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좌우 논쟁으로 싸우는 국가 없다"

[인터뷰]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② "나는 온건한 보수"

등록 2005.12.30 10:08수정 2005.12.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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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서울시장 인터뷰가 29일 오전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 서울시장은 최근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으로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사학법 개정 논란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적극적인 해법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2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여당이 사학법을 시행령 가지고 보완하겠다고 한다는데, 보완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문제를 인정한 것"이라며 "재개정을 한다던가 해서 (야당이 돌아올) 명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참여정부가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민주적 대화 없이 (사학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비난했다.

반면 예산안 처리 등 산적한 현안을 두고 '장외투쟁'을 이끌고 있는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이나 지지의 말도 하지 않았다.

국가정체성 논란이나 소모적 색깔논쟁을 그만둬야 한다는 점도 여러차례 강조했다. 이 시장은 한나라당 일부와 극우단체가 제기하는 색깔론에 대해 "강정구 교수와 같이 불필요한 자극을 주니까 극우보수 사람들이 가만 있으면 큰일 날 것 같다고 해서 자꾸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나라든 극우가 있지만 사회를 지배할 수 없는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먼저 자극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시장은 특히 8·31 부동산 대책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참여정부가 과도한 시장개입을 하고 있으며 경제정책도 "감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시장은 "정부가 국토 전체를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고 있는데 8·31 조치를 하면 뭐하느냐"며 "혁신도시, 신도시 하면서 공영개발 하고 보상금 주면 그 돈은 다시 부동산투기로 돌아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가 한쪽에서는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쓰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투기를 조장하는 모순된 정책을 쓴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경제는 감정적으로 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해서는 안된다"며 "(돈) 있는 사람들 좀 누르면 (돈)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경제정책을) 한다면 굉장한 부작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참여정부, 경제를 감정적·정치적 목적으로 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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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사학법 개정 때문에 한나라당이 장외투쟁 중인데 예산안 처리나 폭설피해 등 현안이 많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고 강경투쟁 일변도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여당이) 사학법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실망했다. 연말에 처리해야 할 법안 우선 순위가 사학법이었겠나. 한나라당은 상생정치를 한다며 몇 개 개혁법안을 통과하는데 협조도 했다. 하지만 여당은 한나라당을 제1 야당 대우도 안해줬다는 게 문제다. 법안 자체도 문제지만 통과 과정도 문제다. 여당이 연말에 잘못된 결과를 만들었다고 본다."

- 박근혜 대표가 장외투쟁을 계속하는 것은 옳다고 보나.
"정치적 행위니까…. 옛날 민주화운동을 한 노 대통령이 야당 할 때는 더 했다. 우리 속담에 '된 시집 산 며느리가 시어머니 되면 더하다'고 했다. 참여정부가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민주적 대화 없이 날치기하는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여당이 (법안 통과시키기 위해) 단상을 차지하는 것도 옛날에는 보지 못했다.

상생정치 하려면 여당은 야당이 다시 들어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여당은 사학법을 시행령 가지고 보완하겠다고 한다는데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재개정을 한다던가 해서 (야당이 돌아올) 명분을 줘야 한다. 경찰법도 2월 임시국회에서 개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공포한다고 하는데 보기 좋지 않다. 개정할 걸 뭐하러 통과시키나."

- 박 대표가 등원하겠다는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나.
"여당이 문을 열어줘야 한다. 힘을 가진 사람이 문을 열어줘야지…. 정치 도리를 서로 지키는 게 좋다. 연말 국민들이 힘들 때 정치가 이런 식이면 실망만 준다."

"사학법, 시행령으로 보완? 여당 스스로 문제 인정한 것"

- 황우석 교수와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는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나.
"안타깝다. 호형호제 할만한 인연을 가진 것은 아니고, 국가적으로 큰 기대를 했던 사람이었고 서울대가 서울시 안에 있으니까 방문하고 초청 받는 관계다. 이번 일은 너무 기대했다가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 국민 전체가 패닉(공황)에 빠졌다. 잘못된 것은 덮으려 하지 말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외국에서 볼 때 한국이 잘못을 과감하게 인정한다는 평가도 받았으면 좋겠다.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

- '황우석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지혜가 필요한데.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자체가 윤리상 문제가 제기됐다. 다른 나라처럼 성체줄기세포 등 다방면의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한쪽(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만 치우치는 정부 정책도 시정돼야 한다. 정부가 황우석 박사 잘해서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판단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에 치우쳐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안줬다. 바이오 분야에 기왕에 지원한 게 있고 결과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 여러 분야를 균형있게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 누가 책임져야 한다고 보나.
"서울대에서 조사하고 있으니까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앞질러서 누구 책임이라고 하기 보다는, 과학적 시스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정부가 돈을 지원하면 그 결과를 평가해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번에는 그 시스템이 작동 안한 것 같다. 황 교수 연구에 (정부가) 깊숙히 개입을 많이 한 것 같다. 청와대도 여러 군데 연관돼 있다고 하는데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 없다. 서울대 조사가 끝나면 지원 시스템도 강화했으면 한다."

- 최근 인혁당사건 재심 결정이 있었다. 지난 64년 이 시장도 내란선동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무엇보다 생명이 제일 귀중하다. 국가의 존재 가치나 가장 중요한 의무도 국민 생명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인혁당 사건은 너무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우선 재판 결과를 지켜보고, 그 결과에 따라 반성해야 할 곳이 많다. 정치권, 사법권, 정부의 정보관계 기관 등…. 재판결과가 나오면 한 단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도 미래에 큰 역사적 참고가 되지 않겠나."

"강정구 교수 같은 사람이 극우보수에 불필요한 자극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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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 시장은 지금은 이미 진보, 보수의 이념을 뛰어넘은 시대라고 말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 좌표는?
"온건한 보수다.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조금 잘못 해석돼 있다. 보수는 우파이고 진보는 좌파, 보수는 수구고 진보는 개혁적이라는 식으로 이분법 돼있다. 보수도 매우 개혁적인 보수가 있고 진보도 수구적인 진보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나는 진보 쪽으로 많이 가 있다. 좌익이나 사회주의 이념에 젖은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 나온다. 아마 내 일 자체를 개혁적인 측면에서 평가한 것 같다. 학생운동권일 때 반미도 하고 반일도 했지만, 세상에 나와 사회 현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확실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 최근 국가정체성 논쟁에 대해서도 너무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는데.
"21세기 지구상에서 좌우이념 논쟁으로 싸우는 국가는 거의 없다. 우리도 6.25를 겪으면서 좌우가 갈라졌다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남쪽이 우월한 입장에 서게 됐다. 정체성이 이미 확립돼 있다. 그러다 갑자기 강정구 같은 교수들이 나와 새삼스럽게 좌파적 논쟁을 제기하는데 소모적이다. 그런 논쟁을 뛰어넘어 국민 행복을 추구하는 길로 가야 하지 않겠나. 갈등과 분열이 많으니까 국가가 한 걸음 나가는데도 힘이 든다."

- 지금도 색깔론을 제기하는 사람들 있는데 지양해야 될 자세 아닌가.
"극우나 극좌파가 아주 소수는 있을 수 있다. 강정구 교수와 같이 불필요한 자극을 주니까 극우보수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것 같다고 자꾸 나오는 것 같다. 어느 나라든 극우가 있다. 하지만 사회를 지배할 수 없는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금은 온건보수쪽 국민들이 많다. 먼저 자극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더이상 그 사람들(극우와 극좌)의 활동 무대가 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청계천복원사업 추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청계천 복원을 마무리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청계천 공구상들을 송파구로 옮겨 (공구)유통단지로 만드는데 장사가 잘 안되지 않을까 고민도 하고, 송파구청이 받아들여줄까 걱정했다. 그런데 청계천 상인들이 (옮겨가는데) 찬성하고 상인 대표가 감사패를 줄 때는 너무 감동했다. 요즘은 조금만 이해관계가 얽혀도 반대해서 국책 사업조차 못하지 않느냐. 청계천복원사업도 이해를 달리하는 상인들이 20만명은 넘을 것이다. 한푼 보상도 없이 모두 지지했다. 그래서 금년 재야의 종이 울릴 때까지 길거리에서 누구를 만나든 고맙다는 말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청계천복원은 시민과 당사자들의 공로가 70%다."

- 참여정부가 내놓은 8.31 부동산 대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기본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국가 정책이 강남이라는 특정 구(區)에 일어나는 현상만 가지고 전체를 규제하면 잘 맞지 않는 수가 있다. 서울만 해도 강남과 강북이 다르다. 강남을 규제하다 보면 강북에 대한 규제가 된다. 이 때문에 좀더 세련된 정책을 쓰자고 비판했다.

8.31 조치를 하면 뭐하나. 정부가 국토 전체를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고 있는데. 혁신도시, 신도시 하면서 공영개발 하고 보상금을 주면 그 돈은 다시 부동산투기로 돌아간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쓰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투기를 조장하는 모순된 정책을 쓴다. 경제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정부가 걱정스럽다."

"시장이 나서서 각 구마다 뒷골목 쓰레기 못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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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부동산 투기를 잡고 국가균형발전을 꾀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다고 보나.
"민간성장을 억제할 필요가 없다. 건축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있어야 서민경기가 산다. 민간이 자연스럽게 일하게 만들고 거기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과감하게 세수로만 받아주면 된다. 비정상적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세금을 걷어들이면 된다.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은 얼마 안된다. 이들 때문에 선의의 부동산 거래자까지 투기로 봐서 억제하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경제는 감정적으로 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해서는 안된다. (돈) 있는 사람들 좀 누르면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한다면 굉장한 부작용이 올 수 있다."

- 정부의 간섭이 필요 없다는 뜻인가.
"내가 16개 시·도협의회장인데 전라남도 등 몇 개 지역은 재정 자립도가 형편없다. 자립도가 낮으니까 정부 지원을 받아야 되고, 정부 지원을 받으니까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이미 지방자치제 시대가 왔다. 세수가 증대돼 재정자립도를 올려주면 (각 지자체가) 알아서 잘 할 수 있다. 재정자립도가 20~30% 밖에 안되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정부가 모든 일에 나설 필요는 없다. 내가 서울시장이지만, 각 지역 구마다 뒷골목 쓰레기 치우는 일은 각 구청장이나 동장이 더 잘 안다. 그런 일은 구청장이나 동장이 해야지 시장이 나서서 하면 돈만 쓰고 효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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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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