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금계천 속으로 물은 흐르고

[바위나리와 떠난 여행 25]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등록 2005.12.29 19:28수정 2005.12.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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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청곡리,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입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산골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어릴 때는 작은 마을이란 느낌이 없었는데 나이 들어 객지 밥 먹으며 사는 게 몸에 밴 지금은 마냥 작게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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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고향 마을 안산을 휘돌아 흐르는 내가 금계천입니다. 지금은 수량도 형편 없이 줄어 가물 무렵이면 개울도 아닌 도랑에 가까울 정도로 변하지만 어린 시절 아이들에겐 더없는 놀이터였습니다.

봄이면 버드나무 가지 꺾어 버들피리 불었고, 여름이면 온몸이 까맣게 변하도록 물장구치고 놀았습니다. 가을 개울에 족대 들고 뛰어들어 돌멩이 들추며 첨벙이다 보면 쉬리, 미꾸라지, 피라미 등이 서너 사발은 족히 잡혔습니다. 겨울이면 꽁꽁 언 물 위에서 썰매를 탔습니다.

꽁꽁 언 금계천 위로 하얗게 눈이 덮였습니다. 햇살이 퍼질 무렵이면 하나 둘 썰매 둘러메고 개울로 모여 왁자지껄 소란스럽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썰매 타며 놀만한 아이들이 농촌에 머물러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운탕 생각이 나면 떡메에 작살 둘러메고 얼어붙은 개울로 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얼어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입니다. 얼음 위에서 떡메를 들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얼음 위를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칩니다. 그러면 물고기들은 영락없이 정신을 잃고 둥둥 떠내려갑니다. 물고기가 떠내려 오는 길목을 찾아 얼음을 깨고 기다려 건져 올립니다.

얼음 속을 눈여겨보면 개울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 뚝지나 모래무지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엔 떡메로 조심스럽게 얼음에 구멍을 내어 작살로 찔러 잡아 올립니다.

떡메 들고 얼음 속 물고기를 잡으러 오는 사람은 지금은 없습니다. 떡메도 없고 떡메 휘둘러 물고기 잡을 만한 기력을 가진 사람도 농촌엔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젠 죽을 날만 기다린다며 힘겨운 노동에 지친 몸으로 겨울을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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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겨울 금계천에서 인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낙엽 진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 소리만 있고, 적막 그 자체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겨울 금계천 위를 걸었습니다. 함께 가자며 발자국이 뒤를 졸졸 따라옵니다.

얼어붙은 금계천 속으로 물이 흐릅니다. 얼음에 갇혀 답답한지 여기저기에 숨구멍이 있습니다. 어릴 때 썰매 타다 저런 숨구멍에 풍덩 빠져 옷을 모두 버린 적도 있습니다. 집에 가면 야단맞을 게 걱정이 돼서 쇠똥에 나뭇가지 모아다 불을 피웁니다. 썰매 타던 녀석들이 불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듭니다. 젖은 양말과 옷에서는 눈처럼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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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얼음 위에서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동네 아줌마들이 샘터에 모여앉아 빨래를 합니다.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빠는 아줌마들 사이에 엄마도 끼어 앉았습니다. 행여 엄마가 옷 적신 걸 눈치라도 챌까 잰걸음으로 집으로 갔습니다.

얼어붙은 금계천 속으로 흐르는 게 물만은 아닙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세월도 흐릅니다. 그렇게 2005년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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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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