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일출만 어디 장관이더냐

팔공산에서의 신년 해맞이

등록 2005.12.30 12:24수정 2006.01.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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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 팔공산의 일출 해뜨기 전 ⓒ 오정희

해돋이하면, 사람들은 의례 타오르듯이 떠오르는 바다의 일출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년엔 전국의 유명하다는 해돋이 현장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하죠. 저도 새해 일출 보러 여기저기 많이 다녀 보았습니다. 새해의 첫날을 일출을 보며 뭔가 다짐하고 계획해본다는 것이 의미있고 좋기는 했지만 반면 사람들에게 치어 피곤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새해 일출을 보러 대구에서 2시간 남짓 거리인 호미곶으로 자주 갔었는데, 어떨 땐 하도 교통혼란이 심해 가는 도중에 벌써 해가 떠버려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죠. 아마도 해돋이 보러 가시는 분들이 심심찮게 경험하는 에피소드일 듯합니다. 그래서 2005년의 첫날에는 멀리 바다까지 일출보러 가지 말고 가까운 팔공산에 가서 떠오르는 해님을 보며 새해 첫날을 맞이하자고 가족끼리 의견을 모았죠.

사실 새해 첫날 산에서 일출을 맞는 경험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군요. 지금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한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첫날을 망년회 겸 신년회로 가족끼리 모여 조촐하게 파티를 한 후 새벽에 부리나케 모두 같이 팔공산 갓바위로 해돋이를 보러갔었죠. 거의 날밤을 세우다시피하며 칼바람에 대항하여 온몸을 무장한 후 어두컴컴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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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 팔공산의 일출 ⓒ 오정희

서로 손잡아 이끌어주고 밀어주고 그렇게 올라가면서 사실 웬 생고생인가 싶은 생각 없지 않았지만, 갓바위에 도착하여 이윽고 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무렵 곳곳에서 터지는 탄성, 그리고 속삭임들. 아, 그 감동이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더군요. 그때만 해도 마음으로만 해님을 담을 줄 알았지 카메라에 담을 생각은 못했던지라 아쉽게도 자료 속에서 그날의 흔적을 찾을 순 없네요.

갓바위에서 일출을 보고 하산하는 도중에 절에 들러 얻어먹던 공양음식. 사실 짜기만 하고 맛도 없었건만 꼭두새벽부터 등산한 후였던지라 그런지 달게 먹었건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는 급기야 힘들어서 남편에게 업혀서 내려왔던 푸근한 기억도 있네요. 그때 그 넓다란 등판, 따뜻한 체온으로 인해 결혼에 골인했는지도.

암튼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더 지나 다시 팔공산으로 해돋이를 보러 간다는 것이 참 설레더군요. 근데 예전처럼 갓바위로 갈까 하다가 이번엔 갓바위 만큼이나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다는 동봉으로 해맞이를 갔었죠. 갓바위보다는 올라가는 거리가 좀 더 되었지만, 같은 목적을 가진 등산객들로 인해 어둠이 전혀 무섭지 않았고 오가는 시간들이 참 정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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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팔공산 동봉에서의 일출 ⓒ 오정희

이름난 해돋이 현장에서의 체험을 떠올려보면, 시끌벅적하게 해맞이를 하느라 사실 장엄한 기분은 잠시였던 것 같아요. 근데 산에서 맞는 해돋이는 소박한 듯싶지만 감동의 크기는 훨씬 크더군요. 등산하면서 몸이 데워진 탓인지 추위도 덜한 것 같구요. 뭐 겨울이다 보니 사실 쨍한 추위가 왜 없겠습니까만, 두 번의 기억이 모두 추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마음에 기록되어있네요. 외려 바다에서는 늘 추위에 오돌오돌 떨었던 것도 같구요.

암튼 먼 듯 가까운 듯 어둠을 응시하노라면 어느새 천지창조를 의미하는 듯한 빨간 해가 구름을 뚫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품어두었던 가장 큰 소망 하나를 읊조리게 되죠. 뭔가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마음에 밀려오고 숙연해지는 그 체험. 그 짧은 순간의 느낌이 어쩌면 1년 동안의 기(氣)를 다 채워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동봉 해돋이에선 마침 디카를 가지고 갔던지라 담아두었던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둠 속에서 수줍은 듯 조금씩 고개를 내밀어 마침내 동그랗게 모양을 드러내던 햇님에 대한 감격이 다시금 되살아나네요. 어쩌면 그 감동 덕분에 정말 새해의 발걸음을 희망차게 재촉하였던 것도 같아요. 그러니 춥다고 피곤하다고 어찌 이불속에만 있을 수 있겠어요.

다가오는 신년에도 팔공산으로 해맞이를 갈까 합니다. 바다에서의 일출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감격적인 산에서의 해맞이! 올해는 또 어떤 감동을 선물로 받을까요?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이 마치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학생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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