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해가 준 선물 받으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등록 2005.12.31 15:44수정 2005.12.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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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새해 첫 날 품었던 소망을 이루지도 못 했는데 흐르는 물처럼 모른 체 하면서 그냥 저물어 갑니다. 이웃들은 며느리 언제 보냐고 사위 언제 보냐고 올해도 그냥 가는 거냐고 묻고는 합니다. 이제 그들은 인사말을 대신해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사말을 대신하는 대답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혼기를 넘겨도 훌쩍 넘긴 자식들 본인들이 너무나도 룰루랄라 태평스럽기 때문입니다.

훌쩍 나가 마트에서 장을 봐 가지고 오다가 나무들을 올려다봅니다. 모두 시원스런 가지들을 거느리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당당합니다. 그 많은 이파리들을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입니다. 부럽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이파리들을 정리해 버렸을까. 나는 둘도 정리를 못했는데.

새 둥지를 품고 있는 나무는 왠지 더욱 당당해 보입니다. 잔가지들로 하여금 둥지에 드는 칼바람을 얼추 막아주게 하고 펑펑 쏟아지는 흰 눈도 비껴가게끔 해 주는 모성적인 빛이 느껴지기 때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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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둥지를 품고있어 더욱 당당해 보입니다 ⓒ 김관숙


뭐 하니? 추운데.

새 둥지는 조용합니다. 칼바람이 숭숭 거릴 텐데도 조용합니다. 그 뜨거운 여름 내내, 낙엽이 지는 가을 내내 한눈 한 번을 안 팔고 부지런히 먹이 물어다가 새끼들 모두 키워 내놓고 이제는 눈부신 연두 빛 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칼바람이 숭숭 거린들 못 참겠냐는 듯이 아주 조용합니다.

높다란 목련나무는 혹한 속에서도 꽃봉오리들이 삐죽 예쁩니다. 어떤 것은 눈에 띄게 커서 조금 부풀어 올라 있는 듯이 보입니다. 벌써부터 봄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제 할 일들을 모두 마무리 해 놓고는 묵묵히 새해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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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빛 봄이 그립습니다 ⓒ 김관숙

나는 목련나무를 보다가 말고 돌아서버립니다. 원래 할 일을 다 해놓은 이는 말이 없는 법이라는 말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흔히들 ‘그 눔의 인연이 어디 가서 숨었나 몰라’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면서 위안을 받고는 합니다. 나도 그러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부끄러워집니다.

올해도 며느리와 사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들도 딸도 목련나무처럼 당당하고 건강하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의 그런 성실하고 예쁜 모습을 지켜보며 남편과 내가 탈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런 생각이 스치더라도 속은 속대로 탈 텐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 합니다. 아주 편안 합니다. 저물어 가는 해가 준 선물입니다. 저물어 가는 해는 누구나 철들게 합니다. 뒤를 돌아보게 하고 한 발 물러서게 하고 많은 아쉬움들을 털어 깊이 묻게 합니다.

이젠 나도 나무들처럼 당당하게 찬란한 새해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물론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새해맞이 인사부터 해야겠지요.

사랑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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