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일으킨 2천만원의 기적, 비법을 알아내다

[인터뷰] '2005 올해의 뉴스게릴라' 뉴스부문 수상자 김혜원

등록 2005.12.30 10:50수정 2005.12.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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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올해의 뉴스게릴라 김혜원.
이미 지난해에 '2004 올해의 뉴스게릴라 사는 이야기' 부문을 수상한 경력이 있지만, 나는 그가 이 상을 또다시 받게 될 것이라고 지난 10월 마지막 날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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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 이정희

막막한 병원비 때문에 유방암 말기의 외국인 아내 아멜리아를 고향 필리핀으로 보내야만 했던 한 가족의 눈물겨운 사연을 취재한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고 싶었어요>가 걸렸을 때였다. 당시 이 기사는 상당기간 메인 톱에 머물며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2천여만 원 이상의 성금을 모아내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멜리아를 다시 국내로 데려와 살려냈다.

이렇듯 생활 주변에서 뉴스를 뽑아내는 탁월한 감각에 비쳐볼 때 그의 수상을 예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뽑힌 부분이 '사는 이야기 부문'이 아니라 '뉴스부문'이란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인터뷰 약속장소로 향했다.

동네 아줌마의 솔직하고 생산적인 수다, 뉴스로 거듭나다

"아멜리아의 수술경과도 좋고 가족들의 밝아진 얼굴을 보니 너무 기뻐요.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세상에 온정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감사했고요, 제 자신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란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예상대로 김 기자의 첫마디는 아멜리아로 시작되었다. 새해로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김혜원 기자는 비슷한 나이의 남편과 대학생 큰아들, 수능을 치른 막내아들, 시어머니와 함께 여동생 아이까지 맡아 키워주며 사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찜질방에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의 아줌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시민기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언론계(?) 곳곳에서 이른바 스타 시민기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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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선녀, 신근선-아멜리아 부부와 함께. ⓒ 오마이뉴스 전관석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첫 잉걸기사를 생산한 이래로 3년간 내리 220여 꼭지의 기사를 올렸고 그 중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올라 보고픈 선망의 대상이 되는 메인톱 기사만도 80여 꼭지에 이른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한 아멜리아 기사 이외에도 네티즌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기사가 한두 건이 아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듯 스타시민기자의 반열에 오르게 했을까?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 재주가 있는 것일까? 취재원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는 것일까? 혹시 <오마이뉴스>에서 대표 시민기자 하나 키우려고 우리 몰래 데려다가 기자과외(?)라도 시킨 것은 아닐까? 질투어린 궁금증이 발동했다.

"비결이요? 그런 것 없어요. 그냥 동네 아줌마들과의 수다가 곧 기사가 되는 것이죠. 굳이 비결이라면 그냥 반상회 수준의 시사거리, 주방에서 바라본 9시뉴스를 찾는다는 심정으로 주변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기사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 약간 불쾌해지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저 교과서 열심히 보면서 학교공부 충실히 했을 뿐"이라던 수능시험전국수석의 대답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기사 생산과정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 메모장 + 약간의 깨어있음

"대부분의 언론들이 남성 중심적이에요. 정치 사회 경제 등 시사성이 있는 기사는 주부들 입장에서는 한참 공부해서 신문을 봐야 할 정도거든요. 주부들이 보는 시사는 달라요. 엄마들의 시사성은 장바구니와 입시 등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니 모든 뉴스는 우리네 사는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바로 사는 이야기가 정치기사가 되고 사회이슈가 되고 교육뉴스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쉽게 풀어쓰는 게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더라고요."

사는 이야기에서 뽑아낸 생생한 문제점과 궁금증이 뉴스가 되고 그 뉴스가 다시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 때 수준 높은 기사가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는 생활과 시사의 경계를 허무는 그만의 노하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기사쓰기는 어떻게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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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와 수다 떨다가 메모하고, 그걸 기사로 만들려고 노력하죠." ⓒ 이정희

특별한 것이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김혜원 기자를 열심히 설득해 밝혀낸 기사 작성 경로는 이렇다. 혹시나 '올해의 뉴스게릴라'를 꿈꾸는 시민기자들은 밑줄 '쫙', 돼지꼬리 세 개씩은 그려가며 읽어보시길.

①기사 헌팅(대부분 주변 친지들과, 수다동호회(?) 아줌마들에게서 나옴, 즉각적인 메모가 관건) → ②대충 제목부터 잡아놓고 컴퓨터로 달려가 초벌기사를 작성하여 저장해둠(노트북이 없어서 대부분 집에 돌아와서 작업함) → ③시의성을 고려하여 저장해둔 기사를 뽑아 취재원을 만나고 덧붙여서 사실정리(취재원의 생생한 목소리가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초벌기사의 방향이 확 바뀌기 일쑤임) → ④기사출고 전 최종정리(자신의 수준에서 기사작성-현학적인 말, 어려운 말 배제) → ⑤출고 → ⑥독자들 반응 피드백

"시민기자로서 기사를 쓰면서 무관심하던 사회현상에 대해 꼼꼼히 보게 되었어요. 제 스스로 그냥 엄마, 전업주부라는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다시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때론 쪽지나 댓글 등으로 개인적 항의에 시달릴 때는 기자라고 하는 게 쉬운 게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도 깊게 들고요."

입시 노하우도 없고 실력도 검증된 바 없는, 명색만 고교 선생인 내게 올해 수능을 치른 자신의 아들에 대한 진로상담을 진지하게 해오는 탓에 인터뷰 말미에는 오히려 내가 그의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아줌마 시민기자' '스타 시민기자' '올해의 뉴스게릴라' 김혜원 기자의 참모습인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왜 수상부문이 사는 이야기 부문이 아니고 뉴스 부문인 것 같냐고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생활과 뉴스는 한 몸"이라는 그의 말 한마디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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