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며 뽑은 나만의 10대 뉴스

가장 반가운 소식은 뭐였을까요?

등록 2005.12.31 16:14수정 2005.12.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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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의 인생속도는 시속 30km라지요? 2004년의 마지막 밤에 들었던 제야의 종소리가 지금도 공명으로 남아 있는데, 어느새 2005년의 마지막 날이 제 앞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는 뭔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자 싶어 굳이 신년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막상 아무것도 이뤄놓거나 일기장 위에 그럴싸하게 적어놓을 보람된 사건 하나 없다보니 작은 계획이라도 하나 세워서 오늘쯤 스스로에서 점수를 매기며 나의 사람됨과 인간됨을 평가해 봐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렇다고 삼백예순다섯 날을 그냥 무위도식하며 지낸 건 아닙니다. 누구 알아주거나,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을지언정 애들도 키우고, 살림도 늘리고, 남편내조도 열심히 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엄마, 괜찮은 마누라,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해서 한해를 보내면서 나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10대 뉴스를 한번 뽑아봤습니다.

첫째, 가족의 건강!!

지난 6월 가슴에 작은 혹이 만져져 절제 수술을 한 것 외에는 가족 모두가 아무 사고나 병치레 없이 무사했으니 이만큼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둘째, 남편의 실직과 새로운 도전!!

5년여 건설 일을 해오던 남편이 경기 불황 때문에 실직했습니다. 다달이 갖다 주는 월급으로 그나마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실직을 하고보니 앞이 깜깜하더군요. 하지만 오뚝이 같은 남편은 실직 후 보름 만에 다시 새 일을 찾았고 비록 크리스마스며 신정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지방에서의 외로운 생활이지만 남편은 이 순간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편에게 내년에는 꼭 대박이 나길 바라봅니다.

셋째, 유치원생이 된 큰 아이!!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태어난 아이는 저능아지수가 높아서 저의 애간장을 녹였습니다. 다행히 재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아이가 걷고, 말하고, 뛰고 하는 지난 5년 동안 단 하루도 마음을 졸이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 유치원생이 되어 입학을 하던 날!! 어버이날 "엄마 사랑해요!!"라고 삐뚤빼뚤하게 써온 편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넷째, 전세대출금을 갚다.

햇빛 한줌 들지 않는 지하방에서 두 아이 낳고 키우면서 말 못할 설움이 참 많았습니다. 설움이란 것 누가 주지 않아도, 갓난아이 젖 찾듯 그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이더군요. 하지만 그런 설움보다 저를 더 못 견디게 한 건 아이들의 마른기침 소리였습니다.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알아봤지만 워낙에 가진 것이 없다보니 마땅한 집을 고를 수가 없었지요. 그때 전세대출금을 받아 이 집으로 이사를 왔고, 이사온 지 3년 만에 그 대출금을 갚았습니다.

다달이 나가는 2만5000원의 이자보다는 "빚지고 사는 인생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제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는데, 갚아버리고 나니 이제야 제대로 된 인생길을 걷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합니다.

다섯째, 이웃사촌이 생기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모난 성격에다 안 어울리게 낯가림까지 심한 탓에 이사를 하고도 2년 동안 내 집안에 내 식구 외에는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손님들이 들이닥칩니다. 커피 마시고,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육아에 대한 노하우도 배우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제는 조촐하게 망년회도 했답니다.

여섯째, 핸드폰이 생기다.

살림하는 주부가 핸드폰이 뭐가 필요하냐고. 기본료 내는 돈이면 고기가 두 근이라며 핏대 높여 외치던 이 아줌마에게도 올해 초 핸드폰이란 것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사용 방법도 모르고, 벨소리 전환하는 것도 몰랐는데 지금은 웬만한 용건은 문자로 날리는 신세대가 됐습니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기본료가 아깝긴 하지만 내가 보내는 한 줄의 문자에는 돈으로는 살 수도 담을 수도 없는 정이 묻어있으리라 확신하며 오늘도 보고픈 친구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따듯한 문자 한 줄을 보내봅니다.

일곱째, 상을 받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커다한 영한사전과 더불어 받았던 우등상을 끝으로 상이라고는 밥상밖에 못 받아봤는데 13년 만에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욕심이라면 내년에도 받고 싶다는 겁니다.

여덟째, 도서관에 입성하다.

자식에게 낳아주고 먹여주는 일 외에는 해줄 것이 없는 부모의 마음을 아시는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천금보다 더 귀한 내 아이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써 삶의 지표가 될 그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돈이라도 많다면, 배움이라도 길다면, 힘이라도 있다면 막말로 돈없고, 힘없고, 빽없는 부모라서 더 많은 고민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해서 저는 책을 가르치기로 하고 생전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도서관 문턱을 넘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은 도서관 가는 날로 정하고, 그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을 해보면 도서관 입성은 아이보다는 저에게 더 이로운 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홉째, 몸무게가 그대로!!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결혼할 때나 지금이나 몸무게가 한결같다는 의미 말이에요. 평생을 살과의 전쟁을 치러야하는 여자의 입장에서 사실 이 소식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요즘은 인구의 30%가 비만인 뚱뚱한 사회로 가고 있는 판국에 아줌마의 표상이었던 뚱뚱하고 퍼진 모습에서 그나마 저 만이라도 독립을 했으니 이것 만은 모두에게 축하를 받고 싶군요.

마지막 열 번째는 바로 오마이뉴스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올해 3월 처음 입성을 해서 한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는 기간인 근 열 달 동안 오마이뉴스의 기자로서 80꼭지가 넘는 글을 올렸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엄마에서 글도 쓰고 돈도 버는 데다, 기자라는 그럴싸한 간판까지 다는 엄마가 되었으니 이만한 소식이 또 어디 있겠어요

'짜밤'에 대한 뉴스를 읽고, 고향 분이 전해온 쪽지를 읽으면서 주경심이라는 이름 석 자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꼬리를 물고 있을 줄 몰랐다면서 전화를 해온 오래 전 친구까지…. 오마이뉴스가 있어 올해 저는 이뤄놓은 건 없어도 무의미하게 보내지는 않았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80꼭지의 글들이 모두 저의 삶이였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년에는 더 좋은 사연과, 더 행복한 뉴스들로 오마이뉴스를 찾는 시민들의 가슴을 제야의 종소리처럼 울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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