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집'엔 새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었네!"

[상하이 탐험⑫] 중국 세 번째 큰 섬 총밍도 갈대집을 찾아서

등록 2005.12.29 17:55수정 2005.12.2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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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밍도 가는 뱃길은 '바오양루부두'에서 1시간 남짓 가야 비로소 도착하고 다시 1시간을 들어가야 갈대숲에 도착할 수 있다. ⓒ 유창하


"갈대 짚으로 만든 저 집은 도대체 뭐지?"
"큰 새집 아냐?"
"어! 그런데 사람이 살고 있었네."

상하이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정구역상으로는 상하이시에 속하지만 뱃길로 1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총밍따오(崇明島) 철새도래지 인근을 찾았다가 원시적 전통가옥 형식의 일종인 갈대를 이엉으로 엮어 만든 '갈대집'을 발견하여 모두들 무척 놀라워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하구 퇴적 섬, 300만 평방의 갈대밭

사람이 사는 갈대집이 있는 총밍도는 서기 600년 경 장강(長江) 중상류에서 실려 내려온 토사가 퇴적되어 생겨난 섬으로 중국에서 타이완(臺灣)섬, 하이난(海南島) 다음으로 큰 섬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구(沙口) 섬이다. 섬 동쪽으로는 동지나해가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중국 장강이 흐르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가 있다.

섬 동쪽 끝자락에 가면 중국 정부가 철새도래지로 정한 동탄 국가지정 자연보호구(東灘 自然保護區)라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이 동탄 자연보호구 인근 하천과 어촌 일대에서 장소에 따라 조금 형태가 다른 갈대를 이어 만든 갈대집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 자연보호구에는 30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갈대밭이 펼쳐져 있으며 백조, 원앙새 도요새 , 기러기류, 오리류 등 수많은 철새들이 겨울을 난다. 국가가 지정한 보호 철새로 흰머리학, 큰고니, 청도요 등이 있으며 이곳에 매년 날아오는 고니의 수는 약 3000~4000여 마리로 집계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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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나해 바다와 장강이 만나는 경계선은 푸른색과 황토색으로 선명하게 구분된다. ⓒ 유창하

또한 총밍다오 동쪽 연안은 장강과 동지나해가 만나는 곳으로 푸른 동지나해 바다와 황색의 장강물이 긴 경계선을 이루며 만나는데 그 경계선이 뚜렷하여 장관이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그 경계선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것처럼 아름답게 변한다. 이런 장관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바닷물과 강물이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섬 이름인 총밍(崇明)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섬이 생성되고 나서 북쪽의 쟝슈성(江蘇省)에서 들어와 사는 주민들이 개간한 밭의 높이가 수면보다 높아 하늘과 물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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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밍도 갯벌에서 주민이 총밍 특산 게를 잡은 통을 메고 걸어가고 있다. ⓒ 유창하

이곳으로 이주한 명청 나라 시기 주민들은 자연히 생물종이 다양한 모래갯벌에서 게, 망둥이, 조개 등을 채취하며 생활하였을 것이고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널려있는 갈대를 이용하여 갈대집을 지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곳에 염전을 개간하여 소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주거용으로 만든 갈대집의 모양은 총밍현(崇明懸) 중심지에 있는 총밍도박물관에서 본 갈대집 모양과 너무나 흡사하다. 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양과 형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는 것은 많은 농어촌민들이 지금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씁쓸했다.

집 건축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하는 갈대는 보통 습지나 갯가, 호숫가 주변의 모래땅에서 자라는 습지식물이다. 갈대가 산에서 자라는 억새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끔 혼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산에서 보는 전통집은 억새 지붕집이고 물가에서 만나는 전통집은 갈대로 지붕을 이은 갈대 지붕집이다' 라고 보면 된다.

갈대는 높이 3m까지 크게 자라 성인도 갈대숲에 숨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갈대숲을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가 많이 등장하고 연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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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밍도 갈대밭은 500만평방의 광활한 갈대숲이 펼쳐져 있다. ⓒ 유창하

어린시절 갈대로 만들어진 빗자루로 방을 쓸기도 했다. 플라스틱이라는 문명의 획기적 재질 출현과 함께 지금은 플라스틱 빗자루로 대체되었지만 한국 가정에서도 80년대 까지는 갈대 빗자루를 구경할 수 있었다.

과거, 갈대이삭의 털은 이불솜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였고 갈대줄기는 갈대삿갓, 갈대발을 만드는 데 쓰였다. 갈대뿌리는 말려 민간약재로 사용되기도 해 갈대는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것 없는 중요한 식물로 취급받기도 했다.

이처럼 갈대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절 유용하게 사용되던 자연 채취식물 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주거시설 설치용 주요 건축 재료였다. 갈대를 이용해 추위를 막고 위해 동물의 접근을 차단하며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오늘날의 주택을 만들었던 것이다.

갈대집에는 새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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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밍도 갈대밭 인근 어촌에는 갈대로 지은 갈대집 집단촌이 있다. ⓒ 유창하

작은 배를 타고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낙동강 하구 삼각주를 다닌 적이 있다. 강 하구 갈대밭에서 작은 새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물풀을 입에 물고 열심히 나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낙동강 하구의 섬과 등(섬이 되기 전의 상태) 곳곳에서 작고 소담스런 항아리처럼 생긴 둥그런 새집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갈대밭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하였었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 총밍도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큰 새집'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사람이 사는 갈대집은 그동안 보아왔던 새집들보다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랍고 신기했다.

옷가지가 널려 있는 등 사람의 채취가 느껴지는 갈대집을 본 일행들은 "추운 겨울에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수 있을까?"라는 말만 주고 받았다.

이곳은 20여 채의 갈대집이 들어서 있는 갈대집 집단촌이었다(멀지 않은 인근에는 상하이 부자들의 호화 생태촌이 있기도 하다). 이곳 인근 강가에서는 다 자란 갈대를 채취하는 작업 모습과 채취한 갈대를 다시 작두로 가지런히 잘라 집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갈대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주민들이 정리 작업한 갈대들은 이곳의 갈대집을 보수하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일부는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 갈대문, 갈대지붕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듯했다.

초가지붕의 초가도 자주 갈아야 하고 억새지붕의 억새도 갈아야 하듯 갈대를 이용한 갈대집도 자주 손을 보아야 하기에 작업광경을 보니까 중국에는 갈대재료 수요가 아직도 많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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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고있는 갈대집과 총밍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갈대집 모형과 너무나 흡사하여 놀라웠다. ⓒ 유창하

보통 전통적 살림집은 주된 소재가 뭐냐에 따라 크게 분류된다. 자연소재인 집의 경우를 예를 들면 통나무로 지으면 통나무집, 흙으로 집을 지으면 흙집, 알라스카에서처럼 얼음으로 지은 집은 얼음집이라고 부른다.

또 지붕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억새로 지붕을 이어면 억새집, 굴피나무를 너와로 사용하면 굴피나무 너와집, 지붕에 초가를 이어 얹히면 초가집, 기와를 올리면 기와집이 된다.

흔히 그동안 한국에서 보아왔던 한국의 자연소재 전통집들은 흙이나 나무를 사용하여 벽체를 만들고 지붕은 억새, 너와, 초가 등을 사용하였지만. 이곳의 갈대집은 지붕과 벽, 바닥 등 모든 재료를 천연 갈대로 지은 살림집이어서 당혹스럽고 놀라웠다.

한국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보았던 너와집과 억새집은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너와집이고 억새집이었으며 낙안읍성의 초가지붕 흙집 또한 황토 흙을 이용하여 벽체를 만들고 지붕은 볏단을 엮어 만든 초가집이다.

그리고 몇 년 전 낙동강 하구 을숙도를 찾았을 때 을숙도에서 보았던 집도 대나무에 흙을 발라 지은 흙 벽체 집에다가 지붕만 을숙도의 갈대를 이엉으로 이어 올려놓은 갈대지붕 흙집이었다.

이곳의 갈대집은 정말로 갈대로만 지어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원시적 갈대집 그 모습 그대로였고 더구나 박제품인 보이기 위한 전통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집단지여서 더욱더 전통집으로서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멀티 첨단과 원시 시대가 동시에 공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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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로 지은 갈대집 20여 채가 모여 있는 사람이 사는 집단촌이다. ⓒ 유창하

멀리서 보니 갈대집과 이웃 갈대집을 연결한 기다란 줄에는 옷가지들이 한두 개 널려있었고 입구 문이 열린 갈대집 바닥에는 취사도구인 냄비 등이 어지럽게 이리저리 널려있었다.

다가가서 집 구조를 유심히 살펴보니 바깥 형태는 4~5인용 텐트모양을 하고 있었고 집 안쪽에는 보온력을 높이려고 하였는지 바닥과 벽면에 비닐이 쳐져 있었다. 어떻게 보니 꼭 여름철 텐트촌이 연상되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았다.

얇은 비닐을 문과 집 안쪽에 펼쳐 놓은 것 말고는 동팡밍주(東方明珠) 1층에 마련된 상하이역사박물관에서 보았던 흙토굴집 모형과 거의 흡사하여 천여 년 전 원시시대 선인들의 생활 집을 보는 듯하고 마치 원시시대로 거슬러 온듯하여 기분이 이상야릇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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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에서 낫으로 베어 갈대를 채취하고 있다. ⓒ 유창하

방파제가 설치된 강물가로 더 나가보니 이곳 갈대집 주민들이 갈대를 채취하는 광경이 보였다. 남성들은 낫으로 갈대를 채취하고 있었으며 채취한 갈대는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작업장으로 옮겨졌고 작두로 가지런하게 잘려 다발로 묶여졌다.

잘린 갈대묶음 다발은 아낙네들에 의해 한곳으로 차곡차곡 야적되었다. 이곳에서 작업된 갈대묶음들이 이곳에서 본 갈대이음 문짝과 같은 모양이어서 갈대집의 재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제법 많은 갈대짚단들이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다른 곳으로 팔기도 하는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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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채취된 갈대는 큰 작두로 다시 가지런히 자르는 공정을 거친다. ⓒ 유창하

같이 간 일행이 조심스럽게 사진촬영을 하자 갈대짚단을 나르던 아낙네가 일손을 멈추고 "뿌 파이(不拍)" 라고 말하며 언짢은 얼굴로 쳐다본다. 관광차림 이방인들의 카메라 세례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는 건 당연할 일일 것이다.

문명의 혜택과는 다소 떨어진 섬의 갈대숲에 살며 갈대를 중요 재원으로 삼아 나름의 방식으로 모여서 살아가는 '갈대집 사람들'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노라니 편리함 추구라는 도시문명의 허울 속에 가려버린 피폐한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지만 상하이라는 도시는 너무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는 곳이다. 넓은 도시 면적만큼이나(서울 면적의 10배 면적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번듯번듯한 도시고층빌딩을 조금 지나 뒷골목을 찾아가면 전통적 서민의 삶을 발견할 수 있었고, 멀티미디어 첨단의 도시 뒤를 돌아서 들여다보면 더욱 깊은 과거 역사 속으로 푹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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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밍현 관광 지도이다. 상하이 총밍현이 운영하는 인터넷에 나와 있다.

덧붙이는 글 | 유창하 기자는 다음카페 '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  http://cafe.daum.net/shanghaivillage 운영자이다. 중국 상하이의 문화, 사회, 경제 이야기를 전하며 상하이 거주 한국인의 살아가는 모습도 전한다.

덧붙이는 글 유창하 기자는 다음카페 '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  http://cafe.daum.net/shanghaivillage 운영자이다. 중국 상하이의 문화, 사회, 경제 이야기를 전하며 상하이 거주 한국인의 살아가는 모습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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