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은 스스로 짓고 거두는 삶의 과정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 1, 2> 새해는 어떤 복을 지을 것인가

등록 2005.12.31 15:45수정 2005.12.31 19:59
0
원고료로 응원
복(福)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짓고 거두는 삶의 과정

"복(福)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짓고 거두는 삶의 과정이라고 한다. 땅 일궈 씨를 뿌리고 한 여름날 땀줄기 쏟아내며 잘 가꾼 농부가 좋은 결실을 거두듯, 삶의 과정에서도 항상 뿌리고 가꿔야 거둬들일 수 있는 삶의 열매가 바로 복이다."
-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 2권 '괴산 백운사 마애약사 여래불편'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새해 덕담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며 절실한 표현이어서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인사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남을 향하여 하는 인사란 결국 '자신을 위해서'란 생각이다. 남에게 인사를 하면서 스스로 겸손해지며 인사를 통한 순수한 배려는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 인사를 서슴없이 하자. 특히 새해를 활짝 웃으며 아낌없는 덕담으로 축원해주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새해 소원성취하세요" "새해 건강하세요!"

a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1 ⓒ 가야넷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를 틈나는 대로 한 꼭지씩 읽는 동안, 복(福)의 상징인 당나라 명주현의 계차(契此)스님을 자주 생각하였다. 가진 것 없는 걸인스님이 그래도 가진 것이 있다면 포대(자루나 걸망) 하나뿐이었다. 삶을 달관하여 신통력을 가진 스님이 들고 다닌 신비스러운 포대를 붙여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는데, 전설적인 이 선승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복의 상징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계차, 즉 포대화상은 포대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손을 벌려 구걸을 하여 포대 속에 차곡차곡 넣었다가,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포대속의 물건을 꺼내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아무리 넣어도 포대는 넘치지 않았고 아무리 꺼내도 포대는 바닥나지 않았다.(포대화상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오지만 복과 관계되는 포대 이야기만.)

가진 것은 많지만 나눌 줄 모르는 것을 자신이 대신 구걸하여 필요한 곳에 나눔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복을 짓게 하였으며, 가난한 사람은 복을 받고 다시 다른 사람과 나누게 하였다. 포대화상이 사람들 사이에서 복을 나누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어떻게든지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우리들 사이에서 서로 나눌 수 있는 복(福)도 포대화상의 포대처럼 끝없이 받아도 넘치지 않고 남에게 얼마든지주어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a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 2 ⓒ 가야넷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 1, 2>는 산사기행문이면서 단순하게 사찰을 향해 가는 여정만을 담고 있는 것만이 아닌 저자의 성찰이 돋보이는 글모음집이다. 복을 상징하는 포대화상의 이야기처럼 산사에 깃들인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재밌다. 산사를 향하는 여정은 물론 눈여겨보아야 하는 문화재나 풍경도 사진으로 가득 담겨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듯 다정하다. 두 권에서 순전히 절집이 좋아 찾아가는 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해인사나 실상사처럼 이미 많이 알려진 곳을 다시 찾는 것도, 이름도 다소 낯선 작은 암자나 산기슭에 버려진 듯 천년을 살고 있는 마애불을 찾아가는 여정도 즐겁다. 석주 스님은 물론 몇 년 사이 입적한 여러 스님의 다비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소중한 자료이다.

사진으로나마 찾아보는 산사고 이미 가보았던 곳이어서 추억과 함께 가보기도 하는 절집이지만 들려주는 사람이 어떤 곳을 먼저 열어 주는가에 따라 그 느낌은 다르다. 아울러 스스로에게든, 남에게든 복을 짓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다 보면 훨씬 실감난다. 열심히 산다는 것,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바로 복이다. 돌부처님의 은은한 미소처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배려하는 마음도 또한 복을 짓는 것이다.

걸망과 포대가 같은 물건이기도 하고, 책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이 포대화상의 신비로운 포대에 채워지고 꺼내져도 바닥날 줄 모르는 물건들처럼 술술 재미있거니와, 재미 사이로 틈틈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어서 그런지 책을 펼쳐 읽으면서 포대화상의 복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남에게든, 나에게든 복을 짓는 '2006년'을 살고 싶다

김제 흥복사(2004년 10월 화재로 전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는데, 이른 새벽의 여명이 눈부실 만큼 많은 눈이 내렸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이른 새벽의 눈 속에 입김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돌아 본 등 뒤에는 방향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고 헝클어진 모양새의 발걸음이 정신없이 엉켜있었다.

내가 이미 찍은 발자국들은 땅에 굳어 비질을 어렵게 할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내가 이미 찍은 발자국을 밟으며 걸을 것이었고 눈이 녹기 전까지 길이 될 것이기도 하였다. 함박눈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지만 내가 이미 찍은 발자국 그 흔적 위에 눈이 내려 아무런 흔적 없이 쌓이기란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스물 성년이었다.

한해를 다시 돌아본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어디에 있으며 내가 남긴 마음은 다른 사람들 가슴에 어떤 씨앗이 되었을까? 복을 많이 받았는가 아니면 복을 많이 지었는가? 처음에는 기사를 쓰면서 하나씩 더해지는 숫자들을 조바심으로 보태었다. 그러나 성년의 나이에 눈 쌓인 새벽 산사에서 문득 뒤돌아보았던 내 어지러운 발걸음이 떠올라 앞으로만 향하여 치닫던 날을 돌아보기를 몇 번 하였던가.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손에 펼쳐지는 대로 한 꼭지씩, 산사에 들러 법당을 찾아 108배를 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이 글들은 내 자신 스스로에게 복을 짓는 방법과 다른 존재에게 복 짓는 방법을 생각하게 하였다. 올해는 어떤 복(福)을 지을 것인가?

오유지족(五唯知足; 스스로 족함을 안다. 오직 만족할 줄 알면 행복해지고 부자 된다. 자신을 둘러 싼 모든 것들은 자신에게 있다)이라 했던가!

책 정보 및 저자

<걸망에 담아 온 산사 이야기 1, 2>는 가야넷에서 나왔으며, 각 권의 값은 1만3천원입니다.

1권은 2004년 9월에, 2권은 2005년 5월에 나왔으며 특히 1권의 5쇄 발행본(2005년 7월)인 '특별보급판'에는 2005년 4월 양양 산불로 전소한 낙산사의 여러 전각 모습이 실려 있습니다.

화재로 이미 사라지고 말았지만 저자가 사진으로 남겨 기록한 대웅전이나 종각 등을 비롯한 모습과 함께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로 만났던 '화재 이후 낙산사 관련 기사'와 복원동참을 호소하는 글 등 저자의 마음씀씀이가 돋보이는 몇 편의 글이 앞장에 특별 배치, 실려 있습니다.

저자 임윤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며, 저자의 기사나 기사가 모아진 이 두 권의 책은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입적한 큰 스님들의 자세한 다비식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없는 돋보이는 자료입니다.

포대화상-절이나 공예품을 전시하는 곳에 가면 육중한 몸의 스님에게 아이들 다섯 명이 매달려 젓꼭지를 만진다거나 귀를 만지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품이 있습니다. 또한 지팡이 끝에 포대(자루나 걸망) 하나 매달고 있다든지, 어깨에 메고 다니기도 하지요.

달마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포대화상을 표현할 때는 달마처럼 수염이 덥수룩하거나 눈이 불거지지 않고, 대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복을 상징하여서 중국의 사찰 입구에서 예사로 볼 수 있다 하며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복을 중시하며 그림으로 남긴 곳도 많습니다. 달마와 같은 의미로서 식당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김현자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

임윤수 글. 사진,
가야넷, 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