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 나는 하면 안 되나요?

천안 장애여성들, "우리도 엄마이고 싶다"...출산·양육수당 지원 필요

등록 2005.12.31 20:06수정 2006.01.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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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무슨 아기를 낳겠다는 거냐? 병원은 어떻게 다니고, 키우기는 어떻게 키울 거냐? 창피하지도 않느냐고 하면서 저를 말렸습니다. 태어나 장애를 지녔다는 것이 그때처럼 싫고 미웠던 적이 없습니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지체1급의 중증장애인인 허순무(49·여·천안시 성남면)씨. 휠체어가 있어야지만 이동이 가능한 허씨는 사랑과 결혼, 특히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허씨에게도 10여 년 전 사랑이 찾아왔다. 시댁에서는 2급 장애인인 남편보다 허씨의 장애가 심하다며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굳건한 사랑으로 결혼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아기를 가졌다. 주변에서는 허씨의 출산을 한결같이 만류했다. 가장 큰 힘이었던 남편마저 "우리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며 지우자고 했다.

하지만 자신 안에서 자라고 있는 새 생명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허씨는 "참고 견디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임신에서 출산, 산후조리까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산부인과는 여성장애인인 허씨를 보자마자 제대로 진찰도 않고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라고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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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속에 임신과 출산을 결행한 여성장애인 허순무씨가 자신의 임신.출산 경험을 발표하고 있다. ⓒ 윤평호

배부른 상태로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것은 쉽지가 않아 병원만 다녀오면 녹초가 됐다. 돈도 더 많이 들었다. 마음은 자연분만을 원했지만 의사는 정확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며 수술을 종용했다. 두렵고 서러웠다. 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나 마주한 아기는 그동안의 아픔과 눈물을 말끔히 씻어줬다.

기쁨도 잠시, 남편의 우려처럼 둘이서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기 목욕을 시키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갑자기 아이가 아팠을 때는 아이를 안고 걸을 수가 없어 업은 채 병원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고생을 자처했다는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 양육의 어려움으로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딸의 모습은 허씨를 쓰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 딸은 이제 엄마의 앉은키보다도 더 성장했고 초등학생 딸의 어엿한 엄마로 살아가는 허순무씨는 이제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출산장려시대, 여성장애인의 임신·출산권은 찬밥

장관까지 광고에 등장해 임신과 출산을 권장하는 바야흐로 출산장려시대. 하지만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이중고 속에 살고 있는 여성장애인의 임신과 출산권은 사회적 무관심속에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5년 말 현재 천안지역 등록장애인은 1만5902명. 이 가운데 35.78%인 5690명이 여성장애인이다. 충남여성장애인연대는 2005년 5월부터 11월까지 천안에 거주하는 15세 이상 70세 이하 여성장애인 가운데 200명을 대상으로 '여성장애인 건강 욕구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일대일 방문조사로 이뤄졌다.

조사결과 여성장애인 중 임신 경험이 있는 경우가 59.7%, 경험이 없는 경우가 40.3%로 나타났다. 출산을 한 여성장애인 중 산전관리를 한 것은 전체의 33.3%, 2/3는 산전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전관리를 받지 않은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는 응답이 40%로 가장 많았다. 산전관리 시 불편한 점은 비용문제가 33.3%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심리적 부담, 장애에 대한 의료기관의 이해 부족, 이동문제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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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8일 나사렛대에서 열린 '천안지역 여성장애인 건강 욕구조사 발표 세미나'를 지켜보고 있는 여성장애인의 모습. ⓒ 윤평호

여성장애인이 생각하는 출산 시 어려웠던 점은 '태어날 자녀가 장애를 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24%로 가장 많았고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와 '분만과정에 대한 두려움'도 각각 20%, 16%를 차지했다. 출산을 한 여성장애인 중 산후진찰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58.3%. 산후진찰을 받지 않은 까닭은 경제적 이유가 첫 번째로 꼽혔다.

'여성장애인 건강 욕구조사' 결과 여성장애인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욕구조사에 참여한 200명 여성장애인의 25.1%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로 생활이 매우 어려운 상태. 여성장애인의 월 소득은 30만원 미만이 64%로 가장 많았고 학력은 중졸 이하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6%를 차지했다.

여성장애인 전문진료기관 지정 목소리도 높아

경제적으로도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여성장애인들의 임신과 출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출산 및 양육수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5년 12월28일 나사렛대학교에서는 천안지역 여성장애인 건강욕구조사 발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 조성열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교수는 "빈곤 여성장애인들이 임신과 출산, 육아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추가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여성장애인을 위한 출산, 양육수당 지급 등 경제적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장애인의 임신과 출산권 보장을 위해 실제로 출산비를 지원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경상남도는 1, 2, 3급 등록 장애인 중 경남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여성장애인이 출산을 하는 경우 시군을 통해 1인당 100만원의 출산비를 지원하고 있다. 천안시는 2005년부터 셋째아이를 낳는 부모에 5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2005년에만 492명이 출산장려금을 지원받았다. 2006년에도 셋째자녀 출산 장려금으로 1억2500만원의 예산을 세웠다.

하지만 현재의 천안시출산장려금은 여성장애인들에게 '그림의 떡'과 같다. 김영목 충남여성장애인연대 사무국장은 "건강상 여성장애인들이 자녀를 셋째까지 낳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지금의 천안시출산장려금은 사실상 비장애여성에게만 국한된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장애인계에서는 출산 및 양육수당의 지원뿐만이 아니라 전문진료기관 지정, 운영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2005년 11월22일 천안여성인력개발센터 주관으로 열린 '여성발전대토론회'에서 심상진 충남여성장애인연대 회장은 "대형병원조차 여성장애인을 위한 전문인력도, 전문기구도 없기에 여성장애인을 위한 전문진료기관과 전문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가시밭길속에 임신과 출산을 결행한 허순무씨는 "여성장애인들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지원책이 마련돼 여성장애인들이 임신이나 출산을 포기하지 않고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광희 천안시 여성정책과장은 "여성장애인의 출산장려책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며 "사업시행과 예산지원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367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덧붙이는 글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367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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