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보약, 황금빛 맴도는 호박죽 드세요

<음식사냥 맛사냥 57> 숙취해소, 피부미용, 노화방지에 그만인 '호박죽'

등록 2005.12.29 19:00수정 2006.01.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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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보약, 호박죽 드세요 ⓒ 이종찬

너는 왜 그리 거친 손을 하고 있느냐
이 세상이 너를 마구 조롱하더냐
못 견디게 서럽고 가난한 나날들이
네 손등에 깊은 칼집 새기더냐
눈물방울로 구르던 슬픈 사랑 하나가
네 손 마디마디 파랗게 피멍 들이더냐

너는 왜 그리 깊은 주름살을 쥐고 있느냐
사람들이 네 발등 마구 찍더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파아란 연기가
네 굶주린 뱃속 걸레처럼 마구 쥐어짜더냐
다시 오마 떠난 그 사내의 긴 그림자가
네 앞에 아침햇살처럼 일렁거리더냐

너는 왜 그리 노랗게 시들고 있느냐
웽웽거리는 말벌이 네 목을 마구 조르더냐
간밤 훠이훠이 떨어진 별똥별들이
네 꽃술 뿌리까지 몽땅 뽑아내더냐
들숨 날숨으로 매단 그리움 하나가
날이 갈수록 자꾸 커지기만 하더냐 - 이소리, '애호박'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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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호박 ⓒ 이종찬


겨울철에 호박죽 먹지 않으면 중풍에 걸린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한낮이 되어도 영하로 맴도는 기온 땜에 온몸을 움츠린 채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다. 게다가 겨울철 불청객인 감기마저 찾아들어 하루 종일 콜록대는 기침도 모자라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려 주변 사람들 보기에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팽개치고 따뜻한 방안에 이불을 둘러쓴 채 그냥 드러누워 있을 수도 없다.

특히 연말을 맞아 줄을 잇는 망년회와 동창회, 회식 등에 참석해 푸짐하게 먹은 음식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구 마신 술 때문에 속도 더부룩하면서 몹시 쓰리다. 찬바람이 '쌩~' 소리를 내며 마른 나뭇가지를 스쳐가는 창밖을 바라보면 갑자기 으스스한 한기가 들면서 몸서리까지 쳐진다. 이럴 때 감기와 쓰린 속을 한꺼번에 씻어줄 그런 음식은 없을까. 있다. 호박죽이다.

호박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호박 같은 사람', '옥상에서 굴러 떨어진 호박' 등 얼굴이 참 못 생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박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못 나지도, 쓸모없지도 않다. 잘 익은 누우런 호박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정겹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은 물론 조리를 해서 먹으면 그야말로 사람에게 아주 좋은 보약음식 중의 황제 보약음식이라 할 수 있다.

오죽 호박죽의 효능이 뛰어났으면 "동짓날 호박죽을 먹지 않으면 중풍에 걸린다", "임신 중 손발이 자주 붓거나 요통이나 복통, 하혈이 있을 때는 호박죽을 끓여먹으면 금세 낫는다", "호박죽은 동지 음식, 삼계탕은 복날 음식", "겨울철에 호박죽을 먹지 않으면 동상에 걸린다"라는 옛말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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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호박을 못 생겼다고 했는가 ⓒ 이종찬


쥣빛 초가지붕 위에 뒹굴던 그 많은 호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하여, 사람 몸과 흙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죽어서 곧 흙이 되고, 그 흙에서 다시 사람이 태어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조상들은 늘상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제철에 나는 음식이 가장 영양가가 뛰어나며 맛도 좋고 사람 몸에도 아주 좋다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늦가을에 거두어들이는 늙은 호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겨울철에 죽을 쑤어먹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늦가을에 거두어들인 늙은 호박은 집에 두었다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죽을 쑤어먹어도, 달착지근하면서도 입속에서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리는 감칠맛이 뛰어나다.

어릴 때 내 어머니께서는 늦가을 초가지붕 위에 호박이 누우런 보름달처럼 탐스럽게 뒹굴어도 곧바로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누우런 호박이 쥣빛 초가지붕에 반쯤 파묻혀 금세라도 초가지붕을 폭삭 내려앉힐 것만 같아도 그냥 빙긋 웃으며 가슴 뿌듯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내 어머니께서는 호박잎이 다 시들고 무서리가 몇 번 내려야 호박을 따러 초가지붕 위에 올라갔다.

내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딴 호박을 안방 장롱 위에 무슨 장식품처럼 나란히 올려놓고는 틈만 나면 그 호박을 마른 행주로 곱게 닦곤 했다. 그리고 동지가 지날 무렵이면 호박 하나 꺼내 반으로 쪼개 불그스름한 속을 꺼낸 뒤 시커먼 가마솥에 찹쌀가루와 팥 등을 함께 넣어 황금빛 호박죽을 끓였다. 또한 호박 몇 개는 보물단지처럼 남겨두었다가 나와 형제들이 몸이 허약하다 싶으면 계절에 관계없이 호박죽을 끓여 먹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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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가루와 팥을 넣고 만든 황금빛 호박죽 ⓒ 이종찬


기침 감기, 폐암방지, 위장질환, 이뇨작용 등에 특히 좋은 호박죽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따르면 "호박은 성분이 고르고, 맛이 달며, 독이 없으면서 오장을 아주 편하게 한다"고 적혀있다. 이어 "호박은 산후의 혈진통을 낫게 하며, 이뇨작용이 뛰어나 임산부의 몸이 부은 것을 빠지게 하는 것은 물론 눈을 밝게 하고, 혼백을 밝게 한다"고 되어 있다.

농촌진흥청 농업기술정보 자료에 나와 있는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연구 결과에는 "오랜 흡연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많은 뉴저지 주의 남성 집단에서 황색의 호박은 폐암으로부터 인체를 지켜주는 세 가지 채소(호박, 당근, 고구마) 중의 하나라고 보고하였다"라고 나와 있다. 또한 호박에는 "항암작용이 뛰어난 성분인 베타카로틴이 기도와 콧속 정맥을 튼튼하게 해 감기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준다"고 적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호박에는 콩나물 뿌리에 많이 들어있다는 아스파라긴산이 듬뿍 들어 있어 숙취해소에도 그만이며, 호박에 들어 있는 비타민과 미네랄은 노화를 억제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한다. 그리고 호박에 들어있는 식이섬유소는 오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므로 여성들의 피부미용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늦가을에 거둔 서리 맞은 늙은 호박은 한의학에서도 부인병과 위장질환, 빈혈, 기침, 감기, 야맹증 치료 등에도 두루 쓰인다고 하니, 늙은 호박의 약효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늙은 호박을 찹쌀가루와 함께 죽으로 쑤어서 먹는 것이야말로 그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보약 중의 보약을 먹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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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에 파김치나 물김치를 곁들이면 더욱 맛이 좋다 ⓒ 이종찬


호박과 찹쌀가루는 궁합 중의 찰떡궁합

늙은 호박은 죽으로 조리했을 때 그 약효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이는 호박죽을 끓일 때 함께 넣는 찹쌀가루 때문이다.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지은 약학서 <본초강목>에 따르면 "찹쌀가루는 위와 비장을 따뜻하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하며 독을 풀어준다"고 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술을 마셨거나 찬 음식을 많이 먹은 뒤에 호박죽을 쑤어 먹으면 몸의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은 물론 설사까지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불어 호박죽을 끓일 때 팥이나 땅콩 등을 갈아 넣거나 끓인 호박죽 위에 밤이나 잣 등을 얹어먹으면 맛이 더욱 좋아진다. 게다가 팥과 땅콩 등 견과류에는 호박에 모자라는 필수 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있으므로 호박과 찰떡궁합이라 할 수 있다.

호박죽을 만들 때에는 무엇보다도 서리 맞은 늙은 호박을 잘 손질하는 것이 맛난 호박죽을 끓이는 지름길이다. 호박죽을 끓이기 위해서는 먼저 늙은 호박을 반으로 잘라야 하는데, 호박껍질이 아주 단단하므로 쉬이 잘리지 않는다. 이때에는 칼끝을 세워 호박 꼭지 부분에 깊숙이 꽂은 뒤 아래로 힘을 주면서 천천히 자르면 된다.

이어 반으로 자른 호박 속의 씨를 모두 파낸 뒤 숟가락을 이용해 섬유질까지 말끔하게 걷어낸다. 그리고 호박을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낸 뒤 부엌칼로 비껴 썰어내듯 껍질을 벗기고 냄비에 넣어 물을 부은 뒤 센 불에서 익혀 주걱으로 곱게 으깨면 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호박죽을 끓일 때 팥을 함께 넣으면 색깔이 검어지므로 팥은 따로 삶은 뒤 마지막에 넣어야 황금빛 감도는 맛깔스런 호박죽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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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호박죽 먹지 않으면 중풍에 걸린다 ⓒ 이종찬

한 해를 보내는 길목의 날씨가 매섭게 춥다. 그렇잖아도 잦은 모임에 술자리를 피하기 어려운 때에 날씨마저 매섭게 춥다 보니 추위를 이기기 위해 뜨거운 국물과 독한 술을 자주 마시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기 쉬운 때다. 이러한 때에는 달착지근하게 술술 넘어가면서도 건강에 아주 좋은 호박죽을 끓여보자. 그리하여 호박죽을 먹고 병술년 새해 아침 호박처럼 탐스럽게 떠오르는 해를 가슴 깊숙이 품어보자.

연말연시, 쓰린 속 확 풀어주는 호박죽 드세요
황금빛 호박죽 만들려면 팥 따로 삶은 뒤 넣어야

▲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게 살살 넘어가는 호박죽
ⓒ이종찬

재료/ 늙은 호박, 찹쌀가루, 팥, 설탕, 소금, 잣, 호두, 땅콩.

1. 늙은 호박은 반으로 잘라 속의 씨를 모두 파낸 뒤 껍질을 깎아내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찹쌀가루에 따뜻한 물을 부어가며 곱게 개면서 묽은 반죽을 만든다.

3. 팥은 깨끗이 씻어 물에 2~30분 정도 불렸다가 냄비에 담아 센 불에서 약간 설익도록 삶아 낸다.

4. 호박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부은 뒤 센 불에서 포옥 삶아 주걱으로 곱게 으깬다. 이때 믹서에 물을 반 컵 정도 넣고 곱게 갈아줘도 된다.

5. 잘 으깬 호박에 물을 적당량 붓고 중간 불에서 끓이다가 으깬 호박이 걸쭉해지면 묽은 찹쌀가루 반죽을 넣은 뒤 나무주걱으로 골고루 저어가면서 끓인다.

6. 으깬 호박과 찹쌀이 골고루 섞여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오를 때면 약간 설익도록 삶아둔 팥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약한 불에서 은근히 끓인다.

7. 호박죽이 다 끓으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그릇에 퍼서 잣이나 호두, 땅콩을 얹고 물김치나 파김치를 곁들여 상에 차려낸다.

※맛 더하기/ 찹쌀가루를 묽게 반죽할 때 잣가루나, 호두, 땅콩가루를 넣으면 달착지근하고 고소한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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