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큰스님> 읽고 '친구'에게 띄운 편지

"올해가 가기 전, 아주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등록 2005.12.30 16:33수정 2005.12.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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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님께

스님!

유례없는 폭설로 시작된 올 겨울입니다. 본격적인 추위는 이제부터라는 듯 연일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지요? 지난번 전화기를 통해 들린 스님의 목은 염불과 독경으로 많이 상한 듯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지요?

올 한해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틀 남았으니 거의 저물었다고 해도 마찬가지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 역시 이맘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올 한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참으로 의미있고 보람찬 한 해였습니다. 물론 이루지 못한 꿈도 많고 작심삼일로 돌아간 계획도 많습니다. 그래도 큰 탈 없이, 무사히 올 한해를 보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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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큰스님> 겉표지 ⓒ 랜덤하우스중앙

전 올 한해가 다 가기 전에 아주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마치 제가 잊고 살았던 중요한 그 무엇인가를 꼭 알려주고자 제게 온 듯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요.

그 선물은 바로 책 <청화큰스님>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전 진정으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은 뒤 전 마음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뜨거운 눈물로 제 마음은 촉촉이 젖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올해 제가 읽었던 그 어느 책보다 제 가슴을 따뜻하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키를 한 뼘 더 키워주었습니다.

이 책은 청화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구도소설입니다. 스님의 어린시절부터 출가를 결심하게 된 배경, 구도를 하기까지의 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 작품 속 또 다른 주인공인 '이준'의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씨줄과 날줄처럼 함께 어울려서 작품을 튼튼히 엮어가고 있습니다.

주인공 이준은 별나라에서 온 인물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처럼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적당히 세속적인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엘리트였던 아들의 자살과 부인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의문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일까, 본래의 나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다 생각해보았을 문제입니다.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있다면 아마 그 의문을 항시 마음속에 비수처럼 품고 사느냐 아니냐에 있을 것입니다.

그 의문을 풀지 않고서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청화스님도 여기에 속합니다. 불가에서 스님들 사이에 '크게 의심하라'는 말이 있지요. 크게 의심하지 않고서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없기에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교육자로 안정된 삶을 살던 청화스님은 더 큰 깨달음을 위하여 출가의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장좌불와(눕지않고 앉아서 수행함)와 일종식(하루에 한 끼만 식사함)의 혹독하고 고된 수행을 하셨습니다. 오히려 고행이라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하겠지요. 스님이 그렇게 지독한 수행을 한 이유는 오직 단 하나, 삶의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청화(淸華) 큰스님 행장

*1947년 세납24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화상을 은사로 득도

*출가이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진불암, 지리산 백장암, 벽송사, 구례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등에서 수행정진하심.

*1985년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 소재한 동리산 태안사에서 삼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시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지으심

*1995년까지 한국전쟁으로 화마를 입었던 태안사를 중창복원하여 구산선문중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하심.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 금강선원등을 건립하시고 삼년결사를 수행하심.

*설령산 성륜사, 도봉산 광륜사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계시다가 2003년 11월 12일 열반하심.
엄동설한에 온기 하나 없는 토굴에서 장좌불와를 했다는 것이나, 밥먹는 시간이 아까워 불린 쌀을 틈틈이 먹으며 수행에 임했다는 얘기들은 단지 청화스님을 미화하기위해 내세우는 이야기들이 아님은 스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게 혹독하게 수행하여 깨달음을 이룬 뒤 스님께서 보여준 깨달음의 길, 깨달음의 모습들을 많은 사람들은 보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작품 속에서 스님의 그러한 모습을 '아름답다'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道)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도인이라 하면 우리들은 수염을 기르고 약간은 괴상하고 근엄한 모습의 노인을 떠올리기 쉬운데 저자가 직접 본 '도'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것도 모두 평등하게 대했던 자상한 마음, 누구에게나 웃음으로 대했던 인자한 마음. 저자가 곁에서 바라본 청화스님의 모습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도란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실과 유리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다 부처의 씨알을 가지고 있듯 누구나 다 실천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른 전기문처럼 청화스님을 영웅시하거나 미화하는데 급급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청화스님의 구도행적을 조금의 과장없이 그대로 담은 책입니다. 아마 청화스님을 한번이라도 친견해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스님! 저는 다행히도 스님이 열반하시기 한 해 전, 스님을 친견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청화스님을 실제로 만나 뵌다는 사실이 그렇게 설레고 기쁠 수가 없더군요. 한편으로는 과연 어떠한 분이시길래…라는 궁금증도 컸던 것 같습니다.

일종식을 철저히 지키신 까닭에 스님의 몸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듯 가냘프고 약해보였습니다. 스님을 바라보는 많은 대중들의 인사를 따뜻한 눈인사와 합장으로 대신하신 스님의 주위에선 봄바람 같은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또한 곁에서 스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스님의 철저한 수행이 있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진정 청화스님은 지혜와 자비의 덕을 두루 갖추신 성인이요 선지식이었습니다.

청화스님 행장을 다룬 또하나의 책

▲ <성자의 삶>
ⓒ사회문화원
<청화큰스님>의 저자 남지심씨가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얻은 책이다. 청화스님의 행적을 가장 자세히 다룬 책이다. 무엇보다 스님이 50여년간 거쳐간 수행처와 도량을 퍽 상세히 게재해놓았다. 그곳에서 스님의 수행생활과 법문, 일화, 주변사람들의 회고담이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청화스님에 대해 더욱 알고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성자의 삶> 정진백 지음/ 사회문화원/3만9000원
스님! 스님께서 출가하신 지도 어느덧 9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느 선방에서 열심히 수행정진의 꽃을 피우고 계시겠지요. 한때는 학교를 같이 다닌 동무였지만 9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스님은 스님대로 저는 저대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둘은 꼭 다른 길이라고만은 생각지 않습니다. 진정한 출가는 마음에 있는 거니까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봅니다. 올 한해는 내 자신을 놓치며 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위해 시시각각 점검하고 되돌아볼 것입니다. 그런데 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이맘때도 비슷한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매번 이렇게 결심만 하는 사이 시간은 저만치 흘러가 버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스님! 날씨가 풀리면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더욱 공부가 무르익은 스님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새해 더욱 정진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청화큰스님> 남지심 글/ 랜덤하우스중앙/8900원/전 2권

작가 남지심

강릉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솔바람 물결소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애환 가득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특유의 섬세하고 종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장편소설 <연꽃을 피운 돌> <담무갈>, 수필집 <욕심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콩트집 <새벽 하늘에 향 하나를 피우고>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청화큰스님> 남지심 글/ 랜덤하우스중앙/8900원/전 2권

작가 남지심

강릉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솔바람 물결소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애환 가득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특유의 섬세하고 종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장편소설 <연꽃을 피운 돌> <담무갈>, 수필집 <욕심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콩트집 <새벽 하늘에 향 하나를 피우고> 등이 있다.

청화 큰스님 1

남지심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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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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