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새해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사라지길

등록 2005.12.29 17:44수정 2005.12.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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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일하게 된 것은 정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딸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의 일하는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까?' 많은 갈등이 있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남편의 회사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월급도 동결된 상황이라 마음속으로는 내내 직장을 구하고 싶었으나, 작은 아이가 너무 어려서 일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중에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보이는 큰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급식소에 다니게 된 것이다. 일반 직장보다 일찍 끝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기에는 좋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라는 곳이기에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학교 급식소라는 곳은 세상 사람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게 정말 막노동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렇게 힘이 드는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3년을 넘어 4년째 일하고 있다. 여기저기 아픈 곳은 많았지만 그런대로 내 몸이 그렇게 적응해 가고 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 것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을 감원을 해야 한단다. 내가 일하고 싶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이라는 것이 1년마다 재계약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1년마다 계약을 해야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비정규직이라고 한단다. 비정규직!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데 내가 지금에야 비로소 비정규직이라 깨닫게 된 것이 얼마나 내 자신이 무지하단 말인가.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해고가 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웬지 억울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누가 나가야 된단 말인가!

나는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지금 힘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헤매던 끝에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TV 에서나 한번쯤 봤을법한 그런 곳에 내 자신이 서 있게 된 것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니 내 가슴에 찬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그들이 외쳐대며 부르짖는 그것은 무엇인가?

나의 남편 같기도 하고, 나의 아버지 같아 보이기도 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를 위해 어쩌면 미래의 내 아이들을 위해 비정규직이라는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의 감원통보를 받은 후 4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모두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마음을 바꾸어 준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산업인력관리공단의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의 천막농성 싸움에 끝을 맺었다는 글을 보았다.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왠지 뭉클한 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그들에게서 용기와 인내를 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겨울이 오고 다시 새해가 되면 재계약으로 인하여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최소한 고용 보장은 해 주어야 일하는 사람도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라면 그 일은 최고의 결과를 기대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는 건 외나무 다리를 걷고 있는 느낌이 아닐까? 언제 떨어질지 몰라 항상 불안한 마음일테니 말이다. 새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추운 거리에 나와서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길 바란다.

지금껏 거리에서 내가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열심히 일하고, 일한만큼 대가를 받으며 평온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언제 있었던가 기억해 보는 날이 오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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