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꿈꾸는 예비 대학생 조카에게

[서평]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여성, 과학을 만나다>

등록 2006.01.11 12:01수정 2006.01.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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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여성, 과학을 만나다> 표지

< 여성, 과학을 만나다> 표지 ⓒ 양문

희수야, 수능 시험 이후 많이 힘들지? 이모가 바쁘다는 핑계로 힘이 못 돼줘서 미안하구나. 그래서 이공계를 지망하려는 네게 도움이 될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여성이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을 갖는 게 당연시되고 있구나. 특히 전문직 직장 여성들의 사회적 활약상을 신문지면에서 볼 때면 부러움과 함께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갖게 된단다. 하지만 내 또래 30대 중반 여성들 대다수는 어렵사리 입사한 직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붙여볼 때쯤 되면 결혼과 육아의 난제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포기했단다.

그에 비하면 요즘 사정은 좀 나아진 것 같다. 물론 정부 차원의 육아 지원 프로그램이 간간이 눈에 띄긴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육아 문제는 난제로 남아 있지만 말이야.


희수는 어려서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부모님의 권유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너는 '퀴리부인과 같은 과학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뒤늦게 이공계 진학에 도전하고 있구나. 이모는 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너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뜻을 담아 <여성, 과학을 만나다>를 선물한다.

61명의 '최초'의 여성 과학자들

이 책은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61명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단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과학자'라는 이름이 낯섦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들 여성 과학자에게는 공통적으로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더구나.

이들 여성 과학자는 한결같이 팀장이 되고 임원 자리에 오르면서 리더십에 대한 고충을 털어 놓고 있다. 그래서 선배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실험실과 학회에서, 병원과 기업과 정부 등지에서 좌충우돌하며 체득한 '최초'의 리더십은 눈여겨볼 만하단다.

미국에서 연구 시약과 연구 재료를 얻어 오기 위해 제일 큰 가방을 가지고 다녀 번번히 김포 세관에서 곤욕을 치뤘다. 특히 대부분의 시약들이 세포배양용으로 무균 처리된 것들이어서 세관에서는 뜯어보자고 하는데 뜯으면 세균에 오염되어 쓸모가 없게 돼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나의 간절한 눈망울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세관원들이 시약병을 열어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들을 들고 나오면서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기억은 지금도 눈시울을 적신다.
- 김영중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 편에서


귀국 후 지역 정신건강 사업을 시도했으나 원체 강력한 집단주의 중심으로 움직이는 우리 의료 시스템을 바꾸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간호사라도 환자를 면담할 경우에는 환자 주치의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간호 접근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시도한다는 그 자체가 난제였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퇴원 후 병원 밖에서 거의 방치된 채 살아가고 있는 만성 정신 질환자들을 돌보자는 아이디어였다.
- 김수지 이화여대 간호과학대학 교수 편에서


희수야, 이모에겐 과학이란 추상적인 개념만 떠오르는 어려운 학문으로 다가온단다. 그러니 이들 여성 과학자는 도대체 어떻게 과학을 업으로 삼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이 책이 제시하는 해답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발견한 문제점들을 과학적으로 개선하는 일"(김선민 동신대 한약재산업학과 교수 편)이란다. 일상적인 의식주 생활을 과학화하는 훈련을 체득하는 일이 과학의 시작이자 목표라는 생각 말이야. 공감되지 않니?


그러한 과학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항상 구체적인 현상 뒤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원인을 규명하려는 태도를 길러줬다. 이는 일상적인 사건을 대하는 나의 접근법을 구성하였다. 또한 주위의 상황을 구성하는 허구적 요소와 오류를 알아보는 판단력을 길러주고, 나아가 더욱 치밀하게 해 사건과 상황에서 명쾌함과 정연함을 얻어내도록 노력하게 했다. 이러한 태도는 내 인생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을 방지해 많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 김환순 호서대 자연과학부 교수 편


희수야, 이들 여성 과학자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더구나. 뜨거운 열정과 강한 승부욕,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와 배짱 말이다. 무엇보다 그들을 배려한 가족들이 든든한 힘이 돼주고 있었다.

특히 그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낸 인도자는 어머니들이었다. 전문직을 가지라는 조언과 함께, 결혼 후에도 그들의 아이를 돌보아준 어머니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희수야, 누구보다도 엄마를 잘 따르는 너로서는 '엄마의 희생'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네가 과학자의 길로 가는 시점이면 국가 차원에서 여성 과학자를 배려하는 제도를 마련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그게 안 되면 이모가 엄마와 함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줄께. 힘내라.

여성, 과학을 만나다 - 과학한국을 연 61인의 여성과학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엮음,
양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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