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픈 국민드라마 '전원일기'

MBC는 '전원일기'를 부활하라

등록 2005.12.30 17:18수정 2005.12.3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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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없는 세상 3년이 훌쩍

2002년은 월드컵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감동과 환희를 맛보고 있는 사이 우리 마음을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으니 다름 아닌 국민드라마 <전원일기> 종영이었다. 그해 12월 29일은 우리들에게서 마음의 고향, 포근한 시골집을 앗아간 날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사랑을 한껏 받은 드라마가 있을까? 시작과 함께 잔잔한 시그널음악이 흘러나오면서 까치가 "짹짹짹", 누렁소가 "음메"하고 울어 도시로 떠난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도록 했다.

화요일 밤은 <전원일기> 보는 날이었고 일요일 오전으로 옮긴 뒤에도 <전원일기>가 끝나야 밖으로 나가 일손을 잡을 수 있었다. 단순히 일개 농촌드라마가 아닌 절반에 가까운 농촌 출신 서민들 심금을 쓰다듬었던 걸작이었다.

<전원일기>는 도시인의 세계관으로 한가하게 노닥거리는 연속극이 아니었다. 늘 곁에 묵묵히 있던 어머니 같았다. 아무런 까닭 없이 응당 있어야 할 필수품 같은 존재였다. 벌써 3년 하루가 지났는데도 다시 <전원일기>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김 회장네와 일용네로 대표되어 출연자 면면마다 의미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1088회를 끝으로 변변한 후속 작품 하나 없이 문을 닫아버리니 우리들 마음엔 빗장이 걸렸고 허전하여 고향소식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한국방송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는 그 아쉬움을 달랠 길 없다. 억지연기가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농촌관련 프로그램인 평일 저녁 주 5회 방영되는 <6시 내 고향>이나 주 2회 편성하는 서울방송의 <네트워크현장-고향이 보인다>는 갈증만 더할 뿐이다. 문화방송 <고향은 지금>은 매주 일요일 아침에 맛보기로 사람 감질나게 한다.

김 회장댁과 일용이네 그리고 마을 사람들

100살을 넘겼을 것이라는 분분한 연세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인자한 할머니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할머니를 잃어버린 듯 슬퍼했다. 그의 아들인 다소 고리타분한 아버지 최불암씨와 영원한 어머니 김혜자 아래 산림계장 김용건과 우리 형수 같은 고두심, 청년회장 유인촌과 철딱서니 없는 박순천, 영남이와 금동이가 사는 집은 나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집안 내력 때문인지, 일용 엄니의 털털한 입방정에 끌렸던건지 일용이네는 더한 그리움을 보였다. 떠버리 아짐씨 일용이 엄마와 모진 가난을 이겨내려는 일용이와 그의 처 그리고 귀여운 복길이와 순길이가 엮어가는 고단한 삶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깨달음도 얻었다.

이뿐인가. 어르신들과 응삼이, 돈 벌러 집나간 노마와 아버지 귀동이, 구멍가게 주인 쌍봉댁에 마을의 산과 들, 강과 풀, 꽃송이까지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쇠락해가는 농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마냥 정떨어지지 않고 쉬어가고 싶은 안식처를 제공해주었다.

MBC 드라마의 정체, MBC의 위기

1980년부터 시작하여 장장 22년 2개월을 끌며 남녀노소 온 가족을 텔레비전 앞에 붙들어놓았던 <전원일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폐지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소재 고갈과 시청률하락을 이유로 앞세웠지만 방송사의 지나친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고 본다.

출연진 각각이 중견연기자들로 출연료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그에 따라 비용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게 정설이다. 게다가 늙어가는 드라마를 연차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게을리 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문화방송은 <전원일기>를 폐지한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왜일까?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과 외주 제작에 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젊은이들 사랑타령만 있을 뿐 가족과 어른, 아이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가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어른은 늘 나약한 존재로만 등장한다. 올곧은 정신으로 젊은이를 타이르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톡톡 튀는 실험적 드라마에 골몰한 나머지 연출이 뒷받침을 못한 탓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런 전개가 사라지고 뚝뚝 끊어지는 장면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장금>과 '삼순이신드롬'을 일으켰던 <내 이름은 김삼순> 외에 별다른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것이 문화방송(MBC)의 위기의 시작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연이은 악재로 혼쭐이 난 방송국에 보약이 되길 바란다. 초심과 원칙을 지켜 슬기롭게 극복하는 계기로 삼으라. 구구절절 고향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문화방송을 아끼는 시청자로서 바람이다.

드라마는 시청률, 시청률은 광고로 직결되는 특성상 더 재미나고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하는 젊은 드라마를 꿈꾸지만 꾸준히 시청률 10% 이상을 보여준 프로그램을 그렇게 내팽개칠 일이 아니었다.

방송에서까지 소외받는 농촌 농민 그리고 고향

최근 종일방송은 여타 방송사와 마찬가지로 늘어난 시간대를 십분 활용하기보다 재탕과 오락프로그램만 채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얼마 후 정말 우리 탯줄을 묻었던 고향이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절박감마저 든다. 금수강산 고향, 시골은 단순히 사람 수만으로 가치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곳엔 수천 년 간 조상의 지혜가 숨어있고 맛난 음식이 있고 소중한 추억이 있다.

전통이 오롯이 살아 있는 삶의 궤적이다. 다시 아름답게 가꿔야할 문화유산이다. 그곳을 팽개친다면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질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밥상과 후대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

무관심이 소외를 부르고 고향을 지키고 있는 농심을 멍들게 했다. 우리가 소비자 중심, 도시인들 돈벌이에 골몰하는 동안 농촌은 회생불가능 상태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 문화방송 <전원일기> 폐지도 악역을 맡았다는데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명색이 공영방송 아닌가.

다시 쓰는 농촌드라마 새 모델을 제시해야

만약 이 글을 시발로 <전원일기>에 대한 논쟁이 촉발된다면 피폐한 농촌 현실을 그대로 보여 달라는 게 아니다.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인간 군상을 재창출하여 농촌에서도 삶의 질이 보장되고 고소득과 여유를 한껏 부릴 수 있는 모범을 선보여야 한다.

진취적이고 살아있는 농촌을 만들자. 도시빈민이 구태여 도시에서 얼쩡거릴 게 아니라 새로운 미지의 개척지인 고향을 향해 탈도(脫都) 이도(移都)하여 귀농을 돕자. 그 한가운데에 <전원일기>가 우뚝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 지나친 욕심일까.

<상록수>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만들어가듯 맨땅에 헤딩하는 게 아니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농촌에 살아갈 젊은이들이 정착할 터전을 만들도록 돕는다면 더 없는 역사적 과업까지도 수행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거창하게 시작하지 말자. 작은 드라마를 만들어라. 차곡차곡 채워나가면 된다. 복길이와 영남이만 있어도 이야기는 충분히 되지 않을까 싶다. 구도를 간략하게 잡고 보태고 빼고 버무려보면 <전원일기2>가 예전 명성을 찾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22년 동안 보여줬던 저력이 있질 않던가.

다시 재작하기에 앞서 <화제의 드라마> 코너에 배치하여 국민 성금모금 차원에서 재방송을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만큼 우리가 아꼈던 드라마다. 굳이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맥스 구조를 가지지 않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일상생활로 가도 될 듯하다. 소재발굴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가 준비하고 있는 인터넷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 창간이 며칠 늦춰지고 있다. 해를 넘겨 1월 첫주 목요일에는 꼭 문을 열 예정이다. www.sigoli.com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가 준비하고 있는 인터넷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 창간이 며칠 늦춰지고 있다. 해를 넘겨 1월 첫주 목요일에는 꼭 문을 열 예정이다. www.sigo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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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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