 생명을 도와주고 구해주는 일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그것은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고, 제수씨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도와주는 일일 터였다. 누구보다도 제수씨의 영혼이 좋아하며 우리들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우리 형제의 적극적인 설득에 동생의 처가 쪽 가족들은 하나둘 동의하는 기색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의 장인 장모는 완강했다. 천주교 신자이신 사장 어른마저 내가 전화로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내 딸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우리는 18일 주일 낮에 병원을 찾은 동생의 처숙부님께도 동의를 구했고, 처숙부님으로 하여금 동생의 처가 어른들을 설득해 주시도록 부탁드렸다. 하지만 곧 동생의 처숙부님이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18일 낮 면회 시간에 맨 먼저 면회를 하고 나온 동생의 처형이 간호사의 말을 전해 주었는데, 제수씨는 (비활동성) B형 간염 보균자라서 장기 기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형제로부터 일찌감치 장기 기증 의사가 전달되었기 때문에 의료진은 미리 환자의 피를 뽑아서 장기 기증 가능 여부를 검사해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간호사가 면회 시간에 맨 먼저 중환사실에 들어온 동생의 처형에게 알려 준 것이었다.

나는 내심 무척 섭섭했고, 몰랐던 사실에 당혹감을 가지면서도,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수씨의 장기 기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양쪽 가족 간의 갈등 분위기가 해소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고 동생을 위로했다.

의료진은 19일 오전에 환자의 '뇌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뇌파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20일 오전에 주치의 박현선 교수가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다. 뇌파가 잡히지 않아 뇌사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동생의 장모님도 있었는데, 주치의 박 교수는 다시 장기 기증에 관한 얘기를 했다. B형 간염 보균자라도 신장은 기증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형제는 신장만이라도 기증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의 장모님은 반대를 했다. 그래서 약간의 설왕설래가 발생했는데, 주치의 박 교수는 장기 기증을 하려면 환자를 '길병원'으로 이송해서 뇌파 검사를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으니 장기 기증 얘기는 이만 끝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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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전주 풍남동 ‘오목대’ 뜰에서 제수씨의 즐거워하는 모습 ⓒ 지요하

결국 제수씨의 장기를(신장만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주어 그들의 생명을 돕고 싶어했던 우리 형제의 의지는 수포로 돌아갔다. 생각하면 제수씨에게 더욱 미안하다. 장기 기증을 누구보다도 제수씨의 영혼이 반겨하며 좋아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아쉬움이 크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로 가는 제수씨의 영혼을 가장 확실하게 돕는 일이었는데….

장기 기증을 끝까지 반대하신 사돈 어른들께 크게 섭섭한 마음은 갖지 않는다. 부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요, 당연지사일 터였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몸에 칼을 대는 일을 선뜻 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사돈 어른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끝내 장기 기증을 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 제수씨에게 더욱 미안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언젠가 우리 형제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장기 기증, 시신 기증과 관련하여 제수씨가 했던 말을 명료히 기억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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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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