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4차원 세계, 먼 곳에 있지 않다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보고

06.01.02 11:37최종업데이트06.01.02 21:31
원고료로 응원
ⓒ 월트디즈니 픽쳐스

관련사진보기

비밀의 옷장, 누구라도 가지고 있으니 어린 시절, 누구나 4차원 세계가 등장하는 만화를 흥분 속에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소용돌이 치는 블랙홀과 같은 공간을 종이인형처럼 나풀대며 날아가는 <이상한 나라의 폴>과 최근의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9와 4/3번 승강장까지,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반적인 '통로'의 개념과는 다른 '출구'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니아 연대기>에서 택한 출구인 '옷장'은 친숙하면서도, 경이로운 의미를 지닌다. 어느 집이나 반드시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옷장, 그 옷장의 문을 열고 전혀 다른 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니, 이것은 9와 4/3번 승강장을 찾는 것보다 아마 백 배는 쉬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손쉽게 '나니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낡은 옷장의 문을 열고, 오래된 겨울 코트들 사이를 지나 솔가지 사이로 첫 발을 내디디면, 아! 드디어 나니아에 도착한다. 4人 4色, 나는 누구와 함께 모험하는가 전쟁을 피해 시골의 교수님 저택에 머물러 온 사남매. 듬직하면서도 분별있는 맏이 피터(윌리암 모슬리), 차분하고 이성적인 수잔(안나 포플웰), 퉁명스러운 에드먼드(스캔드 킨즈), 용기있고 귀여운 숙녀 루시(조지 헨리)가 이 모험의 주인공이다. <나니아 연대기>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4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그러나 4명의 아이는 단순히 우연하게 나니아에 들어온 방문객이 아니다. 그들은 그 또래의 어린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개성을 부여받고, 나니아에 입성한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유년과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되는 주인공과 합류한다. 그래서 하얀 마녀 VS 고귀한 사자 아슬란, 예언의 아이들과의 대결은 '극장'이라는 옷장에 들어선 관객들을 나니아의 세계로 입성시킨다.
 <나니아 연대기>는 옷장이라는 평범한 사물을 통해 놀라운 세계로 진입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진 낡은 옷장도?
ⓒ 월트디즈니 픽쳐스

관련사진보기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과 거의 동일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나니아의 하얀 마녀, 그녀 역시 교묘한 수법으로 에드먼드를 유혹한다.
ⓒ 월트디즈니 픽쳐스

관련사진보기

이처럼 <나니아 연대기>에는 유년시절을 지나온 우리가 결코 낯설게 느낄 수 없는 친숙함이 있다. 그러나 이 친숙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에 등장하는 소년은 유리조각이 눈에 들어가 하얀 마녀의 성에서 살게 된다. 웃음을 잃어버린 냉소적인 소년, 그것은 <나니아 연대기>에서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말에 혹해 형제들을 버리고 뛰쳐나가는 에드먼드의 모습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눈의 여왕>에서 소녀가 친구를 찾아 어렵고 먼 길을 찾아와 결국은 소년을 구해냈듯이, 다른 세 명의 형제가 결국 에드먼드를 구해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헤쳐나가는 것 또한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분명, 익숙한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그러나 새롭지 못하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참을 수 없는 '무기'의 가벼움 <나니아 연대기>는 영화의 주가 되는 선과 악, 하얀 마녀와 아슬란의 대결 구도를 위해, 아이들을 예언의 전사로 만들게 된다. 그리고 삼형제가 우연히 만난 '산타'에게 받게 되는 선물은 바로 '무기'. 첫째 피터는 검을, 둘째 수잔은 활을, 막내 루시는 단 한방울로 어떠한 상처라도 치유할 수 있는 붉은 물약과 단검을 선물로 받는다. 생각해보면 이 무기들은 주인공들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보인다. 힘과 명예의 상징인 검,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적을 처지할 수 있는 활, 그리고 타인을 치료할 수 있는 붉은 물약과 단검이라.
 피터와 에드먼드, 두 소년이 보여준 용기와 힘. 그렇다면 소녀들은 그들을 위로하고 치료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 월트디즈니 픽쳐스

관련사진보기

소년인 피터와 에드먼드는 하얀 마녀와의 전쟁에서 검을 사용하지만, 수잔은 에드먼드를 구하기 위해 딱 한 번 활을 쏘고, 루시 역시 다친 에드먼드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붉은 물약을 사용한다. 그리고 결국 하얀 마녀를 물리치는 것은 숭고한 희생으로 살아난 아슬란. 그렇다면 좀 서운하지 않은가? 루시가 아직 어린 소녀이기 때문에 단검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면-한번도 사용하지 않을 물건을 애초에 산타는 왜 선물로 주었을까,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무기가 있더라도 사용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못하다?- 무기의 종류나, 활약상이 이렇다보니 수잔과 루시는, 용감한 형제를 보살피는 다정다감한 소녀들일 뿐이었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놀라운 세계, 그렇다면 놀라운 세계관은? 결국 모두가 힘을 합쳐 하얀 마녀를 물리치고 평화가 찾아온 나니아. 아이들은 4개의 왕위에 올라 나니아를 통치한다. 그리고 모두 성인으로 자라 사냥을 나간 어느날, 그들은 처음 나니아로 들어왔던 곳에 있던 가로등을 발견하고, 다시 옷장으로 나오게 된다. 유년시절의 모습으로 옷장에서 나오는 그들. 옷장이 닫힘과 동시에 나니아는 사라지고 그들은 현실 속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여기에서 나니아의 대모험을 끝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진정 끝인가. 전쟁을 피해 시골로 내려온 아이들이 옷장 속에서 전쟁에 승리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그렇다면 현실은? @BOX1@영화는 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저 한밤중에 나니아를 그리워하는 루시가 다시 한 번 옷장 앞에 섰을 때, 기다리고 있었던 듯, 교수가 은근한 말투로 말할 뿐이다. "나도 다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어. 언제나 되는 건 아니란다" 하고. 나니아 같은 세계가 옷장을 열 때마다 들어갈 수 있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감독은 한 마디 쯤 해야 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옷장에서 나오니 현실에서도 전쟁이 끝났다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야기일지라도.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끝까지 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 넣지 못했던 것처럼,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코 '욕망'을 포기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이나 해보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옷장을 열어보라. 그리고 낡은 코트 속으로 주저없이 걸어들어가보길 바란다. 하지만 잊지 말 것, 모험에서 돌아온 당신을 현실은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