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없는 아내는 우리 집 '검색엔진'

"어디 있어?" 질문에 '척척' 답해요

등록 2005.12.29 17:33수정 2005.12.3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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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색연필 어디 있어?”
“엄마! 내 마스크 어디 있어?”
“엄마! 내 곰돌이 인형 어디 있어?”
“엄마! 내 스케치북 어디 있어?”
“엄마! 내 머리핀 어디 있어?”
“엄마! 내 보석상자 열쇠 어디 있어?”
“내 장난감 립스틱 어디 있어?”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엄마를 찾는 세린이.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못 찾을 경우 세린이는 이렇게 어김없이 엄마를 찾는다.

그때마다 아내는, “네 방 책상 위에 있잖아” “거실 책꽂이 위에 있잖아” “장난감 상자 안에 있잖아” 하면서 세린이의 목마른 갈증을 풀어 준다. 엄마가 알려 준 곳으로 가서 자기가 찾던 물건을 찾은 세린이는 기분이 좋아서인지 웃으면서 엄마 앞에 와서는 “엄마는 척척박사야 척척박사!” 하면서 아부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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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종이를 찾아 주고 있는 아내. 아이들에게 있어 엄마는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입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저에게도 있어 척척박사이니, 아내는 입력만 하면 답이 나오는 우리 집 ‘검색엔진’입니다. ⓒ 장희용

그런 세린이에게 승리의 V자를 그리는 아내, 하지만 나는 그런 아내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린이에게 무시 아닌 무시를 당하고 산다. 어쩌다가 엄마가 아닌 나한테 물어볼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부지런히 찾아보긴 하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아빠는 잘 못 찾겠다고 하면 이 녀석이 꼭 한 마디 하고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아빠는 그것도 몰라. 엄마는 다 아는데. 그치 엄마?”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기분 상한다는데, 요 녀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가 찾는 물건 못 찾기만 하면 “아빠는 그것도 몰라” 하면서 구박을 해대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고 퇴근 후 열심히 놀아주면 뭐하나? 결정적인 한 방으로 인기는 엄마가 다 독차지하는 것을.

그래서 하루는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 잠든 후에 아내에게 세린이가 자주 찾는 물건 목록을 적은 종이를 보여 주면서 어디 있는지 적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얄밉기가 놀부 저리 갈 정도인 아내의 말.

“싫어. 내가 그걸 왜 자기한테 알려 줘.”
“참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치사해도 상관없어. 호호호.”
“아, 됐어. 그까짓 것 가면 어디 가겠어 집 안에 있겠지 뭐. 치사해서 내가 찾는 다 찾아.”
“그러셔, 열심히 찾아보셔. 그게 뭐 쉬운 일인 줄 알아?”

아내의 치사함에 더 이상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서 저는 큰 방, 작은 방, 거실 등을 돌아다니며 목록에 적혀 있는 물건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저를 보면서 ‘어디, 찾을 수 있나 봐라’ 하는 표정의 얄미운 미소를 지으면서 저를 바라본다. 부지런히 돌아다닌 결과 내가 원하던 것을 다 찾았다. 의기양양해 진 나,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다 찾았지롱! 자기가 안 알려주면 내가 뭐 못 찾을 줄 알아?”
“잘됐네. 그럼 내일부터는 자기가 찾아서 줘.”
“걱정하지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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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지? 보석상자 열쇠를 찾는 세린이. 하지만 ‘검색엔진’인 엄마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지요. 놀고 난 뒤 정리정돈을 잘 안하니까 모르는 것이라면서. ⓒ 장희용

다음 날 아침, 세린이가 어김없이 머리 핀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저는 그런 세린이를 중간에 납치해 무릎에 앉히고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세린이에게 말했다.

“세린아 이리 와, 아빠가 찾아 줄게.”
“아빠는 모르잖아.”
“떼기! 아빠도 이젠 다 찾을 수 있어. 머리 핀?”

저는 당당하게 머리 핀이 들어 있는 상자를 찾아서는 세린이 앞에 '짠~' 하고 갖다 놓았다. 그리고는 이제부터는 엄마한테 물어 보지 말고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아빠도 이젠 다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헉,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린이의 충격적인 한 마디에 정신이 멍해졌다.

“아빠! 어제 했던 핑크색 머리핀은 어디 있어?”
“뭐? 어제 했던 핑크색 머리핀? 상자 안에 없어?”
“응, 없는데?”

다급히 세린이 손에서 상자를 빼앗아 안을 찾아보았지만 세린이 말대로 핑크색 머리핀은 없었다. 자꾸 보채는 세린이를 달래면서 여기저기 방과 거실의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핑크색 머리핀은 찾을 길이 없었다.

“세린아, 다른 머리핀 하면 안 될까? 이게 더 예쁜데….”
“싫어. 핑크색 할 거야”

끙~ 결국 저는 “거봐, 아빠는 모르잖아”라는 세린이의 말을 또 다시 들어야만 했다. 아빠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엄마에게 간 세린이에게 아내는 짠~ 하더니 식탁 위 수첩 밑에서 핑크색 머리핀을 찾아내서는 세린이에게 해 준다.

“아빠는 여기 있는 줄도 몰라, 그치 세린아?”
“응! 아빠는 그것도 몰라”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모녀지간에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혼잣말로 궁시렁을 떨어야만 했다.

'아, 진짜! 많고 많은 머리핀 중에 하필이면 어제 한 핑크색 머리 핀을 찾을 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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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둘째 녀석까지 저를 무시(?)합니다. 지금도 뭔가를 찾고 있기는 한데, 요 녀석도 결국에는 엄마한테 달려가더군요. 저는 아직 태민이가 말을 못하는 지라 뭘 원하는 지 도통 모르겠던데, 아내는 귀신 같이 맞추더군요. ⓒ 장희용

덧붙이는 글 | 아이들과 저한테 아내는 궁금한 것이 있어 입력하면 바로 바로 답을 주는 우리 집 ‘검색엔진’입니다. 하지만 ‘검색엔진’이라는 말 속에 아내의 집안 일 고생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니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성능은 비록 아내보다는 못할지라도 저도 ‘검색엔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아이들과 저한테 아내는 궁금한 것이 있어 입력하면 바로 바로 답을 주는 우리 집 ‘검색엔진’입니다. 하지만 ‘검색엔진’이라는 말 속에 아내의 집안 일 고생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니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성능은 비록 아내보다는 못할지라도 저도 ‘검색엔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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