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성공'과 '성숙'중 무엇을 원하는가

[서평] 카이 롬하르트의 <삶의 속도를 늦춰라>

등록 2005.12.29 18:24수정 2005.12.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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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늦춰라> 겉표지. ⓒ 황금비늘

흥미롭게도 카이 롬하르트의 책 <삶의 속도를 늦춰라>는 성공을 지향하는 사람, 성숙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제각각 '달리' 읽힐 만한 소지가 있는 책이다.

성공(success/achievement/win)지향의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인지상정이라고까지 확언하기도 한다. 사실 성공 자체는 나쁜 게 아닐 것이다. 성공은 가시적 성과물을 낸다. 그래서 분명해 보인다. 성공의 지점(목표)을 설정하여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니까 (능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기만 한다면) 간단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반면 성숙(growth)에는 목표지점 따위가 없다. 그저 과정마다, 매순간마다 깊어지고 넓어지고, 자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아는 사람이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고 하자. "학위논문 잘 쓰고 무사히 졸업해서 교수자리 잘 얻길 바래"라는 말보다 "공부하는 것을 맘껏 즐겨"라고 축하해준다면 성숙지향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롬하르트의 책 겉장을 보면 '삶을 진정한 성공으로 이끄는 여유의 심리학'이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있다. 우리나라 책에만 부제가 붙어있다. 겉장에서부터 어쩐지 성공지향의 냄새가 풍긴다. 물론 그 성공에 '진정한'이라는 한계를 지어놓았지만.

<삶의 속도를 늦춰라>에서 롬하르트는, 현대인들의 강박적 삶의 속도를 이렇게 진단한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면서 행위의 수백 가지 면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앉으면서 벌써 일어설 것을 생각하고, 일어서면 이미 가는 것을 생각하고, 가면서 벌써 도착한 것을 생각한다.(165쪽)

이 책을 읽는 성공지향의 사람들은 '삶의 속도를 늦추기'란 새 프로젝트가 눈앞에 놓여있음을 볼 것이다. 잃어버린 자신의 리듬을 되찾아 자연의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는 걸 알았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에게로 눈 돌릴 시간 없이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롬하르트가 새 프로젝트의 성공비법들로 제안한 것들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142쪽). 일의 선호도 순서를 없애라(186쪽). 전화기가 울릴 때 곧바로 받지 말고 세 번 정도 울릴 때까지 기다려라. 스스로에게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에게 한 번 웃고 숨을 가다듬어라(80쪽). 여가의 날을 정하라(201쪽) 등등….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라는 사뭇 명령조의 말들이 이어진다.

물론 다 좋은 제안이고 의미있지만, 이 제안들을 다 그대로 이행하려고 한다면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암기력보다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창의력 증진에 필요한 요인들을 암기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숙지향의 사람은 어떤 길을 갈까? 자기 자신이 느린 사람인지, 빠른 사람인지를 먼저 생각해볼 것이다. 그러면서 "느림이든 빠름이든 모든 속도의 이상화는 명령이며 불안을 동반한다"(179쪽)는 사실을 깨닫는다. 빠른 치타가 있는 반면 느린 달팽이도 있음을 이해한다. 빠름이 이상화된다고 하여 이 세상에서 달팽이를 제거(!)할 수 없고 제거해서도 안되며, 느림을 칭송한다 해서 잽싸게 달려가는 치타를 주저앉힐 수 없음도 간파한다.

책은, 정말로, 책에 쓰인 글자 자체의 뜻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래서, 글쓴이와 읽는이가 책을 통해 상호작용(interaction)한다고 하는가 보다.

롬하르트의 책 <삶의 속도를 늦춰라>은 '독자의 성향에 따라' 아주 다른 독후감을 산출한다. 따라서 이 책은 성공을 안내하는 지침일 수도 있고, 성공중심 사고방식을 접고 성숙을 탐색하는 명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잠깐! 롬하르트는 정작 무얼 의도하였을까?

삶의 속도를 늦춰라

카이 롬하르트 지음, 송소민 옮김,
황금비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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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 [해나(한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2022세종도서) 환경살림 80가지] 출간작가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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