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되기 전 홍콩거리를 청소하는 농민들

[홍콩 9박8일의 기록 9]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구금

등록 2005.12.30 15:36수정 2005.12.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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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한 홍콩에서 9박 10일. 더 이상 가슴에 묻어둘 수 없다. 눈물과 웃음이, 투쟁과 놀이가, 세계 민중들과 어깨 걸고 진행된 홍콩의 생생한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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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연행을 시도하자 인도 참가단이 장미꽃을 들고 경찰에게 전달한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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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부터 연행을 시작했다 ⓒ 오도엽

12월 18일 새벽 1시, 거리에 어깨동무를 하고 누워있는 전국여성농민회 소속 여성농민부터 연행하기 시작한다. 구호를 외치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4명의 경찰이 붙어 한 명씩 떼어 연행을 한다. '내 몸을 만지지 마라'는 외침과 울음소리가 홍콩의 거리에 울린다.

연행을 각오하고 드러누워 있지만 연행되는 일도 쉽지 않았다. 2~30분에 15명씩만 대오에서 떼어 내 연행을 한다. 동은 텄지만 연행된 농민은 300명 남짓. 아직 오백 명 이상이 밤을 꼬박 새며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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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새자 연행을 거부하고 다시 집회를 했다 ⓒ 오도엽

"날도 새고, 해가 나니 춥지도 않고, 기왕에 이리 됐으니 연행을 거부하고 싸웁시다."

한 농민이 외치자, 이곳저곳에서 '그럽시다'하며 다시 대오를 갖춘다. 누웠던 몸을 일으키고, 구호와 노래를 부른다. 거리엔 출근하는 시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밤새 먹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화장실 가는 길마저 봉쇄를 해서 생리현상마저 참아야 했다. 연행된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고 폭행을 하는 등 인권 침해 사례도 들리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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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기 전에 홍콩 거리를 청소를 했다 ⓒ 오도엽

다시 집회를 하던 중 사회자가 "우리가 갇혀있던 거리를 청소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농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줍고, 나뭇가지로 빗자루를 만들어, 추위와 허기에 떨었던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기자들과 홍콩시민들, 그리고 경찰마저도 모두 숙연해졌다. 연행되는 걸 취재하려고 꼬박 밤을 샌 외신 기자 한사람은 청소장면을 사진을 찍다 눈물을 흘린다. 어제 목 터져라 외쳤던 '아이 러브 홍콩'이 울리고 출근길 시민들은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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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을 하려고 하자 아스팔트에 누워 구호를 외친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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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기 직전 사회를 보았던 전농 간부가 눈물을 터뜨렸다 ⓒ 오도엽

다시 연행을 시작했다. 홍콩시민들은 육교와 거리에서 연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다, 연행되는 농민이 구호를 외치면 함께 따라 외치거나 박수를 친다. 비아깜베시나 참가단이 길 건너에 와서 깃발을 치켜 들고 'DOWN WTO'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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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깜페시나 회원들이 거리에 나와 한국농민을 응원한다 ⓒ 오도엽

오후 2시가 되자 이제 부산경남지역 30여명의 농민과 전농 간부 몇 사람만 남았다. WTO 각료회의도 끝났다고 한다. 처음 지도부의 계획처럼 각료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국농민은 각료회의장 앞에서 싸운 거다.

마지막으로 전농 사무총장이 연행되고, 하루 밤, 하루 낮의 싸움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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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은 부산경남지역 농민들 ⓒ 오도엽

처음에 연행된 사람들 중에는 무릎을 꿇고 뒤로 수갑이 채인 채 다섯 시간씩 앉아 있어야 했고, 몸 수색을 받고,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인권 침해에 대한 항의가 거세지자, 최소한의 절차를 거친 뒤 수갑을 채운다. 하지만 절차는 지켰으나 구금된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권리인 전화연락마저 유치장에선 거부당했다.

연행된 사람은 난민수용소와 유치장으로 흩어져 수용되었다. 작은 방에 25명을 수용해 누워 잠잘 공간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고, 턱없이 적은 담요로 추위를 떨어야하는 곳도 있었다. 내가 갇혀있던 유치장은 좁지는 않았지만, 얇은 담요 한 장만을 줘 추위에 떨어야 했다. 19일 새벽 2시경 변호사를 만날 때, 어찌나 추위에 몸서리쳤는지 입만 바들바들 떨고 한참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19일 저녁 7시경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19일 오전 7시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는데 놓쳤다. 유치장에서 풀어준 홍콩경찰들은 경찰서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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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 위에서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 오도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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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는 농민 ⓒ 오도엽

농민을 비롯한 11명이 나오지 못했다. 우리나라 영사관에서 신원보증을 해주지 않아 보석신청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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