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객기', 새해도 물들일까

[손석춘 칼럼] 나라 구하려면 양극화 해소부터 나서라

등록 2005.12.30 12:35수정 2005.12.3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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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한 해였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두루 '구국'의 열정이 넘쳐났다.

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에 정권을 사실상 이양하는 대연정이 구국의 길이라고 강변했다. 그 길이 얼마나 황당한 구국인가는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 입증해줬다.

제1 야당과 그들의 은밀한 기관지 부자신문들은 강정구 교수를 마녀사냥하며 일찌감치 구국의 칼을 뽑았다. 이어 전교조로 옮겨간 사냥은 사학법 개정을 놓고 마침내 원외투쟁으로 퍼져갔다. 저 '구국'의 언구럭은 새해까지 물들일 전망이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2005년에 이어 새해에도 구국의 열정, 아니 구국의 객기가 이 땅에 넘실대도 좋은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이 그래도 무방할 만큼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맞아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2005년 정가와 언론계에 넘쳐났던 구국의 객기

그래서다. 구국의 길로 줄달음치는 정가와 언론계의 윤똑똑이들에게 정중히 묻고 싶다. 대체 민주공화국의 뜻을 알고 있는가.

상식이지만 새삼 들려준다. 민주라는 말의 어원은 '민중의 지배'다. 공화국은 말뿌리 그대로 공공성을 담고 있다. 국가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을 위해 활동해야 옳다는 뜻이 공화국 개념에 담겨있다. 따라서 헌법의 국가 정체성은 분명하다. 자유와 평등이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에 과연 우리 얼마나 충실한가. 올 가을 전국 135개 사회단체가 손잡은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가 이미 선언했다. "8백만 명의 이등국민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등국민'을 양산하고 있다. 명토박아둔다. 이는 공화국의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위헌 행위다.

물론, 사회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데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농민 또한 이등국민이 된 지 오래다. 양극화해소연대가 선언했듯이 단계적 무상의료-무상교육, 최저생활 및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 조세정의, 공공 및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창출, 주거의 공공성 실현도 필요하다.

양극화의 으뜸 원인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60%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있다. 여기서도 오해는 금물이다. 한국 노동자 상황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두루 내리막길이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임금노동자 비중이 늘어남에도 노동소득 분배율은 떨어지고 있다. 노동운동을 과녁으로 삼은 부자신문과 수구정당, 심지어 '참여정부'의 여론몰이가 큰 몫을 했다. 노동소득 분배율의 하락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게 더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결국 대한민국 임금생활자의 둘 중 하나가 월평균 120만원 미만의 저임 굴레에 놓여 있다. 한 대학교수의 글이나 사학법 개정에서 생뚱맞게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한나라당이나 부자신문들은 정작 비정규직이나 농민의 절규엔 모르쇠다.

노동자·농민의 절규, 새해도 모르쇠할 셈인가

집권세력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해소에 앞장서도 부족한 터에 되레 거꾸로 가길 고집한다. 노동운동은 물론, 시민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손사래친 비정규직 법안 '사수'에 총력전이다.

그렇다. 사학법 개정을 명분으로 국회를 내동댕이친 한나라당이 의회에 돌아온다고 정치가 안정되는 게 아니다. 민중의 삶은 나아질 전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하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간곡히 촉구한다. 새해에는 양극화 해소라는 진정한 '구국'에 나서라. 거짓과 객기가 아닌 진실과 열정으로 구국에 임하라. 새해까지 노동자와 농민이 맞아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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