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도토리묵

도토리묵을 보면 어릴적 기억이...

등록 2005.12.30 17:24수정 2005.12.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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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 시장에는 서민들의 삶이 살아 숨쉰다. 반기는 사람은 없어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곳이다. 때로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떤 희망과 위안을 얻곤 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도 없는 시장의 모든 사람들은 곧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형 마트가 생긴 이후로 그나마 한 달에 두 번 정도 찾곤 했던 시장마저 요즘은 거의 가지 않는다. 시장과 비교해 모든 점에서 쇼핑하기 편리한 마트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구입하는데 익숙해져 가는 것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감돈다.

거리 좌판 위에 온갖 나물과 생선을 펼쳐 놓고 물건을 파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행복이 묻어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파는 나물보다 덤으로 주는 나물이 더 많으면 손해 보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는 인상 한번 쓰지 않는다. 그리고 뒤돌아서 가는 사람에게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그게 정인가 보다. 할머니는 사소한 인연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듯 하다. 그리고 시린 손을 불며 연탄불에 손을 녹이는 할머니의 얼굴 위로 어릴 적 내 어머니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비추어진다.

지지리도 못살았던 우리 집은 재래시장 좌판에서 행상을 하시는 어머니의 벌이로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볼 일이 있어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저린 다리를 매만지곤 하셨다. 지금도 어머니가 거동을 하는데 불편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철없던 시절. 왜 그렇게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가지고 싶어했던 물건을 꼭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무엇보다 나의 돈줄은 어머니의 허리춤에서 나왔다. 어머니의 허리춤에는 늘 돈주머니가 매여 있었고 내가 돈을 요구할 때마다 어머니는 돈의 용도를 물어 보지도 않고 그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가 주신 꼬깃꼬깃한 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딱지와 구슬을 샀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붕어빵과 어묵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는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가 보다. TV를 보시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그 곳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시곤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그 이야기를 까맣게 잊어버리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불쑥 어머니께서는 그 옛날 터 잡고 장사를 하셨던 재래시장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이 평소의 습관처럼 지나가는 말인 줄 알고 귀에 담아두지 않았다.

요즘 들어 자주 그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시는 것을 보면 진심인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당신의 청춘을 다 보낸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그 곳을 늘 동경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시간이 나면 어머니를 모시고 그 곳에 다녀와야겠다.

이제 고희가 넘으신 어머니가 유난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그건 바로 도토리묵이다. 도토리묵은 치아가 좋지 않은 어머니가 드시기도 좋지만 어머니가 그 묵을 좋아하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때 그 당시 어머니는 나물, 생선 등 여러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파셨는데 제일 기억이 남는 물건이 도토리묵이었다. 어머니는 도토리를 방앗간에서 빻아 밤늦게까지 도토리묵을 만드셨다.

다음 날 정성 들여 만든 그 묵을 시장에 내다 파셨다. 어머니의 정성 탓일까. 물건들 중에 가장 잘 팔린 것이 도토리묵이었다. 그리고 가끔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시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파장할 때쯤 어머니가 늘 도토리 묵 2개를 꼭 남겨 두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포장하여 장바구니 안에 넣어 두셨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 어머니는 그것을 들고 식구들 몰래 대문을 빠져나가셨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수상하여 어머니의 뒤를 미행해 보았다. 어머니가 도착한 곳은 달동네 어느 판잣집. 어머니는 그 집의 부엌으로 들어가 가지고 간 도토리묵을 썰어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은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문구멍으로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난 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입에 그 묵을 넣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고마운 듯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연신 눈물을 흘리셨다. 그 순간 어머니의 행동을 의심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세월이 지난 요즘도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드시면서 그 옛날 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곤 하신다.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 집은 도토리묵을 만드는 아내와 어머니 때문에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어느 날 시장에서 사온 도토리묵이 예전 맛이 나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이 며느리인 아내에게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어머니로부터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을 직접 배우기로 하였다. 아내가 어머니로부터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도토리 가루를 고르는 법이었다. 웬만한 눈썰미로 좋은 도토리 가루를 고르기란 여간 힘들지가 않다.

그런데 어머니만의 비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맛을 음미해 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내를 데리고 재래시장으로 가 그 방법을 직접 가르쳐 주는 친절까지 보여 주셨다. 그리고 사 가지고 온 도토리 가루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루의 양과 물의 배합을 가르쳐 주며 끝으로 배율이 다 된 가루와 물을 냄비에 붓고 끓이는 과정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아내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모든 내용을 꼼꼼히 적어가며 열심히 배웠다.

아내가 처음 도토리묵을 만들었을 때의 일이다. 아내가 만든 도토리묵 때문에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말 그대로 묵사발이 된 것이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난 뒤, 아내는 이제 제법 도토리묵을 잘 만든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내가 만든 도토리묵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그래서 일까? 우리 집에서의 고부간 갈등은 남의 집 이야기처럼 들린다. 무엇보다 도토리묵은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체임에 분명한 듯 싶다. 지금에야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파신 것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세밑,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상을 느끼며 내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도토리묵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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