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내 난자들을 대체 어디에 썼나요?"

난자 29개 기증한 여성이 황우석 교수에게 보낸 공개편지

등록 2005.12.31 16:35수정 2005.12.3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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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이제라도 좋으니 진실된 모습으로 쓰러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일으켜주세요. 잘못을 시인하고 백의종군보다 더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연구논문에서 발표한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모두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황 교수의 연구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이 받은 상처는 매우 크다.

<한겨레21>은 최근 발매된 신년호(591호)에 자발적 난자 기증자인 위아무개(27·미혼)씨가 황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위씨는 이 편지에서 황 교수 연구가 거짓으로 밝혀진데 대해 "충격과 상심은 이루 말로 하기 힘들었다"고 썼다.

<한겨레21> 보도에 따르면 위씨는 지난 1월말경 미즈메디병원에서 '난자흡입술'을 통해 무려 29개나 되는 난자를 기증했다. 그 뒤 위씨는 복수가 차거나 체중이 줄어드는 등 '과배란 유도제' 후유증을 앓았다. 지금도 그는 각종 여성질환으로 계속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결혼은 물론 출산 경험도 없는 위씨가 '불임'의 위험을 무릎 쓰고 난자를 제공한 이유는 "환자 스스로가 유전물질을 이용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췌장세포나 손상된 척수를 복구하는 신경세포 등을 만들어낸다"는 황 교수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생명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접한 위씨는 난자가 필요하다는 호소에 이끌려 서울대를 찾아갔다. 그리고 올해 초 미즈메디병원에서 난자를 기증했다.

'과배란 후유증' 각종 여성질환 시달려

이 과정에서 위씨는 의학적 위험이 있다는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다. 배아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도 몰랐다. 노성일 이사장이 난자 기증자들에게 제공했다는 150만원도 받지 않았다. 위씨가 난자를 기증하며 받은 돈은 난자 기증 동의서를 쓴 날 안규리 교수로부터 교통비 명목으로 받은 30만원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단 한 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소식은 위씨에게 큰나큰 충격이 됐다. 아직도 위씨는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거짓이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다.

위씨는 황 교수에게 띄운 편지에서 "논문을 비롯해 연구 성과의 상당수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여전히 교수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생명에 관한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믿음은 이제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빈껍데기가 돼 버렸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황 교수의 주장대로 185개의 난자를 사용해 11개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면 29개나 되는 위씨의 난자 중 적어도 2개는 배아줄기세포로 수립됐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서울대와 국가 생명윤리심의위 조사 결과, 사용된 난자는 1600개가 훨씬 넘었고 배아줄기세포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위씨의 난자 기증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셈이다.

위씨는 이 편지에서 "내 소중한 난자들을 채취해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데 사용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위씨는 또 난자를 제공하면서 생명과 살붙이에 대한 정도 깨달았고 여성으로서 태어났다는 자부심마저 느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게 물거품이 됐다. 위씨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기꺼이 제 작은 생명을 내어주었는데 그 생명의 온기를 잃고 말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위씨는 마지막으로 황 교수에게 백의종군해 달라고 호소했다. 위씨는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보도와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발뺌하기에 바쁜 관련자들의 모습도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한다"며 "할 수 있다면 줄기세포연구에 혼신을 다해 성과를 거둬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국가 생명윤리심의위 조사 결과 위씨와 같이 난자를 기증한 여성은 100명에 달했고, 이 중 16명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2명은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은 위씨가 황우석 교수에게 띄우는 편지 전문.(<한겨레21> 인용)

황우석 교수님께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아직도 제 눈에는 병상에 누워 계시던 교수님의 까칠한 모습이 선합니다. 어떤 언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지 연출’에 능란하신 분이라는 것도. 눈문을 비롯해 연구 성과의 상당수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저는 여전히 교수님, 아니 선생님이라 부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무엇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엇갈려버린 것일까요. 생명에 관한 순수하고 맹목적인 열정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던 제 믿음은 이제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빈 껍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수님의 어떤 말로도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죠.

저는 사실 교수님이 난자 수급 문제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백의종군’ 하겠다고 밝히셨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답니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본연의 모습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것 같은 교수님의 행보를 보면서 안타까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성실로 무장한 듯 보였던 교수님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의 주인공이 되시다니요. 제 충격과 상심은 이루 말로 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난치병 환자들이나 일반 국민들과는 다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참담한 감정은 인간적인 신뢰가 깨어지는 아픔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제 소중한 난자들을 채취해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데 사용한 것인가요? 저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지만 바로 이런 것이 생명이구나, 하면서 살붙이에 대한 정이 무엇인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제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 난자를 기증하면서부터였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고통과 후유증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기꺼이 제 작은 생명을 내어주었는데 그 생명의 온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적지 않은 여성들의 피와 눈물은 정녕 이대로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요? 난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도요?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보도와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발뺌하기에 바쁜 관련자들의 모습도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합니다. 교수님, 이제라도 좋으니 진실된 모습으로 쓰러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일으켜주세요. 잘못을 시인하고 백의종군보다 더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줄기세포 연구에 혼신을 다해 성과를 거두어주세요. 그것만이 저와 다른 많은 이들을 그리고 교수님을 살리는 길입니다.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마음만은 꼭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2005년 12월23일

난치병 극복을 기원하며 난자를 기증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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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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