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이 '개'가 아닌 '게'의 해였으면...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바닷길에서 해를 맞는다

등록 2005.12.31 16:37수정 2005.12.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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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비금 도초를 지나 안좌도로 접어들자 해가 지기 시작한다. 작은 포구에서는 배를 타고 '물'(그물을 걷는 것을 말함)을 보고 오는 어부를 기다리는 트럭이 주인을 맞는다. 막배를 기다리는 두 명의 사내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이 든 가방이나 입성으로 보아 섬사람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금요일 섬에서 목포로 나오는 막배에 타는 사람들은 교사, 보건소, 한전, 면사무소 등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많다. 이들은 다시 뭍으로 발령이 나기를 기다리며 월요일 첫배로 섬에 들어와 금요일 막배로 섬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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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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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목포여객선터미널이나 북항에서 배를 타고 비금과 도초까지 가는 길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물때가 맞서 가야 할 때는 30여 분이 더 걸리기도 하는 것이 뱃길이다. 쾌속선을 타면 1시간이 절약되지만 일반도선을 이용하면 섬사람들의 정취와 섬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좋다.

흑산도까지 이어지는 이 뱃길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어민들의 생활사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에 전파했던 길도 바로 이 바닷길이다. 최근 장보고, 왕건, 이순신 등 해양을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가 사랑을 받으면서 해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듯했지만 역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역사적으로 3세기 무렵부터 서남해역에는 해상세력이 존재해 중국대륙은 물론 일본열도와 교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여름철 들어오는 피서객과 나가는 소금 가마니로 배가 가득하지만 과거에 이 길은 고승과 유학자들이 이용하는 뱃길이었고,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였다. 1960년대 동해, 남해의 뱃사람들이 한몫 잡으려 칠발도 어장과 칠산바다, 연평도 어장으로 가던 뱃길도 이 길이다. 이들을 따라 부평초처럼 배에 몸을 싣고 파시 주막을 열었던 색시들도 이 길로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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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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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인천에서 시작해 여수에 이르기까지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지역이 환황해권의 중심이라며 개발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그 바닷길은 열려 있었다. 열려있던 바닷길을 닫은 사람들이 누구던가. '바다가 육지라면', '저 바다가 없었다면'이란 노래처럼 그들은 바다를 쓸모없는 '걸림돌' 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바다가 희망이며 섬을 중국으로 뻗어나갈 '디딤돌'로 생각하고 있다.

바다는 분명 희망이다. 요즘 하는 말로 '블루오션'이다. 그렇지만 열린 바닷길을 닫고, 물길을 막고, '바다가 육지라면'을 강요했던 이들에게 바다와 섬을 맡길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다와 갯살림은 육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수많은 세월 동안 섬과 바다를 지켜온 이들을 몰아내고 걸림돌을 제거하고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내 쫓는 격이다. 이 바닷길은 어민들에게는 삶의 길이다. 철철이 나는 생선들, 질퍽한 갯벌에서 나는 낙지, 운저리, 칠게들. 여름철 시꺼멓게 그을린 사내들이 하얀 소금밭에서 대패질(소금을 긁는 것)을 하는 것도 이 바닷길이 있어 가능했다.

흑산도까지 가는 바닷길 양쪽으로 작은 섬들이 박혀있다. 추석이 지나면 조간대 끝자락에 물길 따라 섬 따라 김발들이 자리를 잡는다. 마치 섬들이 추워서 검정색 목도리를 하는 모양이다.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물때에는 설치작가들이 바다에 작품을 만들어 놓은 마냥 아름답다. 이 작품은 어민들이 매년 겨울이면 설치하는 것들이다. 물길 따라 춤을 추기도 하고, 물속에 잠겨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해가 뜰 때는 황금빛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지만 해가 질 무렵에는 노을을 받아 검붉은 색으로 치장을 하기도 한다. 이놈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어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었지만 모두 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섬을 둘러쳐진 김발들이 물길을 막아 생태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시설물들이 깨끗하게 철거되지 않아 바다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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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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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어둠이 걷히면서 하늘이 열리고 소금밭이 열린다. 사이로 시꺼먼 그림자가 불쑥 다가서더니 밤송이처럼 가시를 만들어낸다. 섬에 있는 산들은 야트막하고 누워있다. 그래서 섬 중에 '누운섬', '와도'(소가 누워있는 모습) 등의 이름이 종종 눈에 띈다. 열린 하늘이 붉어지면서 소금밭에도 보랏빛을 띤 붉은 기운이 감돈다. 엷은 구름은 벌써 알아차리고 아침을 맞는다. 무뚝뚝한 사내놈 마냥 물정 모르는 먹구름은 여전히 깜깜하다. 포구의 선박들도 찬바람에 몸을 움츠리고 깨어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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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겨울철 가장 분주한 놈들은 철새들이다. 이놈들은 고기들이 어디에 많이 있는 줄 잘 안다. 해조류양식장 밑 바다 속에는 고기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오리류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은 수초가 없는 바다에서는 김이나 다시마 그리고 미역 등 해조류 양식장 옆으로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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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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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2006년 '개'의 해라고 한다. 열두 띠 중에 바다 생물은 없다. 생명이 근원이요 원천인 바다에 대한 인색함을 엿볼 수 있다. 내년이 '개'의 해 아니라 '게'의 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든 간척사업들이 중단되고 막혔던 물길이 열리고 갯벌이 '게'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게가 살면 갯벌이 살고, 낙지와 짱뚱어가 살고, 생합이 숨을 쉬고, 기다란 갯지렁이가 고무줄처럼 몸을 놀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한해 동안 '바다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신 '네티즌', '뉴스게릴라', 그리고 편집부 상근기자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내게 삶의 지혜를 주신 '어민'들의 고마움 잊을 수 없습니다. 2005년은 건강도 회복하고, '상'(2월 22일 상)도 받게 되어 매우 의미있는 해가 되었습니다. 불쑥 불쑥 짐을 꾸리며 바다로 가는 남편과 아빠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아내와 딸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06년에도 변함없이 어민들의 삶의 이야기, 바다와 섬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05년 12월 31일

바다사랑 갯벌사랑, 김준 드림

덧붙이는 글 지난 한해 동안 '바다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신 '네티즌', '뉴스게릴라', 그리고 편집부 상근기자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내게 삶의 지혜를 주신 '어민'들의 고마움 잊을 수 없습니다. 2005년은 건강도 회복하고, '상'(2월 22일 상)도 받게 되어 매우 의미있는 해가 되었습니다. 불쑥 불쑥 짐을 꾸리며 바다로 가는 남편과 아빠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아내와 딸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06년에도 변함없이 어민들의 삶의 이야기, 바다와 섬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05년 12월 31일

바다사랑 갯벌사랑, 김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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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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