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관에만 있기 아까운 책

사진 작가 최기순의 <시베리아 야생동물의 비밀>

등록 2006.01.14 19:25수정 2006.01.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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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현지인에게 고가로 사서 키운 노루 '카술라'와의 이별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현지인에게 고가로 사서 키운 노루 '카술라'와의 이별 ⓒ 예림당

'큰 것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인간 본성일까. 유치원생 아들 녀석이 가져온 안내문의 '선물 나누기'란에는 "선물의 크기가 와이셔츠 상자를 넘지 않도록 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무조건 큰 것을 선호하는 어린이들의 심리가 잘 반영돼 있지 않은가!

어른들은 어떤가. 무엇이든 큰 것이 좋은 우리들은 집 앞의 작은 가게들의 문을 닫게 만든다.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사는 형편을 나누는 정을 뒤로한 채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호젓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는 대형 마트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몇 차례 합병으로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하는 기업들, 초대형 건물을 과시하는 교회들, 상상도 못할 투자액의 대형 영화들...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형화는 작은 것을 싹 쓸어버리는 굴삭기의 힘을 가졌다.


최근 칠성산을 위협한 고속철도 '큰 것'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칠성산은 사람이 헤쳐 놓지 않으면 어디든 뛰어다닐 수 있는 야생동물과 하늘을 향해 맘껏 자랄 수 있는 나무들의 보금자리가 아닌가.

a <야생동물의 비밀>

<야생동물의 비밀> ⓒ 예림당

"어린이도서관에만 두기 아깝네!"

책 한 권 소개하는 데 왜 이리 사설이 길어질까. 나도 모를 일이다. 유치원 방학을 맞은 아들 녀석의 성화에 집 근처 어린이 도서관을 찾았다가 도서관에만 두기에 몹시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 <시베리아 야생동물의 비밀>을 만났다.

시베리아 현장 체험의 리얼리티가 살아 움직이는 이 책은 재미와 스릴(?)이 넘친다. 무엇보다 작은 것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배울 수 있어 꼭 일독을 권한다. 물론 어린이 도서로 분류돼 성인 코너에서는 만날 수 없다.

우리 인간에 의해 야생동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동물원이나 매체의 다큐 프로그램에서나 그들의 옹건한 모습을 대할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종이 하루에도 몇 십 가지씩 멸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책은 사라져가는 야생동물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을 단번에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지녔다. 책 제목처럼 야생동물의 비밀이 그 베일을 '화끈하게' 벗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다큐 전문 사진작가인 최기순 씨의 목숨 건 촬영 에피소드는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a 나무 위의 위장 텐트

나무 위의 위장 텐트 ⓒ 예림당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한 시베리아 한 벌판에 가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살았지만 지금은 사라진 야생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 연해주와 시베리아 곳곳을 찾아다니며 촬영을 해낸 저자의 열정적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잠복을 할 때는 처음 며칠이 가장 중요하다. 텐트 안에 촬영 장비를 설치한 다음 눈을 감고 카메라를 조작하거나 물건을 집는 연습을 한다. 야생 동물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도 신속하게 찍으려면 캄캄한 밤에도 손쉽게 비디오 테이프, 렌즈 등 활영 장비를 집을 수 있어야 하니까.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나무 위에 위장 텐트를 설치하고 잠복해 있는 불편함을 설명한 말이다.

그런데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한 달이나 위장 텐트에 갇혀 지내며 대소변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고민 끝에 대변은 밥을 먹고 난 빈 그릇에 본 다음 비닐 봉지로 이중 삼중 밀봉해 위장 텐트 밖에 5분쯤 걸어 두었다가 꽁꽁 얼면 다시 안으로 들여와 보관하기로 했다.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꽁꽁 얼릴 수밖에. 또 소변은 음료수 병에 해결하기로 했고, 식수는 봉지에 담아 둔 얼음을 필요한 양만큼 녹여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간 사진 한 컷을 쉽게 보아온 나로서는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면서 한 컷 한 컷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 그동안 과정 속의 숱한 어려움을 까맣게 잊고 다른 이들의 결과물을 평가해온 오랜 습관을 벗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베리아 야생동물의 비밀

최기순 지음,
예림당,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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