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봉쇄는 기민하게, 연구관리는 안이하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황우석 파문에서 정부가 했던 일

등록 2005.12.30 09:31수정 2005.12.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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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응이 기민하고 집요하다.

<한겨레>의 오늘자 보도에 따르면 과학기술부 담당자가 서울대학교 대학본부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를 과기부에 먼저 알리고 발표는 적절한 시점을 택해 늦춰달라는 요청이었다고 한다. 말이 좋아 '요청'이지 사실상 '압력'이었다는 게 <한겨레>의 보도다.

과기부가 서울대에 전화를 건 시점은 1차 조사결과 발표가 생방송으로 중계된 뒤였다고 한다. 조사 초기 단계에 물길을 잡으려 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과기부는 '국민의 혼란'을 운위했다. "테라토마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중간발표를 할 경우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과기부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종 결과만을 발표하기로 한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의 방침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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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과천 정부청사에서 최석식 과학기술부 차관이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에 대해 정부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민의 혼란 우려? 속마음은 '정치적 부담 줄이기'

퍽 진지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대 조사위가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보다 늦게 조사결과를 내놓을 경우 서울대와 한국 과학계가 입게 될 신뢰 상실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빨리 내놓음으로써 한국 과학계의 자정능력을 보여줘야 다른 한국 과학자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절박성이 깔려있었다.

이걸 모를 리 없는 과기부가 '국민의 혼란'을 운위했다. 넌센스다. 기실 진짜 동기는 다른 데 있다.

<한겨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과기부는 서울대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는 것이 맞느냐. 그렇다면 예산을 헛되이 쓴 것이 되는데 정부가 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실상은 이렇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빚어졌는데도 정부의 관심은 정치적 부담 최소화에 맞춰져 있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 PD수첩 >과 황우석 교수의 DNA 검사 합의·실행 과정에 '심판관'으로 참여한 김형태 변호사는 청와대가 수십 차례에 걸쳐 MBC 고위층에 전화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화 목적은 물론 '방송 불가'를 설득하려는 것이었다.

'연구실에 있어야할 사람'의 대중스타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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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서울 순화동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열린 황우석 교수 연구지원 종합대책 회의가 끝난 뒤 황우석 교수와 악수하며 활짝웃고 있는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왼쪽). ⓒ 연합뉴스 한상균

정부의 대응이 기민하고 집요했다는 평가는 이래서 나온다. 딱 하나의 사안, 즉 파문 봉쇄 또는 축소를 위해서만 기민하고 집요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연구 관리에 있어서는 안이함과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황우석 교수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복기하면 이랬다. 올해 1월 9일 줄기세포가 곰팡이에 오염돼 사멸하는 일이 발생하자 황우석 교수는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한 행사에서 조우한 오명 과기부 장관에게도 구두로 전했다.

하지만 청와대나 과기부 모두 손놓고 있었다. 박기영 보좌관은 다른 연구실 확보 사실을 철썩같이 믿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명 장관이 뭐 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이것이 후손들에게 먹고 살 길을 열어준다는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정책의 실체다. 과정이야 어떻든 성과만 나오면, 특히 그 성과가 정부 임기 안에 나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식의 안이하고 대책없는 처신으로 일관했다.

이렇게 놓고보니 기민하고 집요한 대응과 안이하고 무책임한 관리 행태엔 공통점이 있다. 국가운영을 위한 전략적 관점보다는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적 관점을 우선시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눈물을 흘리며 했다는 말, 즉 "연구실에 있어야 할 사람이…"가 뜻하는 바가 뭔지 감이 잡힌다. 연구실에 있어야 할 과학자, 그것도 국가 운명을 걸고 정부가 거액을 지원하는 핵심 연구사업의 책임자가 비과학적인 영역을 들락거리며 대중스타같은 행보를 보이는 데도 정부가 그저 지켜만 본 이유가 또렷해진다.

황우석 교수가 '뜨면 뜰수록' 정부의 성과도도 비례해서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금배지 달 뻔한 황 교수... 정부·정치권 역할 규명해야

어디 정부 뿐이겠는가. 정치권도 다를 바 없다.

<중앙일보>는 오늘자에서 황우석 교수가 국회의원이 될 뻔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해 총선 몇 달 전 황우석 교수와 절친한 중진 정치인 Q씨가 다리를 놓고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 등이 동의해 황우석 교수가 비례대표를 맡기로 했다는 게 <중앙일보>의 보도다. 하지만 같은 해 2월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싣자 한나라당이 비례대표 공천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연구에 전념하도록 해야지 괜히 정치권에 끌어들였다가 연구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당이 비난 받을 것이란 우려" 때문에 한나라당이 중도 포기하기는 했지만 '복제 소'로 이미 스타가 된 황우석 교수의 명성을 정치에 활용하려 한 점은 분명하다.

최종 단계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을 반드시 규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우석 파문은 단순한 '과학사건'만도, '국가회계사건'만도 아니다. 오히려 농도짙은 '정치사건'이기도 한 게 바로 황우석 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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